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육볶음의 막걸리를 찾습니다
싸릿골을 아시나요? 안암동 언덕길에 있었던 조그마한 술집. 제육볶음이 맛있었던 싸릿골 말입니다.
제육볶음을 저는 싸릿골에서 배웠습니다. 배웠다는 표현이 어색할 순 있지만, 배운 게 맞습니다. 제육볶음 맛이란 이런 것이란 걸 그곳에서 깨달았으니까요. 35년 전 강의실에 입장한 횟수만큼이나 싸릿골을 향했었죠. 6개 정도의 테이블이 따닥따닥 붙은 작은 술집에 메뉴는 단 3개였습니다. 두부김치, 김치찌개 그리고 제육볶음. 선배들은 500원이 싸다는 이유로 두부김치를, 오래 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김치찌개를 강권했지만 저의 선택은 언제나 2500원 제육볶음이었습니다. 선한 싸릿골 어머니의 인상과는 다르게 강불에 재빠르게 익혀진 불맛과 매콤 달콤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감칠맛. 게다가 질 좋은 돼지 전지의 씹을수록 퍼지는 고소한 육즙까지. 아름다웠습니다. 국물이 질척한 돼지조림도 아니요, 삼겹살 지방에 포위된 기름진 돼지볶음도 아닌 ‘이것이 제육볶음이다'라는 맛의 정의가 싸릿골에 있었습니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도 '제육'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선술집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추어탕을 끓이는 솥뚜껑을 열 적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 김, 석쇠에서 뻐지짓뻐지짓 구워지는 너비아니 구이며 제육이며 간이며 콩팥이며 북어며 빈대떡…” 1920년대 훈훈하고 뜨뜻한 선술집에 한번 가보고 싶네요.
‘제육’이라는 말은 돼지 '저(猪)' 자와 고기 '육(肉)' 자가 합쳐진 저육(猪肉)이 어원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저육은 보통 멧돼지를 지칭하는 단어였다고 하죠. 집돼지는 '돈육(豚肉)'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아마도 질이 낮은 돼지고기를 일반적으로 제육이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소설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는 질 낮은 제육도 먹지를 못합니다. 가장 저렴한 안주인 빈대떡 두 장 시켜놓고 연거푸 막걸리만 들이 켜죠. 세상을 원망하면서요.
“봐라 봐! 이 더러운 놈들아, 내가 돈이 없나, 다리뼉다구를 꺾어 놓을놈들 같으니...이 원수엣돈! 이 육시를 할 돈!". 김첨지의 외침에 서글픈 울림을 느끼며 저는 엉뚱한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1920년대 선술집 막걸리는 어떤 맛이었을까?'. 소설이 발표된 시점이 1923년이니 아직은 집에서 직접 담그는 가양주 전통이 살아있던 시대였습니다. 밀이 더 귀하던 시대였으니 당연히 쌀막걸리였을 거고요. 하지만 쌀을 넉넉히 넣은 삼양주보다는 빨리 빚어 빨리 팔 수 있는 단양주를 빚었겠지요. 그럼 아마도 산미가 강한 시큼한 막걸리였을 겁니다. 쌀이 적게 들어간 만큼 단맛도 적었을 테니까요.
싸릿골 제육볶음에 막걸리는 포천 이동막걸리였습니다. 아니 그렇게 불렀습니다. 택도 없는 1.5리터 대용량 허연 플라스틱통에 담겨 있으니 정확한 브랜드를 알 수는 없었죠. 정체불명의 막걸리였습니다. 그저 싸릿골 어머니가 포천 이동막걸리라고 하니 그런 줄 알고 마셨습니다. 달큼한 맛이었죠. 산미는 별로 없었습니다. 탄산은 제법 강했던 걸로 기억이 나네요. 매콤한 제육볶음 한 점에 달달한 막걸리 한 잔을 더하면 기가 막혔습니다.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 마냥 세상을 향한 원망에 늘 허기졌던 20대 청춘의 속을 달래주던 맛이었죠. 아마도 싸릿골의 막걸리는 밀로 만든 막걸리였을 겁니다. 1963년 쌀로 만든 막걸리를 금지시킨 이후 쌀이 남아돌아 쌀막걸리를 다시 허가한 시점이 1989년 이니까요. 하지만 밀막걸리 특유의 단맛과 탄산감 그리고 만만한 가격에 길들여져 있던 사람들이 바로 쌀막걸리를 환영하진 않았습니다. 양조장도 마찬가지였죠. 굳이 값싼 밀을 두고 쌀을 선택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가뜩이나 소주와 맥주 때문에 비주류로 밀려난 막걸리였으니까요. 달달하기만 했던 밀막걸리 맛을 살려준 건 싸릿골의 명품 제육볶음이었습니다. 질 좋은 고춧가루의 매콤함과 불맛이 어우러진 탄력 있는 고소함이 미확인 이동막걸리의 밋밋한 단맛을 풍성하게 만들어 줬습니다. 제육볶음을 꼭꼭 씹으면 배어 나오는 감칠맛이 막걸리와 섞이면 참 행복했습니다.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도 싸릿골의 제육볶음에 막걸리 한 잔 했으면 좋아했을 겁니다. 물론 제육볶음 맛은 낯설었겠지만요. 1920년대 당시에는 제육볶음이란 요리가 없었거든요.
