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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약천골 지장수 생막걸리(동해, 낙천탁주제조장)

승발이-백반기행 피디
- 7분 걸림 -
넉넉한 막걸리다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할 때 난 종종 동네 마트에 간다. 뜬금없이 판매되고 있는 전국의 막걸리를 만날 수가 있다. 일종의 우연한 만남. 막걸리 한잔으로 여행을 대신해보려는 얄팍한 술꾼의 꼼수를 마트는 이해해준다. 약천골 지장수 생막걸리도 그렇게 만난 강원도 동해의 막걸리다. 동해의 막걸리를 동네 마트에서 만난 것도 신기한데, 1700ml 대용량에 해풍발효라고 한다. 해풍 건조 조기, 해풍 맞은 시금치 등 다양한 해풍 먹거리를 만나봤지만 해풍발효는 첨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지장수’라는 제품명이다. 물에 황토흙을 섞어 가라앉힌 후 위에 뜬 맑은 물을 말하는 지장수가 이 막걸리의 마케팅 포인트인 듯하다. 2022년 대한민국 주류 품평회 대상 수상이라는 문구도 보인다. 의외로 알코올 도수가 5도로 낮다. 요모조모로 다양한 재미거리를 갖고 있는 녀석이다.


알코올 : 5도

원료명 : 정제수(지장수), 쌀(외국산), 입국, 개량누룩, 효모, 물엿, 정제효소, 아스파탐, 사카린나트륨


첫 잔

맑은 맛의 술이다. 걸쭉하지 않은 질감의 막걸리가 무난하게 넘어간다. 약간의 산미와 단맛이 어우러진다. 단맛이 스친 후 남는 쓴맛은 사카린을 첨가한 막걸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그 맛이다. 산미가 아예 빠진 맛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산미가 좋은 느낌은 아니다. 무난히 넘어가는 맑은 목 넘김이 가장 인상이 깊다.

황토기 정수한 물, 지장수로 빚었다고 한다

둘째 잔

지장수의 효과인지 확언할 순 없지만, 확실히 목 넘김은 부드럽다. 술술 넘어간다. 5도라는 낮은 도수의 효과일 수도 있다. 발효 원주가 5도일 수는 없고, 12~13도 정도 되는 원주의 도수를 낮추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물을 섞을 수밖에 없다. 만약 6도 막걸리보다 1도 낮추기 위해 물을 그만큼 더 많이 섞었다면, 당연히 더 맑은 목 넘김이 가능할 것이다. 술꾼에게 이게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모를 일이다. 물이 많이 섞인 술을 좋아하지는 않을 테니. 지장수가 어디에 쓰였는지도 궁금하다. 술을 빚을 때만 쓰였는지, 원주의 도수를 낮출 때도 쓰였는지에 따라 맛의 질감이 달라질 수 있다. 둘 다 사용되었으면 가장 좋을 텐데. 정확히 알 수는 없다. 5도이지만 속이 알싸하니 술 마신 느낌이 난다. 심심한 맛이 나름 속을 데운다. 뒷맛에 남는 사카린의 잔 맛은 여전하다. 투박한 시골 막걸리의 특징 그대로다.

해풍발효. 낯선 단어다

셋째 잔

해풍발효의 특징은 무엇일까? 바닷바람이 술 발효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보통 술 발효에 영향을 미치는 효모는 정주형이다. 한 공간에 토착적으로 거주하는 효모균들이 술 발효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예전 양조장들은 실내 청소도 조심했다. 술을 익혀주는 효모균들이 사라질까 하는 두려움이 때문에. 해풍발효는 말 자체는 그럴 듯 하지만, 실제로 어떤 발효를 의미하는지 술에 어떻게 작용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약천골 지장수 생막걸리는 맑은 맛에 포인트를 두면 괜찮은 막걸리다. 마시는 내내 느껴지는 사카린의 뒷맛만 제어할 수 있다면 더 좋을 수 있다. 걸쭉한 막걸리였다면 오히려 덜 했을 사카린의 잔맛이다. 맑은 막걸리기에 사카린의 뒷맛이 더 도드라지게 느껴진다.


넷째 잔

넷째 잔을 따르면서 이 녀석의 진면목을 깨달았다. 아직도 병이 묵직하다. 1700ml 대용량의 힘이다. 보통 막걸리였으면 술을 따르는 병의 가벼움 때문에 섭섭했을 시점임에도, 이 녀석은 듬직하다. 한 참을 더 마셔도 끄떡없을 기세다. 잔이 거듭될수록 탄산이 조금 더 느껴지는 것 이외에는 맛도 꾸준한다.


2년 전쯤 철원의 한 시골마을 구멍가게를 들렸던 적이 있다. 시골 가게치고는 제법 다양한 철원 막걸리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아주머니 여기서 제일 잘 나가는 막걸리가 뭐예요?”

“저기 저 놈. 젤로 큰 거 있잖아요. 저것이 젤 잘 나가요”

“맛있나 보네요”

“그건 모르겠고. 크니까. 크고 싸니까. 노인네들 일 하다가 한 잔. 밥 먹으면서 한 잔. 심심해서 한 잔. 잠 안 와서 한 잔. 좋잖아요. 자주 막걸리 사러 나오기도 귀찮은데 사다 놓으면 오래 먹고 좋지”

하루를 정리하며 마시는 도시인의 술과 달리 농사를 짓는 시골 노인들에게  막걸리는 일상을 공유하는 친구일 것이다. 이래저래 한 잔, 한잔 한다고 할매에게 잔소리 들어서 또 한잔. 막걸리 한 모금에 아쉬운 육신을 달래고, 흐르는 시간을 담는다. 새털같이 많지만 한 없이 가벼이 흐르는 시간에 젖어버린 몸을 달래는 막걸리 한 잔은 늘 넉넉해야 한다. 달짝한 첫맛이 지나며 남는 씁쓸한 사카린의 잔 맛은 어쩌면 인생을 닮았을 수도 있다. 잘난 맛이 아니라, 맑고 넉넉한 품으로 오래가는 녀석이 진짜 친구일 거다. 약천골 지장수 생막걸리 1700ml도 그렇다. 잘난 맛이 아니라, 맑고 넉넉한 양이 이 녀석의 장점이다. 유통망에 따라 750ml 지장수 생막걸리도 있겠지만, 이 녀석의 미덕을 살리려면 싸고 오래 마실 수 있는 1700ml여야 한다.  


승발이의 맛 평가 : 맑고 넉넉함. 하지만 맛은 아쉽다. 지장수와 해풍발효의 장점이 무엇인지 맛으로 정확히 표현됐으면 좋았을 막걸리. 3.5점(5점 만점)

어울리는 맛과 멋 : 신김치로 볶은 두부김치가 딱이다. 특별히 준비된 안주가 없다면 집 반찬 중 간이 센 것과 함께하면 좋다. 뒤에 남는 쓴 만을 간이 센 안주가 감싸준다. 댄 포겔보그의 ‘Scarecrow’s Dream’도 함께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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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발이-백반기행 피디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CP(책임 피디)로 전국의 맛깔나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여행을 하던 중 막걸리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