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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닮은 옛맛, 영덕 정막걸리

승발이-백반기행 피디
- 5분 걸림 -

영덕 바다는 넓다. 7번 국도를 따라 이어진 동해바다가 다 한 통속인 듯 보여도, 영덕 바다는 특히 넓어 보인다. 꾸밈없이 툭하니 펼쳐진 바다 그 자체의 모습을 영덕은 품고 있다. 왠지 영덕 바다는 탄생 그 순간의 모습 그대로일 것 같은 원시적 푸르름이 있다. 그래서 영덕 바닷길을 걷다 아무 곳에서나 서서 바다를 바라보면 속이 장쾌해진다. 푸른 바다의 하얀 파도가 가슴을 뚫고 심장을 시원하게 적셔준다. 영덕 정막걸리도 딱 그렇다.

영덕 바다는 장쾌하다


첫 잔

좋다. 단맛이 없다. 은은한 누룩향과 산미가 첫 모금에 느껴진다. 근래에 먹은 막걸리 중 단맛이 가장 적다. 도수도 표기보다 높은 듯 첫 잔에도 싸하게 반응이 온다. 시큼한 산미가 입 속을 지배한다. 이런 경험 참 오랜만이다.

어느 순간 단맛이 우리의 미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빨간 음식도 달달, 볶은 음식도 달달, 구운 음식도 달달, 보글보글 끓는 음식에서도 단맛이 빠지면 뭔가 허전하다고 느껴진다. 음식의 일등 조미료는 설탕이 된 지 오래다. 막걸리도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의 막걸리 성분표에는 단맛을 첨가하는 각종 감미료가 빠지지 않는다. 달달한 막걸리. 꿀떡꿀떡 잘 넘어가지만 시원한 여운이 없다. 그래서 난 달달한 막걸리가 별로다.

둘째 잔

모처럼 술을 먹는 느낌이다. 안주는 가자미회. 영덕의 소울푸드다. 영덕 뱃사람들이 이랬을까. 깨작대지 않고 넉넉히 입속을 채운 가자미회를 우물우물 대다가 정막걸리로 입속을 적신다. 역시 좋다. 입안을 가득 채운 가자미회의 고소한 육즙이 막걸리와 어울리니 입천장 끝에서 누룩향과 단맛이 살짝 느껴진다. 한두 점 아껴먹는 회로는 느낄 수 없는 호방한 맛이다. 아낌없이, 넉넉히 가자미회를 입에 넣을 지어다.

내 생각에 동해안의 소울푸드는 가자미다

셋째 잔

단맛은 또 사라지고 산미와 쌉싸래한 술맛의 조화가 좋다. 시큼한 술맛과 단맛의 어울림이 조화롭지는 않다. 세련된 맛은 아니다. 그래서 더 좋다. 어릴 적 먹었던 할머니의 항아리 막걸리와 닮았다. 방구석에 담요로 싸놓은 항아리 안에서 풍기던 시큼한 술 냄새만큼은 아닐지라도, 이날의 영덕 막걸리는 예전 할머니의 투박하고 시큼한 막걸리 그 맛을 품고 있다. 영덕터미널 앞 편의점에 산 이 녀석이 딱 한통만 남아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중년 이상이 좋아할 맛이다. 중년들이 간직한 추억도 시큼하게 녹아있기 때문에.

넷째 잔

이번엔 가자미식해와 궁합을 맞춰본다. 좋다. 잘 삭힌 가자미식해 그 자체도 아름다운 맛인데, 시큼한 원초적 막걸리와 마시니 어울림이 너무 좋다. 특히 제법 매콤한 가자미식해 덕분에 술의 단맛이 느껴진다. 푹 곰삭아 매콤새콤한 가자미식해의 감칠맛 가득한 뒷맛을 영덕 막걸리의 산미가 시원하게 흩어낸다.

취기가 올라오고 추억도 올라온다. 할머니의 술독에서 막걸리를 퍼담아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하게 마셨던 그 시절의 술에 젖은 목소리도 들려온다. 7번 국도 여행 중 들렸던 민박집 앞 영덕바다의 호쾌한 파도소리도 들려온다. 촬영 중 만났던 좌판 할머니들의 '미주구리 사가 이소' 사투리 소리도 들려온다. 기분 좋은 생명력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의 좋았던 소리들이 취기 어린 추억으로 들려온다.

영덕바다는 맛의 풍경을 품고 있다

이 녀석은 6도가 아닐 것이다. 아침에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 싼 막걸리의 맛일 수도 있다. 그래도 달지 않고 시큼 투박한 이 맛이 좋다. 이런 맛이 오랜만이어서 좋고 바다를 닮아 더 좋다.

승발이 맛평가(5점 만점) : 옛날 막걸리 맛. AC/DC 앵거스 영의 기타가 생각난다. 4점.

* 덧붙임

하도 영덕 정막걸리 타령을 하니 후배가 한박스를 택배로 보내줬다. 어라? 근데 좀 달다. 그래서 작정하고 한참을 묵혀 유통기한 몇일 지난 후 마셔봤다. 웁스!! 좋다!! 생막걸리는 살아있다!!

10일 유통 반대한다!!! 숙성해서 맛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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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정막걸리

승발이-백반기행 피디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CP(책임 피디)로 전국의 맛깔나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여행을 하던 중 막걸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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