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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타운의 트렌디함을 눈치챈, 호랑이 생막걸리

승발이-백반기행 피디
- 8분 걸림 -

올드타운에 들어서면 습관적으로 찾아보는 간판이 있다. 중국집. 내공이 있어 보이는 중식당이다. 올드타운의 노포 중식당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트렌디한 음식이 있기 때문이다. 짜장면이다. 빈약하다 못해 어설프기 짝이 없는 내용물에 전분 범벅을 한 들쩍 찌 근한 짜장면이 아니다. 풍만하고 세련된 맛으로 꾸민 듯 안 꾸민 옛날 짜장면 말이다.

덕성각 옛날 짜장

각종 야채에 다진 고기와 깍둑 썰기한 돼지고기가 잔뜩 들어있다. 춘장에 잘 볶아진 짜장에 투박하게 썰은 삶은 감자 몇 조각이 툭하니 올라가 있다. 일명 ‘옛날 짜장’은 나에겐 최고의 트렌디 스타다. 면에 슥슥 비벼질 때 묻어나는 기름진 캐러멜 톤은 너무 자극적이다. 면이 품고 있던 열기와 어우러져 훅하니 올라오는 고소하고 달달한 향기는 섹시하다. 최소한의 전분으로 녹진하게 만든 소스는 포근하다. 입술 주변에 짜장을 묻히며 훅하고 면을 한 입 가득 빨아들인다. 부드러운 면의 촉감과 달콤한 짜장이 혀를 간지롭힌다. 우물우물. 옛날 짜장면을 천천히 우물거린다. 면과 야채와 다진 고기가 짜장 소스와 입 안에서 섞이며 맛을 더해간다. 꿀꺽. 목젖을 타고 보드랍게 넘어간다. 깔끔하다. 옛날 짜장은 거칠게 끈적이지 않는다. 그래서 트렌디하다. 이 멋진 맛에 어울릴 막걸리를 생각해본다. 투박하지 않은, 한 모금 벌컥 마셨을 때 입안이 달콤 개운해지는 그런 녀석. 뭐가 있을까? 그래, 이 녀석이 좋겠다. 호랑이 생막걸리다. 전통주 회사로 유명한 배상면 도가의 장녀가 만든 막걸리다. 디자인이 깔끔하다.

첫 잔

오호~ 호랑이 생막걸리. 이 녀석은 발란스가 좋다. 탄산의 청량감에 산미와 단맛이 풍성하게 실려있다. 막걸리가 지나간 후에는 희미한 누룩향까지 남는다. 경쾌한 맛이다. 특히 산미와 단맛의 균형감이 달달 상큼한 요구르트 맛을 만들어 준다. 단맛이 조금 적었으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다. 디자인과 맛이 어울리는 보기 드문 녀석이다.

둘째 잔

술이라고 하기에는 맛이 곱다. 그만큼 단맛이 도드라지게 느껴진다. 하지만 인위적인 단맛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산미도 ‘시큼’함이 아니라 ‘상큼’한 맛이다. 거친 파도와 바람을 마주하고 들이키는 거친 막걸리의 성정이 아니다. 올드타운의 노르스름한 암바톤 조명 아래서 레트로의 세련됨을 즐기는 트렌디한 막걸리다. 짙은 블루톤의 슬림한 셔츠에 윗 단추 두어 개를 풀어놓고, 가죽 스트랩 손목시계를 찬 손으로 막걸리 잔을 들고 있는 그런 녀석. 한 잔 시원하게 털어놓고 환한 웃음을 짓는, 그런, 막걸리다.

