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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김치 과메기와 너디 펀치(상주 주조)

승발이-백반기행 피디
- 13분 걸림 -

너드(Nerd) : 영어사전에는 "바보, 얼간이" 등으로 풀이되어 있지만, 바보치곤 단수가 매우 높은 바보다. 지적 · 기술적으로 어느 한 가지에 좁고 깊게 빠져 다른 세상일은 몰라라 하는 사람을 가리켜 nerd라고 한다(네이버 교양영어사전)

경북 상주의 젊은 막걸리

“킹 받는 세상에 너디펀치 한 방, 당신 안의 너디함을 깨우다”

너디 펀치는 당신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세상, ‘나 다움’을 지지하는 너드 브루어리의 첫 번째 프로젝트입니다..라는 슬로건을 가진 젊은 친구들의 막걸리다. 안주와 함께 즐겨야 한다는 막걸리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고 주장한다. 안주 없이 파티주나 식후주로 색다르게 즐겨보라고. 하지만 어쩌랴. 나는 안주 없이는 술을 못 마시겠고, 지금 내 앞에는 강성 안주 과메기가 있는데.


알코올 : 5도

원재료 : 정제수, 찹쌀, 누룩, 효모, 정제 효소

겨울이다. 과메기 철이다

호불호가 확실하지만, 포항이 자랑하는 대표 겨울 음식으로 자리 잡은 과메기다. 거무 튀튀한 색깔에 비리고 기름진 육향, 꾸덕꾸덕한 식감, 짠기 묻은 고소함까지. 씹고 나면 입안을 감싸는 숙성 단백질의 짙은 풍미 가득한 과메기를 안주 없이 마시라는 너디펀치와 함께 한다. 너드 브루어리의 젊은 주조인들이여 이해해주시게나. 나 답게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너드들의 술 아닌가. 내 멋대로 과메기와 한잔 해보겠네.


첫 잔

시큼한 향이 강하다. 도시 막걸리에서 맡기 힘든 향. 복순도가 손막걸리의 향과 닮았지만, 그 정도의 탄산은 없다. 아니 탄산은 매우 약하다. 단맛도 제법 있지만 넘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유는 산미다. 시큼한 산미가 매우 강해서 단맛을 가려주고 있다. 하지만 맛이 겉돌지는 않는다. 단맛과 산미가 어울려 개성을 찾고 있다. 직선적이다.

직선적인 맛은 과메기도 빠지지 않는다. 반건조 생선의 일종인 과메기는 단백질 발효-숙성 과정을 통해 분해-생성된 풍부한 이노신산으로 감칠맛이 풍부하다. 반면 수분이 빠져 매우 농밀한 비린 향과 기름진 맛 역시 가득하다. 한 입 씹으면 ‘난 기름지고 고소한 생선이요’라고 대놓고 노래한다. 록커가 자신의 가창력을 뽐내기 위해 고음의 샤우팅을 외치듯이. “위 윌 롸~~ 큐~~”

말리다 보니 맛이 생겼다

일반적으로 반건조 생선은 맛이 농축되어 있어 생물보다 더 맛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과메기를 포함하여 반건조 생선이 맛을 위해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먹거리도 넉넉지 않고, 저장시설도 변변치 않았던 시절에 남은 생선을 오래 보관하기 위한 방법으로 개발되었을 것이 반건조 생선이다. 서해의 조기, 남해의 서대, 동해의 가자미 등 흔하게 잡히는 삼해의 모든 어류는 젓갈 아니면 반건조로 저장성을 확보했다. 이때 선택된 생선은 대부분 담백한 흰 살 생선이다. 조기, 가지미, 옥돔, 서대, 박대, 병어, 우럭 등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건 생선의 주류는 확실히 흰 살이다. 청어나 꽁치처럼 등 푸른 생선은 찾아보기 힘들다. 과메기는 반건조 생선계의 비주류이자 이단아인 샘이다.


