적당하다, 당진 백련 생막걸리 SNOW(feat.연잎)
“적당히 넣어요”
유명한 노포 주인장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다. 애매하기 그지없지만, 또 이토록 명쾌히 한국인에게 이해되는 표현도 없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맛. 많이도 적지도 않은 양. 오랜 세월 경험으로 터득된 노하우. ‘적당히’. 당진에서 만난 이 녀석이 그렇다. 적당한 막걸리.
📌 백련 생막걸리 snow(신평 양조장, 충남 당진)
📌 알코올 : 6%
📌 원재료 : 정제수, 백미, 물엿, 팽화미, 과당, 누룩, 연잎, 조제종국, 구연산, 효모, 아스파탐, 정제효소, 젖산
85년 3대에 걸친 전통의 양조장 막걸리라고 한다. 청와대 만찬주로도 쓰였다고 하니 당진 지역 대표 막걸리라고 짐작된다. 병 디자인과 ‘백련 생막걸리 snow’라는 긴 이름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양조장을 젊은 리더가 이끌지 않나 생각된다. 근데 막걸리에 0.025%의 연잎은 왜 넣었을까?
첫 잔
맑은 맛이다. 산미도 은은하고 단맛도 적다. 쿰쿰한 누룩향은 거의 없다. 적당한 산미가 목젖을 툭 치면서 넘어간다. 참 맑은 맛의 막걸리다. 구운 돼지갈비 한 점 집어서 먹은 후 마시니 오히려 단맛이 느껴진다. 거슬리지 않는 적당한 단맛이다. 성분표에 쓰여있는 많은 개수의 감미료에 비하면 부드럽고 맑은 단맛이다. 발란스가 적당한 좋은 술이다.
아주 ‘개인적’으로. 나는 뭔가 섞인 막걸리를 싫어한다. 땅콩, 호박, 옥수수, 잣, 밤, 감귤, 오미자, 산수유 등등 각 고장마다 특산물을 섞은 무수히 많은 막걸리. 대부분의 특산물 막걸리는 첨가물로 향을 입힌 막걸리이다. 바나나맛 우유, 딸기맛 우유와 똑같은 성질의 단물 막걸리일 뿐이다. 첨가되는 특산물이 막걸리 맛에 작용을 하려면 전분이 많아 발효가 되거나, 법제화 과정을 거쳐 모주와 어울림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거의 모든 특산물 첨가 막걸리는 그저 화학 첨가물로 향과 맛을 인위적으로 조작한다. 한마디로, 막걸리 맛을 버려버리는 짓이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확신하다. 그래서 백련 생막걸리 snow도 기대하지 않았다. 연잎 0.025% 포함이 그 이유였다.
둘째 잔
산미와 단맛이 입안에서 잘 어우러진다. 첫 잔은 맑았는데, 둘째 잔은 보다 농후한 맛이 느껴진다. 요건 색다른 경험이다. 산소를 만나 풍미가 깊어진 탓일까?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고 생각되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입안에서 거슬리는 느낌 없이 부드럽게 넘어가는 건 첫 잔과 다름없다. 이 녀석 최고의 장점이다.
연잎을 왜 넣었을까? 백련 막걸리 홍보사이트를 보면 ‘술을 발효할 때 은은한 향을 더하기 위해 연잎이나 연꽃을 첨가했다’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그건 마시기 직전의 첨가였거나, 즙이나 진액을 추출, 법제 과정을 거쳐서 첨가했을 것이다. 연잎 0.025% 첨가로 향이 더해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추론할 수 있는 것 하나는, 연잎의 작용이다. 술을 빚을 때 밀을 넣으면 발효가 더 왕성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건 밀 자체에 효소가 포함되어 있어, 전분의 당화 작용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포도 껍질에 발효 효모가 자연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특별한 효모제를 첨가하지 않아도 된다. 연잎도 그러하지 않을까? 연잎에 효소나 효모가 자연적으로 포함되어 있어, 막걸리 발효를 돕는 작용을 할 수 있다. 또는 연잎의 살균 작용이 있어 술의 잡균을 억제하는 작용을 했을 수도 있다. 연잎을 넣는 주요한 이유는 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정답이 무엇이든 간에, 연잎이 들어간 백련 생막걸리 snow는 맑고 부드럽고, 산미와 단맛이 적당하다. 인위적인 맛의 조작이 아닌, 진짜 술맛을 위한 고민과 전통의 계승이 연잎이라고 한다면, 진정 리스펙이다.
셋째 잔
이 녀석의 단맛은 회차를 거듭함에 비례하여 느껴진다. 마실수록 단맛이 강해진다. 며칠 더 묵혀서 마시면 신맛이 더 좋아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적당한 탄산도 부드러운 목 넘김에 일조한다.
단맛도 적당, 산미도 적당, 목 넘김도 적당한 이 녀석과 어울리는 안주는 뭐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감자전이 좋겠다. 감자전이야 언제나 환영받는 막걸리의 영원한 파트너지만, 백련 생막걸리 snow와는 특히 궁합이 좋을 것이다. 감자전이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이유는 무난함이다. 고소한 기름 맛에 감자 특유의 찰진 식감과 감자전분이 입안에서 녹으며 내는 단맛까지. 거기에 매콤 새콤한 김치 한 조각 곁들여지면 한국인의 입맛에는 가장 ‘적당한’ 맛이 완성된다. 그렇다고 모든 감자전에 고만고만하고 비스름한 맛을 내지는 않는다. 고수의 감자전에는 특별함이 있다. 그 특별함은 디테일이다.
합정역 7번 출구 부근의 가제트 술집 본점의 감자전은 간 감자와 채 썬 감자를 같이 섞어서 감자전을 부친다. 간 감자와 채 썬 감자의 이중 식감이 아주 매력적이다. 막걸릿집의 흔하디 흔한 감자전에 채 썬 감자를 더한 디테일 하나를 더했다. 멋지다. 가제트 술집 감자전이 변화구라면 북촌 밀과 보리의 감자전은 묵직한 직구다. 주문 즉시 강판-믹서기가 아닌 강판이다-에 간 감자를 두툼하게 부쳐낸다. 씹는 맛이 기가 막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강판에 거칠게 갈린 감자 씹히는 맛은 더욱 환상이다. 식객 허영만 선생의 맛 표현을 빌리면,
“감자전의 두께와 감자를 갈은 정도가 아주 ‘적당’하다. 그래서 맛이 아주 좋다”
백련 생막걸리 snow는 이 정도의 감자전과 함께 해야 더 좋을 녀석이다. ‘연잎’이라는 디테일을 더해 좋은 ‘적당함’을 찾아낸 막걸리 맛은 고수들의 감자전에 어울릴 자격이 있다. 정성과 디테일이 더해진 ‘적당함’은 고수의 단어다.
승발이의 맛 평가 : 부드럽고 맑은 막걸리다. 충남 당진을 닮은 막걸리. 수도권에서도 경쟁력이 충분하다. 4점.(5점 만점)
어울리는 맛과 멋 : 감자전과 함께면 좋다. 감자전을 부칠 때 소금 간을 약간 해서 먹을 때 양념간장을 찍지 말고 먹어보자. 평소 간장에 가려졌던 감자전의 다채로운 매력이 느껴질 것이다. 백련 막걸리는 은은한 맛의 안주와 함께면 맛을 더욱 상승시켜줄 아주 ‘적당한’ 친구다. 플레이어(Player)의 ‘Baby Come Back’을 곁들이면 지난 추억이 어우러져 과음을 할 수 있으니 조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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