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남도의 맛 두번째, 떡갈비와 정감 막걸리
서울 해방촌에 ‘남산 술 클럽’이란 전통주 bar가 있습니다. 바 bar라고 굳이 표현하는 이유는, 바 디자인 때문도 있지만 이곳 사장님에 그 이유가 더 많습니다. 사장님이 미국인이 거든요.
외국인으로서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을 소유한 이가 몇 없을 텐데요, 듣자 하니 이 분은 오래전에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을 땄다고 합니다. 주인장이 막걸리 양은 잔을 들고 술을 마시는데, 그 모습이 꽤 간지 나더군요. 여기 손님은 한국인 보다 외국인이 더 많아 보였습니다. 여행 온 이들도 있고,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도 있어 보였는데 여유 있게 막걸리를 즐기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술집에는 백 여 종의 막걸 리가 준비되어 있는데요, 이 정도면 꽤나 전문적이죠, 사장님께 한번 여쭤봤습니다. 어떻게 해서 막걸리에 빠지게 되었는지요, 답은 심플했습니다.
“맛있잖아요!”
국내에서 팔리는 막걸리의 종류가 대략 1,200 여 종입니다, 이 막걸리들을 하나하나 마주칠 때마다 설레곤 하는데요, 처음 뚜껑을 따고 첫 잔을 마실 때 그 기대감이 아주 좋습니다. 특히 가성비와 가심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을 때의 행복감이란!
“정감 생막걸리”를 만났을 때도 그랬습니다. 경남 하동의 막걸리를 전남 광양의 조그만 시골 슈퍼에서 처음 접하게 됐는데요, 당시 2000원의 가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달보드레한 맛이 마치 시골 부잣집에서 담근 막걸리랄까. 참 맛있었습니다.
정감 막걸리를 빚는 악양 주조장은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실제 배경인 악양면에 있습니다. [토지] 등장인물 중 최고 부자인 최참판이 마셨던 막걸리였을까요. 단맛과 산미의 조화가 넉넉함 속에 잘 녹아있는 맛이었습니다. 지리산 자락에 걸쳐있어서 하동은 쌀농사에 그리 좋은 지형의 고장은 아닙니다. 쌀이 충분히 들어가 단맛이 강조된 막걸리를 빚기 좋은 동네가 아니라는 의미죠. 단, 악양면은 예외입니다. 지리산 자락임에도 불구하고 넓고 비옥한 평사리 들판이 있어 예로부터 쌀농사가 유명했던 지역입니다. 그만큼 질 좋은 막걸리를 빚기에 유리한 동네이기도 했지요. 악양 주조장의 정감 생막걸리의 달보드레한 맛에는 지역적 이점이 있었습니다.
4년 만에 다시 ‘정감 생막걸리’를 마시게 됐을 때 예전의 그 맛을 유지하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아! 예전의 달보드레한 맛은 좀 사라졌지만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너무 무겁지 않은 미들급 질감의 드라이한 맛이 좋은데요. 가격은 한 병에 4,500원으로 올랐네요.
주조장 사장님도 아들이 물려받으시고, 프랜차이즈와 협업해서 서울에도 유통을 시작한다고 하니 꽤 적극적으로 술을 빚고 있는 곳이죠.
여름 남도의 맛 두 번째(첫 번째는 병어회)는 ‘떡갈비’입니다. 혹시 떡갈비를 궁중 음식으로 알고 계신가요? 임금님이 갈비를 천박하게 손으로 들고 뜯을 수 없으니 점잖게 드시라고 떡갈비를 만들었다고요.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떠한 고문헌과 자료에서도 위의 내용은 한 줄도 찾을 수가 없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아마도 80년대 고급 한정식집의 메뉴에 떡갈비가 등장하면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예상합니다. 지금 떡갈비를 검색하면 궁중요리라는 내용이 삭제되고 대신 남도 지방의 대표 음식 중 하나라는 내용이 조금씩 보이고 있습니다.
의정부와 동두천에서도 몇몇 떡갈비 노포가 있긴 하지만, 실제로 떡갈비로 유명한 식당이 모여있는 곳은 남도입니다. 군산에서 시작해서 정읍을 거쳐 담양에 오면 떡갈비의 시초라 일컬어지기도 하는 담양 신식당이 있습니다. 담양에서 광주 송정동 떡갈비를 지나 해남에 도착하면 떡갈비 남도벨트가 완성됩니다.
