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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해창 막걸리(해남, 해창주조장)

승발이-백반기행 피디
- 8분 걸림 -

운이 좋은 날이 있다. 인터넷 쇼핑을 떠돌다 사고 싶은 등산복을 싸게 살 때라던가, 동묘시장에서 상태 좋은 명품을 만난다던가, 돼지갈빗집에서 의외의 냉면 맛을 만났을 때 같은 경우 말이다. 이 녀석을 만난 날이 그랬다. 동네 마트 주류 코너를 습관처럼 둘러보다가 녀석을 보았다. 비싸 봐야 3,000원이면 충분한 동네마트 막걸리 진열장에서 무려 6,500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표를 붙이고 있던 이 녀석을. 전국구로 이름을 날리는 땅끝마을 막걸리, 해남의 해창막걸리다.

해창막걸리는 일반 막걸리와는 다르게 6도, 9도, 12도 세 가지 종류의 막걸리가 유통된다. 한정 수량으로 알코올 도수 18도의 롤스로이스 막걸리가 약 300병 정도 판매되기도 하는데, 가격이 무려 110,000원이다. 도대체 뭔 맛이길래 막걸리가 11만 원이나 하냐는 원성이 자자한데, 그 이유는 아직 마셔보지 못해서 난 모른다. 다만 6도짜리 막걸리 맛도 훌륭하니, 11만 원 막걸리는 어떨지 무지막지하게 궁금할 뿐이다.

해창은 앙금의 점도가 진하다

첫 잔

6도, 6500원 해창 막걸리의 첫 잔이다. 진하다. 잔을 채우는 막걸리의 질감이 보통 막걸리와는 다르다. 굉장히 걸쭉하다. 농밀한 질감의 해창이 부드럽게 입을 채운다. 아름답다. 달지만 단맛이 자연스럽다. 단맛이 혀를 스치며 지나가니 은은한 신맛이 다가오고, 뒤이어 쌉싸래한 술맛이 마무리를 한다. 훌륭한 맛의 앙상블이 내 입을 적셔준다. 탄산은 잔잔하게 깔려있기에 목 넘김이 부드럽다. 아, 좋다.

좋은 단맛은 비싸다. 일반 맵쌀이 아니라 찹쌀이 많을수록 단맛이 높아지기 때문에, 질 좋은 단맛을 내기 위해서는 찹쌀을 많이 써야 한다. 해창이 그렇다. 찹쌀 함유량이 높다. 대신 단맛을 내는 화학 감미료가 전혀 들어있지 않다. 오로지 쌀과 누룩만으로 술맛을 만든다.

둘째 잔

해창은 탄산이 적지 않다. 다만 농밀한 술의 질감 안에 탄산이 숨어있어 잘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입 안에 막걸리를 잠시만 머금고 있으면, 농밀한 질감 속에 숨어있던 탄산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해창의 힘이다. 간이 센 안주와의 합도 좋다. 매콤 짭조름한 매실 장아찌와 함께 하니 단맛의 화려함 뒤에 숨어있던 막걸리의 구수함이 모습을 드러낸다. 잘 익은 요구르트와 미숫가루를 함께 마신다고 할까.

막걸리는 신맛, 단맛, 쓴맛, 세 가지 맛의 앙상블이다. 쌀의 단맛을 누룩곰팡이가 먹고 배설, 즉 발효를 한 결과가 신맛과 알코올이다. 일차 발효, 즉 술 발효가 완성되면 막걸리에는 신맛고 쓴맛만 남는다(이 맛을 극대화한 술이 차후에 다룰 정읍의 송명섭 막걸리다). 따라서 어느 선에서 발효를 조절하느냐에 따라 신, 단, 쓴 막걸리 맛의 앙상블이 결정된다. 해창 막걸리는 단맛에 보다 비중을 두고, 산미와 쌉쌀한 술맛을 화려한 단맛 뒤에 숨겨 놓았다. 이런 녀석은 급하게 마시면 안 된다. 천천히 음미하며 화려한 단맛 뒤에 숨겨진 멋진 산미와 쓴맛을 느껴야 한다. 벌컥벌컥이 아니라 꿀떡꿀떡 마셔야 한다.

