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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가인의 막걸리어라(청주, 조은술 세종)

승발이-백반기행 피디
- 9분 걸림 -

조선의 눈을 가진 그녀는 달랐다. 동그란 토끼눈을 뜨고 귀염귀염하는 소녀가 아니었다.  조선의 눈과 통통한 볼과, 가녀린 몸매의 작은 여인이 부르는 한 서린 노래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음지에 숨어있던 중장년층이 열광했다. 숨어서 듣던 실버세대가 열린 광장에서 트롯을 떼창 하기 시작했다. 소비 능력을 넉넉히 갖춘 중장년 팬덤문화가 등장했다. 트롯이 대중문화의 큰 물결을 이루었다. 이른바 트롯혁명. 임영웅으로 완성된 트롯 혁명의 시작은 송가인이었다.

끼와 기가 한껏 실린 그녀의 노래는 참말로 구성지다. 소주도, 맥주도, 위스키나 와인도 송가인의 진득한 정서와는 거리가 있다. 한 여름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탁주 한 잔 걸치며 더위를 눙치던 고향의 풍취가 그녀의 목소리에 있다. 송가인의 막걸리어라는 그래서 참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수리수리마수리 인스타그램에서 캡처

알코올 : 5도

재료명 : 정제수, 쌀, 국, 효모, 정제효소, 아세설팜칼륨, 아스파탐

3년 전 영탁 막걸리가 주류 업계에 광풍을 일으켰었다. 경북의 예천 양조장의 트롯 히어로 영탁 모델 선정은 상품의 대히트로 이어졌다. 불과 1년 후 온갖 잡음으로 가수 영탁과 막걸리는 원수가 됐지만, 영탁 막걸리는 어마어마한 마케팅적 교훈을 주었다. 막걸리의 히트는 엄선한 쌀, 누룩보다 잘 고른 모델 한 명이 결정한다는 점을. 막걸리 애호가 입장에선 복창 터질 일이지 몰라도, 사실이 그렇다. 아니. 잘 빚은 술에, 잘 나가는 셀럽 모델로, 잘 팔리는 막걸리가 된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 아닌가. 심지어 송가인의 막걸리어라는 국내산 청정 쌀로 발효한 프리미엄 전통 막걸리란다. 술만 맛있다면 금상첨화다.

첫 잔

달달하고 맑다. 막걸리가 지나간 자리에 약한 산미와 합성감미료 여운이 남는다. 나쁘지는 않지만 좋지도 않다. 무난하다. 탄산이 거칠지 않아, 더 무난한 목 넘김이다. 사발에 찬 물을 담아 남양 요구르트 한 병 넣어 휘휘 섞으면 이 맛이지 않을까. 그냥저냥 한 단맛과 그럭저럭 한 신맛이 그저 그런 바디감에 녹아있다. 장수 막걸리보다는 지평 막걸리와 더 가까운 녀석이다. 5도의 도수가 반증이다.

송가인의 막걸리어라는 잘 기획되고 준비된 막걸리다. 막걸리의 택을 보면 흥미로운 항목이 눈에 띈다. ‘상품개발 주식회사 수리수리 마수리‘. 어렵게 찾은 회사 소개글에 따르면 ‘연예인들과 협업하여 상품기획부터 개발, 브랜딩 마케팅하는 회사‘라고 한다. 주조장은 조은술 세종(주). 우도 땅콩 막걸리, 포천 막걸리, 청주 막걸리 등등 다양한 OEM 막걸리를 주조하는 양조장이다. 전문 셀럽상품 마케팅 회사의 기획으로 조은술 세종(주)에서 OEM으로 막걸리를 뽑아서 세상에 선보인 술이다. 풍자가 진행하는 유튜브 콘텐츠를 보면 송가인도 주조 과정에 참여를 했다고 한다. 막걸리 공정과 맛에 송가인의 의견을 적극 피력해서, 단지 이름만 건 막걸리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요구르트 맛이 나는 맑고 부드러운 막걸리라고, 정말 맛있다며 풍자와 송가인이 즐거운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혼술이라 그런가? 지금 내가 마시는 막걸리어라는 그 정도는 아니다.

