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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맛동산, 하동

승발이-백반기행 피디
- 9분 걸림 -
섬진강 이웃사촌 하동과 광양

광양 청매실 농원에서 홍쌍리 선생님을 뵙고 오는 길이였다. 광양에 왔으니 광양 막걸리 몇 통 사가야겠구만 하는 마음으로 국도변 가게에 들렸다. 제법 정돈이 잘된 국도 변 슈퍼 냉장고에 막걸리 4종이 있는데 다 하동 막걸리였다.

“사장님 여기는 광양인데 왜 하동 막걸리만 있나요?”

“여가 광양이지만 하동이 더 가차붜서 그 놈들만 갔다놔요. 광양은 주문을 넣어도 멀어서 오질 않아”

내가 들린 곳은 섬진강 줄기 따라 경상도와 전라도가 마주보고 있다는, 그 옛날(1988) 조영남 선생께서 노래했던 바로 그곳. 화개장터가 가까운 광양이였고, 서민들의 경제 생활권은 하동이 가까운 곳이였다. 어쩔 수 없이 전남 광양에서 경남 하동의 막걸리 두 종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하동 참좋은 술(고전양조장)과 정감 생막걸리(하동 억양주조)였다.

하동 참좋은 술 막걸리. 이름이 길다

하동 참좋은 술(경남 고전양조장)

하동군 고전면 막걸리다. 지도를 보니 하동 포구에서 가까운 지역이고, 홍쌍리 선생님의 청매실 농원과도 제법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광양까지 유통이 된 걸 보면 제법 수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뒷 태그의 성분표를 보니 지금까지 본 막걸리 중 가장 디테일한 성분표를 가졌다. 발효제의 종류로 입국, 곡자, 국, 효모까지 4 종류가 표시되어 있다. 가라앉은 앙금이 상당히 거칠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막걸리다.

발효제가 4종류다. 입국, 곡자, 국, 효모

첫 잔

산미가 강하게 첫 인상을 준다. 입 안에 은은한 누룩향을 타고 단맛이 살짝 넘어 온다. 예전 막걸리 맛이다. 특히 산미가 강하고, 쓴맛은 크지 않다. 좋다.

둘째 잔

상쾌하다. 이렇게 상쾌한 산미의 막걸리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특히 요즘처럼 단맛에 포커스를 맞추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산미 뒤에 단맛이 은은히 받쳐주고, 누룩향과 쓴맛도 과하지 않다. 신맛을 중심으로 균형감이 좋은 녀석이다. 매콤하게 끓인 도루묵 찌개와 합을 맞춰본다. 단맛이 스윽하고 치고 올라온다. 아주 좋다.

솔직히 고백하면 난 하동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음식으로 지역을 기억하는 나에게 하동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지역이었다. 재첩이 유명하지만, 그것도 섬진강의 재첩이지 하동의 재첩으로 기억하지는 않았다. 섬진강도 구례의 섬진강, 광양의 섬진강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식문화가 없는 곳이라는 편견에 하동보다는 구례, 광양에서 한 끼를 먹는게 더 괜찮은 선택이라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하동 막걸리에 대해서도 별 기대감이 없었다. 짧고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이토록 상쾌한 산미의 맛을 만들어 내는 발효 기술이 있는 지역이라면, 맛의 깊이도 충분할 것이다. 가려져 있는 것은 없는 게 아니다. 찾아 내지 못하고 편견만 갖고 있던 나를 반성하게 하는 맛이 이 막걸리에 담겨잇다.

재첩국은 섬진강의 선물이다

셋째 잔

산소를 머금어서인지 산미가 살짝 더 강해졌다. 그러니 할머니가 담궈 주셨던 그 맛이 느껴진다. 이 산미가 개인적으로 너무 좋다. 아껴먹고 싶다.

