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땀, 제주 강경순 오메기술
4월에 제주도로 술 여행을 떠났다. 정확히는 전통주 최고 지도자 과정 16기 졸업여행. 20여 명의 술 동지들이 2박 3일 간 술 현장 학습을 위해 제주도를 찾은 것이다. 가족을 떠나 제주도에서 명인의 술 빚기 체험을 하고 시음하고, 술도가도 탐방하고 시음하고, 맥주 브루어리도 방문하고 시음하고, 향토 음식을 먹고 또 시음한다. 그리고 밤이면 삼삼오오 모여 하루를 정리하며 한 잔 하고, 내일 학습할 내용을 예습하며 시음을 한다. 낭만 가득한 제주도에서 극한의 술 체험을 하게 된다. 어쩔 수 없다. 술을 배우기 위해서 갔으니 술에 찌들 수밖에. 몸은 힘들지만 술꾼들에겐 너무나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이틀 째 현장 학습은 제주도 전통 술도가 방문이었다. 봄비가 제법 내리던 날이었다. 술과 비로 축축해진 몸뚱이를 질질 끌고 성읍 마을에서 명인을 만났다. 술 다끄는 집에서 오메기술을 빚는 제주 무형유산 강경순 명인이 갈옷을 다부지게 입고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옵서예,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해수다”
기운 찬 본인 소개 후에 오메기떡과 오메기술을 먼저 맛보라 권하신다. 달콤한 팥소와 쫀득한 떡, 구수한 팥고물이 어우러진 오메기떡의 맛이야 당연히 좋았고, 거칠고 달콤하고 쫀득한 입 안을 적시는 시큼한 오메기술의 원초적 힘은 제법 인상적이었다. 거친 듯, 투박한 듯 시큼 달큼한 오메기술은 처음이었지만 낯이 익었고, 알듯 했지만 표현하기 어려운 맛이었다. 두어 잔 홀짝이고 나니 술에 쩌들어 있던 나의 속은 다시 불타오르고, 머리는 흔들거렸다.
“전문가들이라 예, 다 알거우다만예, 좁쌀 가루로 반죽을 잘 쳐서 떡을 맨들어예.근디 무사 오메기 술 이름이 오메기인 줄 알암수 꽈? 떡 가운데를 오목하게 해부난 오메기술이우다”
오메기술은 몰라도 오메기떡은 이제 제주의 대표 관광상품이다. 젊은 친구들이 제주 공항에서 감귤 초콜릿을 살 때, 중장년층은 오메기떡을 산다. 달콤한 팥소를 품고 있는 찰떡을 구수한 통팥이 감싼 오메기떡은 제주의 시그니처 상품이 되었다. 수많은 제주 떡집들이 육지 사람들에게 택배로도 쏴주고, 홈쇼핑에서도 팔고 있으니 말이다. 근데 그 떡은 예전의 오메기 떡이 아니라고 한다. 제주도 출신 지인에게 오메기 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대번 떡 이야기를 한다.
“잔칫날 할머니가 술 빚을 때 옆에서 먹었던 떡이 참 맛있었는데. 아 추억 돋는다”
“뭔 떡? 술 빚을 때 떡도 했어?”
“아니. 술 할 때 도넛 비슷하게 생긴 떡을 물에 삶잖아. 할머니가 옆에서 그 떡 몇 개 집어먹는 거지. 쫄깃한 게 참 맛났는데. 그게 오메기떡이야”
“잉? 그게 오메기떡이라고? 팥고물도 없고 팥소도 없는데?”
“응”. “그럼 요즘 제주도에서 파는 오메기떡은 뭐야?”. “몰라. 난 사 먹은 적 없어”
지금이야 지하에서 암반수를 펑펑 뽑아내서 삼다수라 팔고 있지만, 제주도는 물이 부족한 섬이었다. 구멍 뚫린 현무암 사이로 물이 숭숭 빠져 버리니 오히려 사람들이 마실 물도 부족하고 농사지을 물도 부족했다. 오메기술을 차조로 빚는 이유는 단 하나. 쌀이 귀해서였다. 척박한 제주에서 먹기에도 귀한 쌀을 술로 써버릴 수는 없는 법.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차조로 술 빚을 떡을 만들었다. 그 떡이 오메기떡이고, 그 술이 오메기술이다. 설탕 넣어 달달하게 졸인 팥소며 통팥 고물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꿨을 제주였다. 시간이 흘러 차조가 귀해지고 쌀이 흔해진 시대가 왔다. 이제는 찹쌀에 차조를 섞고, 각종 소와 고명을 얹어 부티 나는 오메기 떡을 먹는다. 술을 위해 떡을 빚던 시대는 갔다. 사람들이 오메기떡은 알아도 오메기술은 모른다.
명인이 술을 빚기 시작했다.
차좁쌀 가루를 익반죽 하기 위해 뜨거운 물을 붓고 치대기 시작하신다. 시범을 보여주시고 견학 온 술꾼 동지들에게 해보라고 하신다. 술꾼 동지들 죄다 동작이 굼뜨다. 익반죽을 마치고 끓는 물에 삶아낸 구멍떡을 다시 이겨야 한다. 빨리 해야 된다. 명인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아 빨리 떡을 짓이겨야 해마씸. 늦으면 술맛을 베려부러!”