셋째 잔

단맛과 산미의 조화가 술을 더 당기게 한다. 해창을 배고플 때 마시면 위험하다. 너무 술술 들어간다. 해창 단맛의 화려함에 익숙해지니 이제야 숨어있던 강단 있는 쌉쌀함이 제법 느껴진다. 본격적인 술맛은 세잔은 마셔야 알 수 있는 것이 해창 막걸리다. 벌컥 단숨에 마시면 단맛이 강하지만 입안에서 조금만 돌려 음미하면 좋은 쌉쌀함이 산미를 타고 넘어와 혀 끝을 유린한다.

단맛이 강하면 강할수록 발효는 왕성해지고, 산미와 알코올 도수가 높아진다. 이는 자연의 논리이자, 생물학의 결과다. 단맛이 가장 적은 보리를 기초로 하는 맥주가 막걸리보다 도수가 낮고, 단맛이 가장 강한 와인이 도수가 가장 강한 것도 자연의 논리가 연산한 결과값이다. 해창의 도수가 다양한 이유도 동일하다. 단맛을 높여 알코올 도수를 높인 것이고, 그러기 위해 질 좋은 해남 찹쌀을 계약 재배하여 술을 빚은 덕분이다. 12도의 해창은 어머어마한 찹쌀 발효의 결과물이다. 물론 찹쌀만 때려 넣는다고 막걸리가 쉽게 빚어진다면 세상 일이 이토록 힘겹지도 않을 거다. 술을 빚을 때 누룩의 종류, 배합의 비율, 술이 익을 때 열을 다루는 기술 등등 수많은 디테일이 함께 한다. 막걸리 장인의 손맛은 자연의 논리를 푸는 섬세한 과정이다.

해남에 간다면 한번 쯤 다녀와도 좋은 집이다

해남에 한성집이라는 제법 유명한 한정식집이 있다. 오래된 옛 가정집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한성집의 한 상을 받아보면 해남 맛의 풍성함을 알 수 있다. 떡갈비를 필두로 회무침, 육회, 병어, 꼬막에 각종 나물과 젓갈이 밥상 위에 맛깔지게 깔린다. 좌익에 진도, 우익에 완도가 위치하고 너른 논밭이 펼쳐진 넓은 해남 땅의 비옥함은 맛의 풍성함으로 이어졌다. 그 상징 같은 밥상이 한성집의 밥상이라면, 해창 막걸리는 해남의 상징 같은 막걸리가 되었다. 오래된 일식 가옥과 정원을 그대로 살린 옛 양조장의 정취는 해창 막걸리에 역사와 멋이라는 스토리를 갖게 하였다.

해창 주조장에 남긴 허영만 선생의 방문기

'벼루고 벼루다가 지금에야 왔오. 진즉 오지 못한걸 후회하고 있오....술맛에 빨려 금세 취하고 말았오. 주인부부의 마음 넉넉함과 오랜 역사를 지닌 정원에 흠뻑 젖고 말았오'라는 식객 허영만 선생의 방문록은 공치사가 아니다.

해창주조장의 주인장은 서울 사람이다. 서울 영등포 토박이란다. 공기업에서 수십 년을 근무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막걸리가 좋아 땅끝 해남에 왔고, 유서 깊은 해창주조장을 인수하여 막걸리 장인이 되었다. 8월 끝자락에 해창주조장에서 만난 주인장의 자신감 있는 한마디는 해창 막걸리의 힘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막걸리가 있어요. 해창 막걸리와 그 이외의 막걸리요"

승발이 맛 평가(5점 만점) : 기분 좋은 달달함과 농밀한 질감 뒤에 있는 산미와 쌉쌀함, 탄산의 톡 튀는 느낌까지. 에릭 클랩튼의 기타가 생각나는 맛. 남도식 육회 무침과 함께라면 너무 좋다. 4.5점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1건)
해창막걸리한성정해남허영만식객

승발이-백반기행 피디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CP(책임 피디)로 전국의 맛깔나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여행을 하던 중 막걸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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