둘째 잔

“캬~” 소리가 나올 정도로 시큼하다. 단양주나 이양주에서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신맛이다. 산미가 목젖을 치고 들어가는 힘이 상당히 강해, 목이 따꼼할 정도다. 기분 나쁘지는 않다. 이 녀석의 멋진 치기로 느껴진다. 탄산의 기운은 거의 없다. 산미가 청량감까지 담당하는 멀티 플레이어 역할을 하고 있다. ‘나다운 삶을 꿈꾸는’, ‘상큼 발랄한 각성주’, ‘쿨한 자기 선언’, ‘자신만의 특별한 세계’ 등등 너디펀치의 팸플릿에는 젊은 막걸리를 표방하는 선언이 넘쳐난다. 그런데. 이 녀석의 맛은 전통의 맥락 위에 정확히 서있다. 저가 막걸리의 인위적인 감미료의 맛과 이별한 것이지, 막걸리의 본질에는 충실하다. ‘나는 별종이기 때문에 엇나갈 거야!’라고 반항적인 눈을 치켜뜨다, 의외로 적통임이 밝혀지는 드라마 주인공 같다고나 할까. 지나친 다름의 주장이 오히려 술맛에 대한 선입견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과메기는 누가 봐도 별종이다. 아무리 말린 반건조라 해도 과메기만큼 거무튀튀한 반투명의 살집을 가진 생선은 없다. 비리고 기름진 맛은 더할 나위 없다. 식당의 과메기 테이블 세팅을 보자. 과메기를 가운데 두고 배추 속, 생미역, 실파가 좌측에 초장과 마늘, 풋고추가 우측에 자리한다. 배추 속에 생미역과 실파를 얹은 후 과메기 한 점을 놓는다. 초장 찍은 마늘과 풋고추를 더해 입에 밀어 넣는다. 자그마한 과메기 한 점을 먹기 위해 더하는 쌈 재료가 5가지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이렇게 먹는 이유를 만화 식객의 대사가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어때? 하나도 안 비리지?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우러나지?”(식객 27화. ‘구룡포 이야기’ 중에서). 비린맛이 문제였던 거다.

비린맛을 감추기 위해서 보통 5종의 쌈 재료가 동원된다. 다양한 채소를 곁들이는 맛이야 좋지만, 과메기의 별종스러운 맛이 너무 감춰져서 개인적으로 너무 과한 쌈 싸기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다시마나 톳에 얹어 심플하게 먹는 것을 선호한다. 비리고 기름진 고소함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굳이 과메기가 가진 개성을 그렇게까지 쌈에 숨겨가며 먹어야 하는지는 의문이었다. 그러던 중 포항에서 ‘박원숙의 같이삽시다’를 제작 스태프에게 귀가 솔깃하는 말을 들었다. “포항 토박이분들은 신김치에 과메기를 싸서 초장에 찍어 밥반찬으로 먹었다고 하던데요. 안문숙 언니도 그렇게 먹어보더니 너무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시큼매콤 곰삭은 신김치에 과메기를? 세상은 넓고 먹는 방법은 너무 많다.

신김치 과메기

뻘건 신김치에 과메기 한 점을 올려 본다. 사각사각, 우물우물. 히야. 이거 괜찮네. 비린맛은 곰삭은 신맛이 견제하고, 매콤함이 기름짐을 아우르니 고소함이 남는다. 맛이 뒤섞여 단점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개성이 도드라져 어울리는 경쾌한 풍미의 춤판을 벌인다. 역동적인 맛의 향연이 펼쳐진다. 숨기지 않고, 오히려 강하게 표현된 맛들이 견제를 통해 균형을 이룬다. 기가 막히다. 한 판 흐드러진 맛의 춤판이 지나고 난 흔적이 꽤 진하다. 이럴 땐 막걸리가 필요하다.


셋째 잔

찹쌀만으로 술을 빚은 장점을 잘 살린 술이다. 정제수를 더해 도수를 5%로 낮추어도 시큼함이 이 정도면, 원주의 산미는 더 강렬할 것이다. 찹쌀의 진득한 단맛이 있기에 거부감 없이 산미를 즐길 수 있는 직선적 캐릭터의 술맛이 되었다. 신김치-과메기 쌈의 강렬한 인상에 너디 펀치 한 모금을 보탠다. 완벽한 정리. 깔끔하다. 개성 있는 맛들의 열전에 지칠 수 있는 입맛이 쉽게, 간단히 회복된다. 개성에 개성을 더하니 개운해진다. 맛있어진다. 안주 없이 마시라는 너드 브루어리의 주장에는 더 이상 동의할 수 없다. 신김치-과메기 쌈과 너디 펀치는 더없이 좋은 만남이다.

