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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수록 좋은, 선운산 생막걸리(고창, 농업회사법인 고은(유))

승발이-백반기행 피디
- 7분 걸림 -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송창식의 ‘선운사’ 중에서)

가을의 선운사 입구

늦여름 바람이 솔솔 부는 날 선운사에 가본 적은 있지만 애석하게도 동백꽃을 본 적은 없다. 대신 장어집은 원 없이 봤다. 스님들 수양하는 도량 가는 길에 정력의 상징인 장어집이 끝도 없이 도열해 있는 곳은 선운사 밖에 없을 거다. 대부분의 사찰 주변이 산채 비빔밥, 감자전, 도토리 묵 등에 포위되어 있다면, 선운사는 풍천장어로 무장하고 있다. 선운사를 둘러싼 장어집들의 압도적 위용에 ‘아 한 번은 이곳에서 장어를 먹어봐야 하나’라는 생각이 절로 스며들지만 꾹 참는다. 비싸다.

대신 편의점을 겸하는 국숫집에서 잔치국수 한 그릇과 묵무침 한 접시를 택한다. 후루룩 쩝쩝 먹던 중에 시선이 냉장고 막걸리 통에 닿는다. 디자인도 심플하고, 왠지 기대감이 생기는 막걸리다. 선운산 생막걸리.

알코올 : 6도

원재료 : 정제수, 쌀, 입국, 누룩, 구연산, 아소말토올리고당, 아세설팜칼륨


첫 잔

맑은 맛이다. 단맛도, 신맛도 연하다. 워낙 차게 보냉이 되어서 그런지 도드라진 맛과 향은 없이 쉽게 목을 타고 넘어간다. 단맛을 조금 절제하면 옆 동네 정읍의 송명섭 막걸리의 발란스와도 닮아있다. 막걸리의 찬기운을 좀 식혀서 마셔봐야 정확한 맛을 알겠지만, 첫인상은 좋다. 탄산기가 절제되어 있어, 부드럽고 맑게 넘어간다. 특히 연한 단맛과 신맛의 조화가 괜찮다.

둘째 잔

온도가 높아지니 단맛이 조금 더 느껴진다. 살아난 단맛이 산미와 얽히니 연한 요구르트의 맛도 느껴진다. 섹시하게 혀를 감싸는 힘은 적다. 맑은 무난함이 이 녀석을 술술 넘기게 한다. 둘째 잔에서는 목 넘김에 탄산이 느껴진다. 입에서 스리슬쩍 넘어간 막걸리가 목을 툭툭 치며 탄산의 존재감을 알린다.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고창은 마케팅 적으로 복 받은 고장이다. 다른 지역이 하나도 갖기 힘든 전국구 시그니쳐를 4개나 갖고 있다. 고창 선운사, 고창 풍천장어, 고창 복분자, 고창 고인돌까지. 앞에 고창이라는 지명이 빠지면 왠지 헛헛해지는 아이템들이다. 나는 안산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지만, 아직도 안산 뒤에 붙일 수 있는 아이템은 ‘공단’ 밖에 생각이 안 난다. 안산 공단. 딱 떨어진다. 고장의 이름이 특정 아이템의 고유 수식어가 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토착성과 사람들의 기호를 사로잡을 수 있는 특별한 개성이 필요할 것이다. 이 녀석이 고창 선운사 막걸리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타 지역의 사람들에게 어필할 매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셋째 잔

청량감이 좋은 녀석이다. 등산 후, 밭일 후, 땀을 흘린 후에 한잔 마시면 커어하며 시원하게 입과 가슴을 적실 수 있는 막걸리다. 산미를 더 높이면 청량감이 배가될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온도가 식을수록 송명섭 막걸리에서 맑고 순한 호랑이 막걸리로 옮겨간다. 요구르트 맛이 강하다는 의미다.

온도가 높아질수록 달아진다

장어집이 도열된 선운사 가는 길에 난 잔치국수와 묵무침을 선택했다. 싼 맛에 선택한 메뉴였지만 결과는 아름다웠다. 뽀얗고 통통한 중면의 잔치국수는  소면이 말아진 여타 국숫집의 빈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멸치를 기본으로 고창 갯벌의 자잘한 바지락이 더해진 육수는 깊고도 가벼웠다. 노란 달걀지단과 빨간 실고추가 곁들여진 색감은 정성스러웠다. 감칠맛 가득 짭조름한 국물에 말아진 중면의 조화가 입안에서 잔치를 벌인다. 묵도 더할 나위 없었다. 개인적으로 탄력이 넘쳐흐르는, 젤리처럼 탱글탱글한 ‘도토리’ 묵을 선호하지 않는다. 투명하고 탄력 있는 도토리 묵일수록 ‘맛’이 없다. 양념 맛과 식감 이외에 아무 ‘맛’도 없다. 진짜 '도토리' 묵은 살짝 푸석한 식감과 은은한 떫은맛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고소한 참기름과 어울려 묵무침의 맛을 완성할 수 있다. 완성형 도토리 묵무침을 편의점 안 국숫집에서 만났다. 아마도 냉장고 속 막걸리에 눈이 간 것은 멋진 음식에 대한 본능적 끌림이었을 것이다.

관광지에도 맛집은 있다

넷째 잔

단맛이 많이 강해졌다. 선운산 생막걸리는 차게 마시는 게 좋다. 일주일간 김치냉장고에서 보냉 된 효과가 충분한 막걸리다.

숨겨진 맛집을 찾는 것은 행복한 우연이다. 특히 관광지의 식당촌에서는 우연한 만남이 주는 행복이 배가된다. 편의점 안 국숫집이 그렇다. 엄청난 개성이 있어서 감동을 주는 집은 아니다. 6000 원 작은 한 그릇에 정성을 더한 맛이 감동이고, 도토리 묵을 도토리 묵답게 맛 보여준 기본기가 감동이다. 이 정성과 기본기에 세월이 쌓이면 ‘선운사’의 국숫집이라는 고유한 지명 수식어가 붙을 수 있을 것이다. 선운사 생막걸리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떫은 맛이 있어야 진짜다

승발이의 맛 평가 : 차게 해서 마셔야 괜찮은 막걸리. 너무 무난하여 아쉽다. 과감히 산미를 높여보면 어떨까. 3.7점(5점 만점)

어울리는 맛과 멋 : 도토리 묵은 막걸리의 영원불멸의 파트너다.  옅은 떫은맛이 은은히 감도는 진짜 도토리 묵을 파트너로 한다면 멋진 한잔의 앙상블을 완성할 수 있다. 단맛이 강한 막걸리와 어울리는 바지락 전도 아주 괜찮다. 음악은 너무도 당연히 송창식의 ‘선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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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발이-백반기행 피디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CP(책임 피디)로 전국의 맛깔나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여행을 하던 중 막걸리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