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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송명섭 막걸리(정읍, 태인주조장)

승발이-백반기행 피디
- 14분 걸림 -

“이것을 서울에서는 8,000원 썩 받는다며”

“전 그저께 9,000원 주고 먹었어요”

“그랴? 그럼 몇 통 더 사가. 그게 남는 거네”

‘송명섭이 직접 빚은 생막걸리’가 본명인 이 녀석을 구입하기 위해 정읍을 뱅글 돌았다. 정읍 시내 하나로 마트 본점을 비롯해 3군데 마트를 다녀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라? 정읍 막걸리가 정읍에도 없어?’ 황당한 일이었다. 송명섭 막걸리는 정읍 내에서만 유통하기 때문에 서울에서는 막걸리 전문점 아니고서는 만날 수가 없다. 정읍에 온 이유는 송명섭 막걸리를 사기 위한 목적 하나였는데, 정읍 시내에서 찾을 수가 없다니. 그냥 물러설 순 없었다. 차를 몰고 15분 떨어진 태인면으로 향했다. 떡갈비로 유명한 백학정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들렸던 고장이다. 태인에서 나는 송명섭 막걸리를 처음 만났다. 효 마트에서. 이런. 다 팔리고 없단다. 절망적이다. 휴일에 태인 주조장 문을 두드려야 하나 고민하는 와중에 허름한 전주마트 간판이 눈에 띈다. 할머니 세 분이 가게 불도 안 키고 노닥노닥 수다를 풀고 계신다.

정읍을 헤매이다 송명섭 막걸리를 만난 곳

“혹시 송명섭 막걸리 있어요?”

빤히 처다 보신다.

“있지” “와우 다행이다. 이거 찾아서 정읍에서 왔어요”

“이거 정읍에는 안나가. 태인에만 쪼까 풀리고, 다 타지로 나가. 서울로 가. 서울”

“서울서도 마시기 힘들어요”

“여도 몇 통 안 남았어. 열 세 통 남았구먼. 멀리서 왔으면 넉넉히 사가”

한 통 900ml, 3000 원의 막걸리를 위해 정읍을 헤매었다. 전국구 3 대장(송명섭, 해창, 금정산성) 중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막걸리.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신비로운 맛의 막걸리다.

물,쌀,누룩 딱 세가지만 들어갔다

알코올 : 6도

재료명 : 정제수, 쌀, 누룩

첫 잔

맑다. 산미도 맑고, 쌉쌀한 술맛도 맑다. 단맛은 없다. 전혀 없다. 이게 무슨 맛이지 싶을 정도로 맑은 맛이다. 어떤 맛인지 정확한 표현과 묘사 방법을 찾지 못하는 내가 한심할 정도로 순수한 맛이다. 보통 막걸리 맛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상 외의 맛이다. 단맛을 기대하고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은 절망을 느낄 수 있는 막걸리다. 혹자는 막걸리의 배신이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막걸리의 혁명이라고 평하는 이유가 첫 잔에 충분히 담겨있다.

막걸리의 단맛은 쌀의 전분에서 나온다. 전분이 누룩의 효소 작용에 의해서 당으로 바뀌어 단맛을 막걸리에 녹인다. 당을 효모가 먹고 분출하는 것이 알코올과 탄산이다. 효모가 당을 다 먹어치우면 알코올 도수가 높아지고, 발효가 멈추게 된다.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송명섭 막걸리는 당을 거의 남김없이 완전발효시킨 막걸리다. ‘맑은’이 맛의 형용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지금은 표현할 방법이 ‘맑은’ 밖에 없다.

둘째 잔

술이 술술 넘어간다. 단맛이 없으니 거리낌 없이 마구 넘어간다. 지나치게 보냉이 되어서 그런지 산미도 느껴지지 않는다. 얼마 전 막걸리 전문점에서 마신 녀석은 산미가 제법 있었는데, 지금 마시고 있는 녀석은 산미도 약하다. 보관 방법의 차이일 것이다. 어떤 첨가물도 들어가지 않고, 쌀로만 빚은 술인데, 이렇게까지 단맛이 없다는 건 맛의 호불호를 떠나 놀라운 일이다. 당을 완전히 발효시키고, 젖산균까지 조절을 해 단맛도 없고, 산미도 강하지 않은 막걸리를 만들었다. 이 녀석은 뒷맛도 쓰지가 않다. 쌉싸름한 술맛도 미약할 정도로 은은하다. 모든 맛이 은은하게 담겨있다. 고급스럽다.