경상도는 짜고, 맵고, 자극적이다..라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전라도 음식이 다양한 양념을 세련되게 버무려 깊은 맛을 만드는 것에 비해 경상도의 맛은 투박하다고들 한다. 얼마 전 허영만의 백반기행 제작피디를 만나 막걸리 한잔하며 수다를 떨었다. 4년째 백반기행을 제작하고 있는 피디의 말이 의외였다.

“선배님. 근데요 저는 전라도 음식은 재미가 없어요”, “응? 뭔 소리니?”

“전라도 음식은 결국 갖가지 양념이 다 버무려져, 맛의 결과가 예상이 되는데, 경상도 음식은 오히려 뾰족한 한방이 있어요”, “한방?”

“네. 맵던, 짜던, 아니면 먹는 특별한 방법이든, 한방이 있어서 촬영하고 편집하는데 재미가 훨씬 있어요. 센 놈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거죠”

개성을 숨기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가지고 있는 모습을 굳이 깎아서 평균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짜면 짠 거고, 매우면 매운 거다. 비리고 기름진 과메기를 시그러진 신김치로 싸 먹는 과감함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는 경상도의 맛이다. 평균을 추구하지 않고, 나만의 개성,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는 이 시대 너드들의 철학은 이미 경상도의 맛에 구현이 되어 있었다.

넷째 잔

마시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강렬한 산미를 추가한 요구르트 같다고 할 수도 있다. 동의한다. 경상도 음식의 솔직함과 닮아있다. 간이 세서 짜거나 맵거나 하지만, 숨기지 않는 경상도 음식처럼 너디 펀치는 고향의 맛을 닮은 막걸리다. 숨김없이 선명한, 직선적이지만 정감 있는 시큼 달콤한 막걸리. 젊은 양조장이, 고향의 맛을 숨기지 않고 잘 살려냈다. 그게 너디한 모습 아닐까.

우리술 대축제에서 만난 너디 펀치

막걸리 홍보 팸플릿에 이 녀석을 최고로 맛있게 먹는 방법을 소개했다.

최적 온도 : 4도 이하로 차갑게

최적의 잔 : 펀치 글라스, 디저트 와인 글라스, 마데이라 와인 글라스

추천 음용법 : 니트, 온더락, 스타클링 워터, 소금 리밍

추천 가니쉬 : 소금, 애플민트, 오렌지, 레몬, 라임

‘스타클링 워터’야 ‘스파클링 워터’의 오타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나머지 소개법의 절반 이상은 검색 찬스가 필요하다. 뭔 말인지 모르겠다. ‘꼭 이렇게 마셔봐야지!’가 아니라 ‘꼭 이렇게까지 마셔야 돼?’라는 물음표를 떠올리게 한다. 너디하지 않다.

승발이의 맛 평가 : 캬~하고 마실 수 있는 시큼한 단맛의 막걸리를 젊은 친구들이 뽑아냈다. 기대감이 드는 막걸리. 4.3점(5점 만점)

어울리는 맛과 멋 : 겨울 과메기와 마셔볼 것을 적극 추천. 기존의 쌈 채소와 함께해도 좋지만, 신김치와 과메기 조합도 매우 훌륭하다. 단, 묵은지가 아니라 신김치여야 한다. 묵은지도 무난하게 먹을 수 있지만, 신김치의 찡한 맛은 없다. 과메기와 너디펀치의 만남은 신구의 조화처럼 느껴진다. 톰 존스&Mousse T.의 ‘Sex Bomb’을 곁들여 덩실덩실 마셔보자. 연말 아닌가.


https://youtu.be/WZ32gSLNH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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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발이-백반기행 피디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CP(책임 피디)로 전국의 맛깔나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여행을 하던 중 막걸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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