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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 나는, 합정 따로집

조승연 PD
조승연 PD
- 6분 걸림 -

"막걸리 한 잔 하려는 당신을 위한 술집 방문기"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허름한 벽면에 담쟁이넝쿨의 푸르름이 빼곡하다. 겨울에는 을씨년스럽겠지만 한 여름인 지금, 합정역 골목이라면 제법 낭만적이다. 검정 유리문을 열고 들어간다. 단정하게 놓인 브라운 톤의 테이블 위로 감미로운 재즈가 흐른다.

“형님 여기 막걸리 집 맞아요?" 같이 간 후배 눈이 동그래졌다. 맞다. 막걸리를 파는 집이다. 합정역 8번 출구 앞 따로집.

예전엔 파주옥이라는 아주 괜찮은 설렁탕 집이 있었다. 특히 수육의 맛과 가성비는 마포 일대에서 최고였고, 소문이 나지 않아 은밀한 맛까지 있었다. 그리고 은밀하게 사라졌다. 아… 바람과 함께 사라진 그 자리에 따로집이 들어왔다. 설렁탕 냄새에 찌든 벽지를 모두 걷어내고 회색 시멘트 벽을 그대로 살렸다. 인테리어 비도 아끼고, 분위기도 살렸다. 모던하다.

희양산 막걸리로 시작한다. 9도의 무감미료다. 문경 두술도가 술로 드라이한 깔끔함으로 유명한 막걸리다.

“근데 형님 막걸리를 어디에다 마셔요?” 중년의 굳은 머리를 툭 치는 반전은 분위기에만 있지 않다. 투명한 글라스 잔에도 있다. 찌그러진 양푼 잔에 마시는 막걸리가 가장 맛이 없다. 쇳내가 막걸리에 들어가 쇠비린 맛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향을 음미할 수 있고, 분위기도 잡을 수 있고, 술도 깔끔하게 마실 수 있는 글라스 잔은 탁월하고 현명한 선택이다. 건너편 테이블의 아가씨 둘은 선호 생막걸리를 얄쌍한 샴페인 잔에 마시고 있다. 멋지다. 편견을 깬 스타일의 혁신이 젊은 친구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희양산 막걸리. 드라이하고 가볍다

둥지. 닭날개를 칠리소스와 마늘 등의 양념으로 스파이시하게 조리한 안주다. 곁들인 알감자와 통마늘 구이에 셀러리 스틱이 양념 옷을 입은 닭날개와 조화롭다. 담백한 희양산 막걸리가 밀린다. 안주의 간이 세다. 따로 집의 안주는 가게의 스타일처럼 예쁘다. 그리고 양이 작다. 중년의 불룩한 배에는 헛헛할 수 있다. 따로집에서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둥지)와 떡볶이까지 종류별 안주를 하나씩 접해봤다. 공통점은 간과 양념이 세다. 덕분에 조금씩 먹어도 입이 충분히 짭조름해지지만, 드라이한 막걸리와 합을 맞추기엔 간의 기운이 과하다. 희양산 막걸리를 비우고 잘 생긴 셰프에게 다음 막걸리를 추천받는다.

“달지 않은 막걸리였으면 좋겠어요”

“그럼 우렁이쌀 손막걸리 어떠세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막걸리예요. 달지 않고 깔끔해요”. 잘 생긴 셰프의 말 그대로다. 무감미료 7.5도의 막걸리가 너무 깔끔해서 심심하게 느껴진다. 단짝맵 닭날개의 강한 뒷맛을 완벽히 제어하지 못한다. 우렁이쌀 막걸리의 맑은 맛 위로 둥지의 뒷맛이 넘실댄다. 따로집의 안주에는 진하고 강한 막걸리가 어울린다. 메뉴판에 친절하게 막걸리 맛을 분류해 놓았다. 젊은 친구들이 운영하는 술집은 디테일이 강하다. 준비된 막걸리 중에서는 복순도가 생막걸리가 따로집의 안주와 가장 합이 좋은 녀석일 듯싶다.

막걸리 두 통을 비웠다. 얼큰하게 주위를 둘러본다. 도란도란 막걸리를 즐기는 젊은 친구들로 가득하다. 투명한 글라스에 닮긴 아이보리 빛깔의 막걸리가 청춘의 기운을 더해 유난히 뽀얗다. 간지 난다.

“계산할게요”

중년이 트렌디한 막걸리 집에 가면 오래 못 있는다. 퍼질러 앉아 농을 치고 있기엔 어색한 탓이다. 젊은 친구들은 막걸리 한 통을 놓고도 잘만 있더구먼. 배워야겠다.

카드를 돌려받으니 그제야 오픈 주방을 둘러싼 바 테이블이 눈에 띈다. 혼술 하기에 좋겠다. 가벼운 소고기 육회에 막걸리 한 글라스 하고 있으면 누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넬 것만 같다. 아니 그런 기대감만으로도 충분히 시간과 술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왜 가게 이름이 따로집이에요?”

“아.. 따로따로 저희 가게에 와서 ‘함께’ 즐기면 좋겠다는 공식적 의미가 있는데요. 사실은 제가 '따로국밥’을 너무 좋아해서 ‘따로집’이라고 했어요”. 환히 웃으며 셰프가 답을 한다. 웃으니 더 잘생겼다.

Notice 1. 술빨 보다는 말빨이 좋은 술꾼들에게 추천한다

Notice 2. 안주 간이 세서 조금씩 먹어도 충분하다. 안주빨 세우지 마시라. 양이 적다

Notice 3. 다양하진 않지만 준비된 막걸리의 스펙트럼이 넓다. 분위기 있는 막걸리 입문자에게는 좋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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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 할래?합정역따로집

조승연 PD

맛&막걸리 콘텐츠 PD. TV조선에서 제작부장으로 [살림9단의 만물상], [애정통일 남남북녀], [모란봉 클럽], [시골빵집]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제작.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CP(책임 피디)로 전국의 맛난 음식 & 막걸리와 사랑에 빠져버림. 현재는 맛과 막걸리와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프로듀서로 열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