우럭회를 안주 삼아 마셔본다. 좋다. 회를 먹는데 막걸리를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막걸리의 강한 단맛과 텁텁함이 회의 섬세한 맛을 가리기 때문이다. 송명섭 막걸리라면 달라진다. 회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도미회와 마시면 도미살의 은은한 단맛을 더 선명히 느낄 수 있고, 우럭회와 함께하면 우럭 살의 고소한 단맛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회와 막걸리는 상극이라는 상식을 송명섭 막걸리를 충분히 무시할 수 있다.

명인이 담근 술이다. 천천히 마셔보자. 900ml라 양도 많다

셋째 잔

매콤한 안주와 마시니 살짝, 아주 살짝 단맛이 혀뿌리를 스친다. 잔이 거듭되니 앙금이 많아져서 그런지 살짝 텁텁한 느낌이 있다. 술이 식으니 쌉싸래한 술맛이 강해진다. 맑고 은은한 맛 속에 이런 다양함을 숨겨 놓았던 녀석이다. 이 녀석은 너무 차게 마시면 안 된다. 섬세하게 숨은 맛이 찬 기운에 가려져 버린다.

차가웠던 막걸리를 한 참 식혀 서늘한 기운 정도만 남겨 마셔본다. 어라. 이 막걸리가 조금 전에 마셨던 그 녀석인가? 새로운 녀석이 내 입을 자극한다. 아니 숨어있던 그놈이 전면에 나서서 본색을 드러낸다. 산미다.

넷째 잔

찬 기운에 숨어있던 산미가 존재감을 뽐낸다. 시큼털털한 맛. 어찌 생각하면 투박하고, 어찌 생각하면 정감 있고 꾸밈없는 맛이 느껴진다. 이 녀석은 팔색조인가? 맑고 은은하다고 생각했던 막걸리가, 직선적이고 강하게 느껴진다. 시골 촌부가 ‘탁배기 한잔 혀”라고 한 사발 가득 내미는 그 맛이 생각난다. 있는 그대로의 맛. 시큼털털한 그냥 술, 탁배기 한 잔. 그래서 짠지 투성이인 시골 밥상에 얹으면 오히려 단맛을 이끌어 줄 수 있는 그런 녀석. 더운 여름 아름드리나무 밑 시원한 바람에 한잔 털어낸다. 커어, 좋다. 내 삶의 고단함도 털어낼 수 있는 그런 맛.

송명섭 막걸리에는 시골풍경이 담겨있다

송명섭 막걸리를 같이 마셔본 한 친구는 마실 수록 고향의 콩잎 쌈이 생각나다고 한다. 한 여름 된장 한 술 올려 입이 터지라 욱여넣던 고향의 콩잎 쌈밥. 우걱되다 목이 막히면, 시큼하게 목을 뚫어주던 고향 밥상의 맛. 단맛이라고는 일절 없었던 고향 밥상의 누렇고 시큼한 한 사발. 바로 그 맛이란다. 이렇게 투박하고, 솔직하고 시큼한 막걸리는 오랜만이라며 너무 좋단다.

논두렁 새참에 차디찬 냉장 막걸리가 있을 리는 없다. 개울가에 술주전자를 박아놓아 서늘하게 식힌 막걸리라도 있으면 다행이었을 거다. 그저 나무 그늘 밑에서 두어 시간 혹은 하루 종일 버티며, 한 술 뜰 때 한 사발, 한 숨 돌릴 때 한 사발, 한 숨 쉬며 한 사발. 그렇게 하루를 꼬박 버티며 또 한 번 익어갔을 막걸리가 달달할 수는 없다. 맑기만 할 수도 없다. 시큼 털털하게 우리네 목을 축였을 거다. 고향의 정서, 시골의 정감이 시큼하게 담겨있다. 송명섭 막걸리에.

다섯째 잔

온도가 식고, 앙금이 많아질수록 신맛이 강하게 살아난다. 투박하고 직선적인 산미가 술맛을 주도한다. 이 녀석은 야누스다. 온도에 따라 확연히 다른 맛을 지니고 있다. 막걸리를 마시고 ‘카아’라는 감탄사를 뱉을 수 있는 원초적 산미가 찬기운이 가실수록 올라온다. 산미가 앞에서 ‘나요’라고 뻗대지 않는다. 뒤에서 ‘시큼하지’라고 뒤통수를 치며 킥킥댄다. 해학이다. 뒤에서 느껴지는 막걸리의 시큼함. 이 역시 멋지다. 송명섭 막걸리의 시큼한 맛은

달마산에서 바라본 해남의 겨울

헌병 D.P조 생활을 할 때다. 한번 탈영병은 영원한 탈영병이라고, 내가 입대하기 한 참 전에 탈영을 했던 탈영병의 할머니 집이 관내에 있었다. 해남터미널 부근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나오는 이름 없는 어촌 마을까지 혼자 터덜대고 찾아갔다. 혹시나 탈영병인 손자의 소식이 없었나 물어보는 의례적인 방문이었다. 나야 첫 방문이지만 탈영한 이후로 때마다 들락거렸던 선임들을 생각하면 탈영병의 할머니에게는 기약 없이 반복되는 낯설고, 어색한 방문이었을 거다.