명인 눈치가 아무리 보여도 몸이 따르지 못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사악한 마음이 나를 안심시킬수록 명인의 손놀림은 점점 재진다. 마냥 뒷짐 지고 있자니 눈치도 보이고, 핸드폰 뒤에 숨을 요량으로 사진 찍는 척을 해본다. 체험 모습을 단톡방에 올리겠다는 명분은 참 그럴듯하다. '우쒸 핸드폰 드는 것도 힘드네'. 별 영혼 없이 꺼내든 핸드폰 카메라 속으로 명인의 등이 들어온다. 젖어있다. 오직 명인만이 젖어있다.
내 발은 늘 부어있다.미확인 척수 신경 손상에 의한 강직성 하지마비라는 병명도 길고, 답도 명확지 않은 지병 덕분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수록 발이 땡땡 부어 온다. 톡 하면 터질 것 같은 못생긴 발을 보면 우울해진다. 퇴사 후 2년 넘게 기획한다, 글을 쓴다, 편집을 한다, 회의를 한다, 술을 마신다 등등등 뭘 한다라는 핑계에 숨어 주야장천 앉아 있었고 발은 늘 부어 있었다. 간혹 산이라도 찾으면 놀라울 정도로 발이 날씬해졌고, 땀 흘려 걸으면 흘린 땀만큼 나의 발은 예뻐졌다. 하지만 나는 별 이유도 없이 산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걷는 거리도 줄어들었고, 발은 못나게 땡땡해졌다. 나는 땀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머릿속 상상과 입 속의 쾌락을 앉아서만 좇고 있었다. 땡땡 부어오르는 발이 말하는 경고를 나는 무시하고 있었다. '왜 앉아서 생각만 하니? 넌 방법을 모르지 않아, 실천을 못하는 거지. 이봐! 움직이라고'
명인은 흠뻑 젖은 등 근육을 쉴 새 없이 움직여 오메기 술을 마쳤다.
“술 닦는 게 쉽지 않아예, 시간 놓치면 술을 버려 부러 예. 그래서 빨랑빨랑해야 돼 마씸. 해 놓고 나면 누룩이랑 물이랑 좁쌀이 맛나게 술을 만들어 예, 그게 다 우다. 뭐 쉬운데 어렵고, 어려운데 쉽고 해예. 하하하”
회녹색의 탁한 저 물이, 등을 적셔가며 빚은 저 액체가 시간이 지나면 술이 된다. 쉬운 건 재료와 과정은 단순함이고 어려운 건 육체의 고단함일 것이다. 그 고단함이 있어야 맛난 술이 된다는 뻔한 공식을 잊고 있었다. 명인의 젖은 등을 보기 전까지.
술 빚기 체험이 끝났다. 시작할 때 보다 더 큰 박수가 체험장을 울린다. 강경순 명인의 젖은 등을 나만 본 것은 아니었다. 빈둥빈둥 눈치만 보며 시간을 때웠던 나도 이 때다 싶어 박수를 힘껏 친다. 술꾼 동지들이 체험장을 나서려는데 목소리 큰 명인이 또 일행을 불러 세운다.
"아이고 이 떡 하고 술 아깝다. 이것들 다 먹고 가라"
일행을 위해 준비하셨던 오메기떡과 술이 반절 이상 남아있다. 시선이 오메기술과 오메기떡에 마주쳤다. 검붉은 팥소의 떡과 누우런 오메기술의 덤덤한 모습에 발을 돌릴 수 없었다. 오메기떡 몇 점을 입에 넣고 오메기술을 연거푸 입에 붓는다. 투박한 단맛에 원초적 산미가 더해져 입 안이 제주의 생명력으로 넘실댄다. 맛있다. 음미하지 않는다. 입 안 가득 떡을 넣고, 한 잔 가득 술을 마시니 제주의 맛이 폭발을 한다. 척박한 제주 땅에서 땀으로 빚어낸 떡과 술이지만 먹을 때만큼은 넉넉히 채워야 한다. 그게 제주의 멋이고, 명인의 맛이다.
맛에 취해 한참을 먹어도 떡과 술이 남아있다. 아쉬워하는 명인의 모습에 내가 더 초조해진다. 어찌할 줄 몰라 허둥대는 나를 재끼고 여성 술꾼 동지들이 나선다. "명인님 저희가 챙겨 갈게요. 호호호". 종이컵과 생수병에 살뜰히 남은 떡과 술을 옮겨 담는다. 여성 술꾼 동지들은 현명하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떡과 술을 계속 먹어댄다. 버스 창 밖 오름의 풍경에 봄비가 더해진다. 촉촉하게 내리는 제주의 봄비가 명인의 등에 흐르던 땀을 닮았다. 입 안의 오메기술은 여전히 맛있다.
혹시나 감상에 젖어 오메기 술의 맛을 의도적으로 미화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가질 수도 있는 분들을 위해 첨언을 하면. 오메기술은 요즘 트렌드를 이끄는 단양주-이양주 막걸리 라인의 시조새 격인 술이다. 복순도가 손막걸리를 필두로 이화백주, 너디 펀치, 술아 손막걸리 등 강한 탄산과 산미를 전면에 내세우는 트렌디한 막걸리의 특징을 오메기술은 더 원초적으로 보여준다. 기존의 막걸리가 단맛 뒤에 산미를 숨겨 놓았다면 요즘 출시되는 막걸리는 산미를 전면에 내세우고, 강한 탄산감을 주기 위해 단양주로 출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정확히 오메기술의 맛이 그렇다. 꼭 한번 맛보시길. 떡 하고 먹으면 목 메임이 없다. 신기할 정도로. 아! 강경순 오메기술은 시중에 유통되지 않는다. 택배로는 보내주니 참고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