남도 떡갈비는 크게 두 가지 모양으로 나눠집니다. 담양 신식당 식의 뭉침 떡갈비가 있고 군산식의 펼침 떡갈비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떡갈비는 담양식이죠. 해남의 경우 한 지역 내에서도 한성정은 뭉침 떡갈비이고, 천일식당은 펼침 떡갈비를 내놓죠. 물론 둘 다 맛있지만 식감은 뭉침이 불맛은 펼침 떡갈비가 좀 더 좋습니다. 남도 떡갈비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반찬이 엄청 푸짐하다는 점입니다. 담양 신식당이야 이제 많이 계량화 됐지만, 정읍의 백학정이나 해남의 한성정, 천일 식당 등은 떡갈비 정식을 시키면 마치 잔치상을 받는 기분이 듭니다. 방에 덩그러니 앉아있다 보면 산해진미가 그득한 커다란 잔치상이 들어오죠. 그 상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떡갈비는 마치 이렇게 외치는 듯합니다. “내가 이 밥상의 군주이다”
떡갈비는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직화의 힘이고, 또 하나는 다짐의 풍요로움이죠.
남도 떡갈비는 대부분 직화로 구워냅니다. 맛있을 수밖에 없겠죠! 그러나 이렇게 굽게 되면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잘 탑니다. 그래서 양념을 발라가면서 굽는데요, 물 같은 양념장이 고기 타는 걸 방지해 주면서 육질에 스며들어 달콤 짭조름한 맛이 배어들게 하죠.
하지만 과하지 않는 게 미덕입니다. 실제로 나주의 유명한 노포 연탄불고기 집을 가면 주인 할머니가 손으로 계속 불 위의 고기에 양념장을 찍어 바르면서 굽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고무장갑을 끼면 타니까 맨손으로 뜨거운 연탄불 위의 고기에 양념을 바르면서 굽습니다. 태우지 않으려고요, 정성 정성 이런 정성이 또 어디 있을까요.
떡갈비의 두 번째 특징으로 ‘다짐의 풍요로움’을 들었는데요, 너무도 힘든 작업이지만 고기를 다져서 여럿이 풍요롭게 먹고자 하는 마음이 떡갈비에 담겨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한편으로는 양을 늘리려는 목적도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수율이 좋은 갈비는 6,7,8번 갈빗대 3대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고기수율이 안 좋죠. 그래서 갈비고기를 다지기 시작했을 겁니다. 그냥 먹기에는 질기기도 하고, 다져서 양도 늘리고 질긴 맛도 없애는 거죠. 그 모습이 잘 반영된 떡갈비가 광주의 송정동 떡갈비입니다. 소고기 70%에 돼지고기 30% 비율로 섞어 치대서 떡갈비를 만듭니다. 여기에서 나온 돼지뼈로 맑은 탕을 끓여 무료로 제공을 했고요. 소고기로만 하면 양이 적으니 넉넉히 먹자고 해서 나온 생각일 겁니다. 근데 방송을 타고, 유명해지면서 어느 순간 돼지뼈 맑은탕에 돈을 받기 시작하더니 송정동 떡갈비 촌은 예전의 신뢰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아쉽죠.
여하튼 믹서기로 갈지 않고 고기를 다진다는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 일만큼 ‘정성 정성 이런 정성’ 노래해도 부족할 겁니다. 잘 다져진 고기를 두툼하게 빚어서 직화로 구워내면 첫 입에 터지는 육즙이 감탄을 부릅니다. 사실 떡갈비 하나만 먹어도 배가 두둑해지는 기분이 드는데요. 이 떡갈비와 정감 생막걸리 궁합이라뇨! 정감 막걸리의 미들급 질감과 드라이함이 떡갈비와 어울려 서로를 밀고 당깁니다. 사랑스러운 밀당이랄까요.
앞에서 미국인 전통주 소믈리에가 운영하는 술집 bar 이야기를 했는데요, 막걸리뿐 만 아니라 ‘맛’, 음식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안주를 먹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할 정도로– 막걸리와 괜찮은 안주 콜라보를 맛볼 수 있는 술집을 찾아 발품을 팝니다. 왜냐고요?
“맛있으니깐”
맛있는 게 행복 아니겠습니까. 당신의 행복 차림으로, 떡갈비와 정감 막걸리 어떠신지!
TIP
특별히 제가 생각하는 남도 떡갈비 로드맵 공개합니다.
군산 우리 떡갈비 — 정읍 백학정 — 담양 신식당 — 광주 송정동 떡갈비(복불복 초이스) -- 해남 한성정 혹은 천일식당 (우열을 가리기 힘든 전통의 라이벌)
시간 되시면 떡갈비 여행 한번 다녀오셔도 좋겠네요. 정읍에서는 송명섭 막걸리, 해남에서는 해남 막걸리 9도를 꼭 함께 드세요. 너무너무 “맛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