“헌병대에서 나왔어요”

“그랴. 추운께 어서 들어오쇼”

남쪽 끝 해남이라 해도 겨울 바닷가 마을의 바람은 차고 매섭다. 흔쾌히 내어주신 아랫목을 차지하고, 뻔한 질문을 했었다.

“혹시 연락은 없었나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만 알아도 좋겠구먼”

“네…” 말이 멋져  D.P 지 일반 사병인 내가 더 물어볼 말은 별로 없다. 매서운 겨울 바닷가, 따뜻한 할머니 방 아랫목에서는 물어볼 말도 노곤노곤 녹아버린다.

“힘들게 왔응께. 밥 한술 먹고 가쇼. 찬이라고는 김치랑 국 밖엔 읎어도”

“네…” 사병에게 사제 밥은 일종의 은총이다. 마다할 수가 없다. 금세 밥상이 들어온다. 찬은 두 가지. 김치와 황석어젓. 앞바다에서 캐오신 조생 굴로 끓인 시금칫국 한 그릇과 하얀 쌀밥. 맛있다. 정말 맛있다. 군인이어서 맛있는 밥상이 아니다. 쌀의 단맛을 살려주는 곰삭은 황석어젓을 구수한 시금치 굴국이 포근히 안아준다. 땅속 김장독에서 익어가던 전라도 김치의 매콤한 감칠맛이 더해진다. 허둥지둥. 탈영병 찾으러 와서 할머니 밥상의 포로가 되었다.

“배고팠는가 보네. 천천히 드셔도 되니께, 묵고 더 자셔”

“감사합니다. 너무 맛있어요” 빙그레 웃으시던 탈영병의 할머니가 한 말씀 더하신다.

“막걸리 한잔 줄까?”

“아.. 술은..”

“한잔 묵고 쉬었다 가. 읍내 가는 버스 올람 멀었응께. 내가 담근 거라 맛은 읎어”

그럴 리가요. 시원하게 떠오신 뽀얀 막걸리 한 잔. 한 모금 벌컥 들이마신다. 쩡하다. 시금털털한 막걸리가 쩡하게 머리를 깨우고, 가슴을 달군다.

“어뗘 마실만한가?”

당연하지요. 캬아 소리 절로 나오는 시큼하고 시원한 술맛에 무장해제가 된다. 구름 끼어 어둑한 방 안에서 군인 나그네는 포근함으로 한 모금을 더한다. 엉덩이는 따뜻하고, 배는 부르고, 가슴은 뜨겁고, 입은 즐겁고, 눈꺼풀은 무겁다.

“할머니 저 잠깐 누워도 될까요?”

“잉. 그랴. 나 저짝에서 마늘 깔게 있응께. 편히 누워있어. 버스 올짝 되면 내 알려줄텐께”

장작 때워 뜨끈한 아랫목에 염치를 깔고 눕는다. 갈색 나무 창틀 넘어 보이는 해남의 회색 구름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덜컹거리는 바닷바람이 겨울의 정취를 싣고 불어오는 남해의 휘파람 같다. 포근하고 따스하다. 아.. 막걸리 한 잔만 더 마신다고 할 걸 그랬나. 뻔뻔한 후회가 밀물처럼 넘쳐온다. 30년 후에야 나는 그 맛을 다시 만났다. 시큼털털한 송명섭 막걸리.

승발이의 맛 평가 :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도드라진 맛이 없는 점이 오히려 강한 개성이 된 막걸리. 천천히, 맑은 맛과 시큼털털한 맛을 한통에 모두 지닌 야누스적 맛의 막걸리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차지 않게 마셔볼 것을 적극 권장한다. 시큼한 맛 뒤에 숨은 은은한 단맛과 좋은 추억을 만날 수 있다. 4.9점(5점 만점)

어울리는 맛과 멋 : 토속적인 음식 무엇과 합을 맞춰도 훌륭한 막걸리다. 특히 회와 함께 마시면 좋은 몇 안 되는 막걸리다. 단, 초장보다는 된장을 준비할 것. 회맛도 좋고 술맛도 좋다. 함께할 음악은 오티스 레딩의 “Sitting On The Dock Of The Bay’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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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발이-백반기행 피디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CP(책임 피디)로 전국의 맛깔나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여행을 하던 중 막걸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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