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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타지않은, 신동막걸리 원주(전남 장성, 청산녹수)

승발이-백반기행 피디
- 8분 걸림 -
'물을 타지 않은'이 포인트다

마포 신석초등학교 삼거리에 막걸리 집이 하나 있다. 이박사의 신동막걸리라는 간판을 갖고 있다. 길 건너 중식당 부영각에서 한 잔 하고 내려오는 길에 발견한 집이다. 가보진 못하고 간판만 봤음에도 기억이 선명했다. '이박사? 박사가 만든 막걸린가? 마포에 막걸릿집은 처음 보는 거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지나쳤다. 그리고 이마트에서 같은 네이밍의 술을 발견했다. 이박사신동막걸리 원주. 네이밍이 모순이다. 일반적으로 원주는  발효가 끝난 술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 원주에 물을 탄 것을  일컫는 말이 막걸리다. 근데  막걸리라며 원주라니. 모순적 네이밍이지만, 마케팅적으로는 끌림이 있다. 물을 타지 않은 순수 발효주 원액을 담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쨌건 기대가 된다.


알코올 : 12도

원재료 : 정제수, 멥쌀(국내산), 찹쌀(국내산), 누룩, 종국, 효모

원재료 '정제수'는 술 빚을 때 필요한 '물'이다

첫 잔

향이 좋다. 좋은 단내가 알코올에 실려 훅하니 병목을 지나 불어온다. 기대감이 좋은 단내를 타고 덩달아 올라간다. 마셔본다. 단맛이 혀를 스치고 부드럽게 목젖을 타고 넘어간 녀석이 후끈 가슴을 데운다. 자잘한 기포가 윗입술을 간지럽히고, 농밀한 질감이 입천정을 적신다. 연한 산미가 단맛과의 조화가 좋다. 연한 요구르트 맛이 난다. 한 잔을 마셨을 뿐인데 입김이 더워진다. 살포시 달아오른다. 원주, 12도다.


둘째 잔

단맛을 알고 나니, 쌉싸래한 맛이 찾아온다. 걸쭉한 질감, 농후한 단맛 뒤에 숨어있던 경쾌한 쓴맛이다. 결국 가슴을 데우는 것은 쓴맛 일터. 걸쭉한 술이 의외로 경쾌하게 입 안을 타고 넘어가 가슴을 데운다. 물을 타지 않아 도수가 높은 원주의 강점이다. 원주에 물을 탄 막걸리는 아무래도 가슴을 달구는 화력이 떨어질 수밖에. 그것이 물의 역할이다. 하지만 원주는 발효술 자체이기에 농밀한 질감에 숨은 술맛이 원초적이다. 물론 가공되지 않은 맛은 아니다. 오히려 잘 가공된 원초적 맛. 어쩌면 원초적 맛으로 포장된 세련된 술맛. 그 세련됨의 이유에는 약한 산미가 큰 몫을 차지한다.

고두밥에 물을 넣고 누룩을 넣어 발효를 시키면 술이 된다. 그 술을 일컫는 말이 '원주'다. 첨가된 것이 없는 오리지널  발효주라는 말이다. 만들어진 발효주(밑술이라고 한다)에 덧술을 더하면 이양주가 되고, 이양주에 또 덧술을 더하면 삼양주가 된다. 덧술은 곧 쌀을 더한다는 의미이고, 이는 단맛과 알코올 도수를 높이는 근본적인 방법이며 맛을 세련되게 하는 기술이다. 덧술 없이 만든 단양주는 맛을 길들이기가 어렵다고 한다. 특히 산미가 강해지고 쿰쿰한 맛이 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업 주조장은 삼양주를 담근다고 한다. 술의 맛을 더하는 것도 있지만, 일정한 맛을 내기 위해 길들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예전 할머니가 담았던 막걸리 맛을 못 있는다는 대부분의 입은 단양주를 기억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요즘 막걸리에서 할머니의 맛을 찾을 수 없다. 물론 물을 섞은 것도 또 하나의 이유다. 할머니 막걸리가 물을 섞어서 내오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익은 술 그대로를 내오신 할머니 막걸리. 단양주이자 원주인 그 술이 진정 원초적인 맛이었을 거다.

셋째 잔

자연 탄산인 듯하다. 자잘한 탄산이 술 위에 몽게몽게 융단으로 깔린다. 원주 12도의 위력은 셋째 잔에서 알 수 있다. 기분 좋게 몸이 더워진다. 유막처럼 깔린 자잘한 기포 융단이 입술을 간지럽히며 농염하게 술이 입 안을 적신다. 단맛이 스쳐 지나간 혀 위에 가벼운 쓴맛이 남아 한 모금 더를 바란다. 단맛이 빨리 사라지니 안주와의 합도 좋고, 쉽게 질리지 않을 수 있다. 발효가 잘되서인지 누룩의 향은 거의 느낄 수 없다. 달콤한 향이 코를 간지롭히니 술이 더 가까워진다. 과하면 질리는 게 단맛이지만, 부드럽게 사라지는 단맛은 간절하다. 살며시, 빠르게 사라질수록 단맛의 유혹은 강해진다. 이 녀석이 그렇다. 원주의 위력이다. 뒤에 숨은 12도의 술맛은 그래서 더 치명적이다. 보이지 않게 나를 데우고 있다.

넷째 잔

부드러운 융단이 여전하다. 막잔으로 가니 탄산 기포가 더 많아져 입술을 적시는 촉감이 더 크다. 마치 카페라테의 하얀 거품처럼 보드라운 것들이 술꾼의 입술을 유혹한다. 목젖을 지나 가슴을 알싸하게 달구는 느낌도 여전하다. 슬며시 사라지는 단맛 뒤에 남는 경쾌한 쓴맛의 조화가 좋다. 물이 섞이지 않아 농밀하지만, 무겁지는 않다. 맛있는 술이다. 막혀있던 산소와 조우한 탓일까? 넷째 잔에 오니 산미가 살짝 더 느껴지는 듯하다. 애매하다. 혀가 느끼는 산미인지 부족함의 아쉬움에 뇌가 만들어낸 산미인지 모르겠다. 내가 살짝 취했다는 의미이다. 원주는 술이다.


승발이의 맛 평가 : 막걸리 라인업에서 원주는 반칙이다. 사회인 야구에 프로야구 선출이 투수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물을 타서 유통하는 막걸리에 비해 맛이 당연히 좋아야 한다. 값도 비싸다. 그런데 맛이 좋다. 4.5점(5점 만점)

채소가 통으로 툭툭 들어가 있다 


어울리는 맛과 멋 : 여름철 강변에서 민물고기를 잡아 요리하는 천렵은 요즘 즐길 수 있는 가자 원초적인 맛이다. 되는대로 잡힌 민물고기에 파, 호박, 감자, 마늘 등 준비된 데로 툭툭 던져 넣고 고추장이든 고춧가루든 있는 양념 넣어서 푹 끓여내면 그 맛이 참 좋다. 가공되지 않은 만큼 투박하지만 풍성한 맛이 가득하다. 직접 하기 힘들면 안산 산골 추어탕집에서 한 그릇 해도 좋다. 냄비에 천렵의 원형을 잘 담아낸 한 그릇을 만날 수 있다. 여기에 신동막걸리 원주를 곁들이면 아주 좋다. 곁들임 음악으로는 제니스 조플린의 ‘Summertime’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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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발이-백반기행 피디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CP(책임 피디)로 전국의 맛깔나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여행을 하던 중 막걸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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