소설 속 제육은 아마도 간과 콩팥처럼 삶은 고기일 겁니다. 1970년 대 대두가 대량으로 수입되기 전까지 한국에서 볶음요리는 보편적인 요리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소설 속 표현처럼 ‘구워지는 너비아니 구이’처럼 굽는 방식이거나 삶거나 찌는 경우가 흔했죠. 식용유가 귀했거든요. 대두 수입으로 콩기름 식용유가 시장에 싸게 풀리면서 볶음 요리의 대중화가 시작됩니다. 돼지고기 역시 1970년대 후반 대일 수출 물량이 막히면서 국내 유통이 늘어나 서민들의 먹거리 반열에 올라섭니다. 하지만 문제는 돼지고기 특유의 누린내였죠. 종자 개량이 발달된 요즘과 달리 당시 돼지고기의 육향은 달가운 냄새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치찌개에 넣어 끓이거나, 족발처럼 간장 육수에 넣어 졸이거나, 불고기처럼 진한 양념에 무쳐서 굽는 조리법이 발달하게 된 거죠. 아직도 직화에 굽는 돼지고기는 보통 돼지 직화구이 혹은 석쇠 불고기라고 표현하지 제육볶음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양념을 한 돼지고기를 볶아야 그것이 바로 제육볶음이지요. 박찬일 셰프가 한겨레 칼럼 '안주가 뭐라고-이 짬뽕엔 국물이 없어' 편에서 중식당에서 제육볶음을 파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했는데요. 맞습니다. 특히 대학가 중식당에 가면 간혹 제육볶음 혹은 제육덮밥 메뉴를 볼 수 있습니다. 짬뽕을 만드는 매운 양념과 각종 야채 그리고 강한 화구와 웍이 있으니 제육볶음 메뉴가 등장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이겠죠. 심지어 중식당은 고기도 삼겹살 같은 기름기 많고 비싼 부위를 쓰지 않으니 오히려 일반 식당보다 더 담백한 맛을 만날 수도 있답니다.
제육볶음의 진미를 알려주었던 싸릿골은 1990년 여름에 문을 닫았습니다. 이후로 싸릿골 어머님의 소식은 물론 손맛도, 제육볶음도 다시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상상을 해봅니다. 싸릿골 제육볶음에는 어떤 막걸리가 최고의 짝꿍이었을까 하고요. 당시 마셨던 정체불명 달달한 이동 밀막걸리가 역시 정답이었을까요? 운수 좋은 날 김첨지가 마셨던 시큼한 막걸리는 어떨까요? 저에게 지금 떠오르는 막걸리는
1) 가성비 갑 1,200 원 익산의 고운님 생막걸리. 맛도 가볍고 가격도 가벼워 부담 없이 마시기 더없이 좋은 막걸리죠. 살랑살랑 느껴지는 산미가 제육볶음의 매콤한 고소함과 찰떡이겠네요.
2) 가격대는 좀 있지만 진득한 봇뜰 탁주. 명인이 전통 방식으로 정성 들여 빚는 막걸리입니다. 걸쭉함에 녹아있는 산미와 단맛이 제육의 깊은 맛을 끌어내어줄 겁니다.
3) 충북의 영동 생막걸리. 영동의 맛집 갑돌갈비의 매운 돼지갈비와 함께 마셔본 적이 있습니다. 충청도 특유의 은은하고 담백한 막걸리 맛이 매콤한 돼지갈비와 참 잘 어울렸죠.
여러분은 맛있는 제육볶음에 어떤 막걸리가 생각나세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제육볶음과 천생연분 막걸리를 댓글이나 메일(mudyblue@naver.com)로 알려주세요(8/27일까지). 보내주신 분 중 3분을 추첨해 가을맞이 막걸리 세트 혹은 제육볶음과 막걸리 시식권(저와 함께^^)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꼬~옥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