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About
  • 막걸리썰
  • 한 잔 할래?
  • 맛있는 페어링
  • 로그인
  • 구독하기

의외의 안주 맛집, 합정 가제트 술집

조승연 PD
조승연 PD
- 7분 걸림 -

"막걸리 한 잔 하려는 당신을 위한 술집 방문기"


에코프로비엠과 에코프로 시가 총액 하루 만에 14조 원이 증발하고, 음바페는 사우디의 연봉 1조 거절했고,  '루이통 한정판 다 내 거'라며 정용진 275만 원 티셔츠 정체가 뭐냐는 기사도 나오는데...

“여보, 자라에서 신발이 싸게 나왔네. 55,000원이래 사도 될까?”

어떤 소설가는 자본주의가 비교와 부러움이라는 두 개의 바퀴로 움직이는 수레라고 했다지만, 55,000 원 자라 신발 구매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면 내가 정말 자본주의라는 수레를 움직이는 건지, 거기에 깔려가고 있는 건지 헛갈리곤 한다. ‘까짓 거 과감하게 질러’하고 결심한 순간이면 빈틈없고 예리한 월말 카드요금 청구서라는 악귀가 뒷덜미를 서늘하게 잡는다. “젠장”.

기분이 구려질 때면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어 진다. 작고 따스한, 시골 외할머니댁 사랑방 같은 술집에 가고 싶어 진다. 막걸리 한 잔을 찌끌이고 싶어 진다. 신발값 55,000원 보다 막걸리 값이 더 나올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지만, 마시고 싶어 진다. 가제트 술집이다.

작고 허름하고 불편하지만 소소하기 마시기에 참 좋다. 특히 소나기가 내리는 날은 운수 좋은 날이다. 낡은 벽에 기대어 창 밖 퍼붓는 물줄기 소리를 벗 삼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면 55,000 원에 벌벌 떨던 소심함을 위로받을 수 있다. 무뚝뚝한 주인장은 어디로 갔는지 가게에 아무도 없다. 혼자 운영을 하니, 주인장이 부재중이면 가게 운영은 그 순간 스톱이다. 오픈시간도 일정하지 않다. 네이버는 17시라고 안내하지만, 그 시간은 늘 문이 닫혀 있다. 대충 6시 반 정도는 되어야 문을 열까 말 까다. 비좁은 곳에 테이블 7개가 옹기종기 놓여 있으니 솔찬히 불편하다. 집 나갔던 주인장이 돌아와 메뉴판을 내민다. 손 때 묻어 탁해진 비닐 안 메뉴들은 평범하지만 이때부터 행복한 고민은 시작된다. 왜냐고? 이 집.. 의외로 안주 맛집이다. ‘감자전? 소라무침? 계란탕을 할까? 아니야 가볍게 마실 거니까.. 그래 결심했어', "사장님 먹태랑 송명섭 500 짜리요"

가제트 술집 합정 본점(분점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예전엔 체인점이었는데 현재는 죄다 사라졌다)은 막걸리 전문점이라고는 하나,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다. 게다가 병째 판매가 아니라 500ml, 1l 두 단위로 유리병에 담아 주고 있다. 보통 750ml 하는 막걸리를 500 단위로 끊어서 팔고, 나머지는 병에 두었다가 합쳐서 파는 식이다. 가게 입장에선 유통기한의 부담을 덜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김이 빠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송명섭 막걸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어차피 탄산이 넉넉히 들어있는 막걸리도 아니고 오픈된 후 시간이 흐르면 진짜 송명섭 막걸리의 맛이 나오기 때문이다. 특유의 시큼한 산미. 그 맛이 송명섭 막걸리가 갖은 숨겨진 힘인데 안타깝게도 싱싱한 녀석을 차게 두었다가 바로 마시면 느낄 수가 없다. 그런데, 가제트 술집에서는 끊어파는 방식 덕분에 넉넉히 산소를 만나 숙성된 송명섭 막걸리의 신맛을 맛볼 수 있다. 무맛으로 알려진 송명섭 막걸리의 새로운 면모를 만나시려면 가제트 술집에 오시라. 숨겨진 시큼함과 마주할 수 있으리니, 안주는 바삭한 먹태를 씹으시라. 꼭 소스를 찍어서.

마요네즈 소스가 요물이다. 유난히 바삭한 먹태의 담백한 맛에 짭짤, 매콤한 고소함을 덧씌운다. 드라이함의 대명사인 송명섭 막걸리의 짝꿍으로 손색이 없다. “사장님 송명섭 하나 더요”.

먹태와 송명섭이 바닥났다. 다행히 밖에 비가 오고 있다. 많이 온다. 가기가 뭣하다.  “사장님 감자전 하나랑 해창 1l 요”. 보통 해창 막걸리 한 통 900ml가 술집 가격 12,000 원인데, 여기는 1000ml에 12,000 원이다. 같은 가격에 더 많이 마실 수 있다. 술꾼의 합리적 계산법이다. 가제트 술집의 감자전은 정성껏 갈아서 만들지 않는다. 마치 도시락 반찬하려고 감자채 썰어 놓은 걸로 전을 만든 것 같다. 근데 맛있다. 씹히는 맛이 있다. 이 집의 음식은 간이 좋다. 명란 계란탕도, 소라무침도 간이 드세지 않다. 편안하다. 낯가림 많은 주인장과 다르게 살갑게 다가선다.

“사장님 명란계란탕이요” 이미 고삐는 풀렸다. 짭짤한 국물에 달큼한 해창 한 잔 더하려는데 주인장의 반응이 사뭇 진지하다. “지금 주문하면 20분 넘게 걸릴 수 있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둘러보니 만석이다. 50대, 40대, 30대, 20대. 막걸리로 대동단결.

“기다릴게요. 막걸리 더 주시고, 빨리 되는 먹태도 하나 더 주세요“. 이미 신발 두 켤레가 입으로 들어가고 있다.


Notice 1. 친절로 가득한 공손한 술집을 찾는다면 패스하시라

Notice 2. 막걸리의 빈약한 레퍼토리, 틀이 잘 잡힌 간이 좋은 안주

Notice 3. 작은 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분들께 추천. 화장실도 의외로 깔끔하다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한 잔 할래?

조승연 PD

맛&막걸리 콘텐츠 PD. TV조선에서 제작부장으로 [살림9단의 만물상], [애정통일 남남북녀], [모란봉 클럽], [시골빵집]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제작.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CP(책임 피디)로 전국의 맛난 음식 & 막걸리와 사랑에 빠져버림. 현재는 맛과 막걸리와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프로듀서로 열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