술에서 쓴맛은 알코올 발효의 맛이고, 산미는 젖산 발효의 맛이다. 젖산 발효가 과하면 술이 시어지고, 최종적으로는 식초가 된다. 따라서 젖산 발효를 잘 제어하지 못하면, 술을 망치기 쉬어진다. 그렇다고 젖산균을 배제하면 술에 잡균 번식이 쉬워져 잡미가 강해지거나, 단맛 위주로 술맛이 단순해질 수 있다. 맛있는 산미는 알코올 발효 효모와 젖산 발효 효모의 절묘한 동거의 결과이다. 이 절묘한 동거를 관리하는 기술은 장인의 솜씨다.  아마도 네 종류의 발효제-입국, 곡자, 국, 효모-를 쓰는 이유도, 절묘한 발효 효모의 동거를 위해서가 아닐까?

막걸리 한 통이 하동에 대한 어리석은 편견을 가지고 있던 나를 일깨웠다. 얼큰한 기분으로 반성을 하며, 같이 샀던 다른 막걸리-정감 생막걸리-한 통도 집어든다. 이 녀석은 또 어떤 맛일까? 마개를 따는 이 순간이 너무 설래인다.

멋진 녀석이다

정감 생막걸리(하동 악양주조)

참좋은 술이 있는 고전면과는 제법 거리가 있는 지리산 자락의 주조장에서 만드는 막걸리다. 악양면은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되는 마을이라고도 한다.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마을의 막걸리다.

첫잔

우하하. 하동은 막걸리 맛동산이다. 앞서 마셨던 고전양조장의 참좋은 술과는 정반대애 지점에서 훌륭한 맛을 준다. 단맛이 농후하고 걸쭉한 막걸리. 보드랍게 목젖을 적시는 막걸리. 딱 그 맛이다. 농밀한 질감의 단맛이 입안을 가득 채우지만 자연스러운 맛이기에 거북하지가 않다. 좋은 단맛이다. 여성들이 더 선호할만한 보드러운 단맛이다. 누룩향도 느껴지지 않아, 맑은 향의 막걸리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더 좋아할 수 있다.

둘째 잔

단순히 달기만 하지도 않다. 이 녀석은 산미가 배경에 은은하게 받쳐준다. 발효가 더 진행되면 산미가 강해져 더 좋은 맛이 나올 것 같다. 탄산은 약하지만, 그만큼 목넘기이 수월하다. 해남의 해창 막걸리 서민판을 마시는 듯 하다.

막걸리에 정이 퐁당. 딱이다

셋째 잔

잘익은 막걸리 한 사발의 맛. 이 녀석은 딱 그 맛이다. 잘 익은 과일에서 숙성된 단맛이 느껴지듯, 정감 생막걸리에도 숙성된 단맛이 있다. 막걸리 단맛을 좌우하는 요소 중 하나는 발효의 정도이다. 술을 담가 완전 발효시키면 단맛은 거의 사라진다. 효모가 당을 먹이 삼아 알코올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알코올 도수가 높으면, 그만큼 술안의 많은 당을 소비한 거고 따라서 단맛은 적어진다. 이 녀석, 정감 생막걸리의 단맛은-물론 감미료의 영향도 있겠지만- 적당한 발효 정도와 찹쌀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찹쌀의 함량이 높을 수록 농밀하고 정감있는 단맛이 만들어진다. 쉽게 말하면, 이 녀석은 좋은 재료로 잘 발효시킨 술이다.


넷째 잔

아껴 먹으려고 남긴다. 며칠 더 숙성되면 어떤 맛일까 궁금도 하다. 하동 막걸리 득템했다.


승발이 맛평가(5점 만점) : 산미를 좋아하는 사람은 참좋은 술을, 단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정감 생막걸리를,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둘 다. 5점.

어울리는 맛과 멋 : 참좋은 술은 하동의 재첩국과 재첩회무침과 함께 하면 좋다. 맑은 산미가 재첩의 섬세한 맛과 잘 어울릴 것이다. 정감 생막걸리는 광양 불고기와 함께 하면 어떨까 싶다. 농밀한 단맛과 숯불향 가득한 광양불고기의 고소함이 입안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반주 곡으로는 라벨의 [볼레로]를 강추한다. 악기가 하나씩 더해지면서 곡이 풍요로워 지는 [볼레로]처럼 잔이 거듭될 수록 행복해 지는 나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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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발이-백반기행 피디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CP(책임 피디)로 전국의 맛깔나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여행을 하던 중 막걸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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