풍자 유튜브 콘텐츠 '풍자애술'에서 캡처

둘째 잔

술이 식으니 많이 달아졌다. 차가웠던 막걸리가 식으면  시어지는 녀석이 있고, 단맛이 도드라지는 막걸리가 있는데 이 녀석은 후자다. 그래서 속이 들쩍 해진다. 쌀의 단맛보다는 감미료의 단맛이 더 강하게 속을 적신다. 그런 경우가 있다. 입에서는 무난한데 속에서 느끼한 들쩍함이 강하게 올라오는  막걸리. 송가인의 막걸리어라가 그렇다. 입에선 순하지만 속에서 은근히 세다, 단맛이.

송가인이 막걸리 맛에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했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요즘 세상이 이름 한 글자 달짝 올려놓는다고 덕후들이 무조건 열광하는 시대가 아니다. 현 남자 트롯계의 절대 지존인 임영웅이 단독 출연한 '마이 리틀 히어로‘의 시청률이 덕후들의 소비 패턴을 잘 보여준다. 6.2%로 시작한 프로그램이 2.9%의 초라한 시청률로 끝을 맺는다. 임영웅을, 송가인을 사랑한다고 스타들과 연관된 모든 것을 무조건 소비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가수이기에 더 깐깐히 살펴보고, 야무지게 소비한다. 그게 그들이 사랑하는 아티스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막걸리어라의 주조에 송가인의 애정이 깊이 담겨 있을 것이다. 송가인은 영특한 가수이기 때문이다. 다만, 막걸리에는 뮤지션 송가인이 아닌 자연인 송가인이 담겨 있다.

가수 송가인은 진하다. 제비 꼬리처럼 얇고 긴 조선의 눈매에 웃음을 가득 담고 ‘송~가인이어라~~‘를 외치는 작고 옹골찬 모습은 새롭고, 신선했고, 자극적이었다. 그녀의 진한 목소리로 빚은 트롯은 감칠맛이 농축된 깊은 맛이었다. 오동통 복스러운 얼굴은 바라만 봐도 행복함이 넉넉했다. 깊고 진하고 넉넉한 자극이 가수 송가인이다. 송가인이 진하게 부르는 노래처럼 막걸리어라의 맛도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직관적인 예상이었다. 하지만 막걸리어라는 무난한 단맛이다. 특별히 흠잡을 맛도 아니지만, 특별히 칭찬할 맛도 아니다. 송가인하면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개성이 막걸리에는 전혀 없다. 30대 자연인 송가인의 입맛 그대로, 가볍고 부담 없는 막걸리를 빚어보자고 마케팅 회사와 협의했을 수도 있다. 이미지가 진하고 강하니까 막걸리 맛은 다르게 가자고. 모두가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부드러운 막걸리를 만들자고. 물론 나의 개인적인 예측이다. 아마도 맞을 것이다. 그래서 슬프다. 가수 송가인의 진한 개성이 사랑받는 이유는 진하지만 부담 없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김치, 고추장, 된장이 한국인에게 부담 없듯이 말이다. 막걸리어라는 송가인의 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밋밋해서 부담이 된다. 그녀의 개성이 오롯이 실종된 막걸리는 헛헛한 아쉬움뿐이다.

승발이의 맛 평가 : 감흥이 없다. 무난 그 자체. 송가인의 진한 정서가 막걸리 담겼으면 좋았을 것을. 3.3점(5점 만점)

어울리는 맛과 멋 : 진도 서망항에 조그만 어판장이 있다. 10여 집이 옹기종기 모여 진도의 갯것들을 판다. 그곳에서 산 ‘배오징어’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씹을수록 뭉근히 배어 나오는 구수한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막걸리와 건조 오징어는 자칫 뒷맛이 비리기 십상인데, 진도의 배오징어는 달랐다. 진하고도 구수한 감칠맛과 오동통 씹히는 질감은 극상의 맛이었다. 밋밋한 송가인의 막걸리어라의 단점을 풍족히 감싸줄 멋진 배오징어 한 마리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다. 미국 송가인이라 생각하는 베트 미들러의 ‘From a Distance’도 함께하면 Very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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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썰

승발이-백반기행 피디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CP(책임 피디)로 전국의 맛깔나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여행을 하던 중 막걸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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