올드타운 골목에는 기대감이 있다

올드타운 종로의 뒷골목에는 많은 중식당이 숨어있다. 그중 한 집이 종로 6가 먹자골목의 끝자락에 위치한 덕성각이다. 옛날 짜장으로 유명한 이 집에서 나는 시대의 트렌디함을 느낀다. 땀 내 가득한 종로 바닥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오래된 사람이 이곳에 있다. 예전 맛을 못 잊어 손주와 함께 찾아온 더 오래된 사람도 있다. 인스타그램을 위해 애인과 연신 사진을 찍는 요즘 사람도 있다. 오래된, 더 오래된, 요즘 사람들을 한 곳에 공존하게 만든 건, 물론, 옛날 짜장이다. 좋은 맛은 세대가 공존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 힘을 함께 향유하는 것이 나에게는 트렌디함이다. 막걸리도 그럴 수 있다.

셋째 잔

호랑이 생막걸리는 안주와의 어울림도 괜찮다. 적당한 탄산 감이 입을 거칠게 만들지 않는다. 다만 뚜껑을 따고 시간이 지나니 탄산이 처음보다 약해진 탓에 단맛이 조금 더 강해진다. 막걸리를 달달한 맛에 마시는 사람들에게 좋은 녀석일 것이다. 아마도 막걸리 주조의 포커스를 자연스러운 단맛에 맞춘 듯하다. 농도도 적당하다. 전체적으로 이 녀석의 균형감은 참 좋다. 감미료로 에리스리톨이라는 것을 썼다. 지금껏 여타 막걸리 탭에서 보지 못한 감미료다. 설탕 단맛의 70% 정도의 감미료란다. 새로운 시도다.

넷째 잔

‘산미가 강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 중에 탭에 쓰인 마케팅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호랑이 생막걸리 8주 스토리. 자연의 단맛이 8주 동안 살아있습니다’

무려 두 달 유통이다. 10일 유통을 자랑하는 서울 장수 생막걸리와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난 두 달 유통의 길을 지지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즉 술이 익을수록 맛은 더 깊어진다. 대부분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단맛이 줄고 산미가 강해진다. 발효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리고 향이 깊어지며, 맛이 다채로워진다. 10일 된 풋내기 막걸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술의 깊이가 저가 막걸리의 플라스틱 통 안에서 익어간다. 8주 동안 살아있다는 호랑이 생막걸리는, 자기가 술임을, ‘생’ 자를 붙이고 있는 살아있는 술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만, 자연의 단맛이 8주 동안 살아있다는 말은 의문이다. 계속 유지되는 단맛은 감미료의 맛일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지날수록 술의 당은 효모의 먹이로 사라진다. 자연의 단맛은 그렇게 사라져야 한다.


생막걸리는 유통, 보관 기간 동안에도 계속 변화한다. 하루, 이틀, 사흘…10일 후, 20일이 지나고, 한 달. 언제 마셔도 다 같은 막걸리지만, 또 다 다른 막걸리다. 모든 막걸리가 그렇다. 그게 막걸리의 매력이다. 하나의 맛으로 규정할 수 없는, 시간이 만드는 다양성이 한 통의 막걸리 안에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막걸리가 트렌디하다. 그리고 호랑이 생막걸리는 막걸리의 멋짐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그 정도는 파악하고 있는 녀석이다. 눈치가 제법 있는 막걸리다.


승발이의 맛 평가 : 확 튀는 개성은 없지만, 세련된 균형감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막걸리. 8주 후 맛이 궁금하다. 4점(5점 만점)

어울리는 맛과 멋 : 덕성각의 옛날 짜장, 오구반점의 군만두 등 기름진 중식과 함께라면 좋다. 탕수육은 부먹으로. 단, 소스를 함께 둘러 볶아준 탕수육으로. 지나치게 끈적이는 전분 소스 속에서 헤엄치는 탕수육은 별로다. 아! 혹시라도 감자가 들어있는 옛날 짜장을 먹는다면 팁이 있다. 얹어 나오는 감자를 으깬 후 짜장 흠뻑 먹은 면에 비벼서 먹어보라. 기가 막히다. Andrew Bird의 ‘Sisyphus’도 함께 비비면 게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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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발이-백반기행 피디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CP(책임 피디)로 전국의 맛깔나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여행을 하던 중 막걸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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