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치 않은 인연이 주기적으로 이어지는 공간이 있다. 혈연으로 연결되는 공간이 고향이라면, 학연으로 이어지는 모교가 있다. 군대와 직장을 다니며 맺어지는 삶의 터전이 있고, 연애와 결혼으로 보금자리가 마련된다. 혈연도 학연도 없고 사랑도 없는데 연의 끈이 매듭을 맺는 곳. 나와 논리적 선이 닿아있지 않은 곳이 우연한 기회로 계속 나의 추억에 일정한 영역을 남기는 곳. 진주가 그곳이다.

진주 진양호

인연의 시작은 제작 프로그램이다. 20년 전 여행 프로그램으로 찾은 진주는 남남북녀 양준혁-김은아 커플의 이별 공간으로 다시 만났고, 허영만의 백반기행으로 추억의 영역을 넓혔다. 나의 의지가 아닌, 프로그램의 흐름에 실려 간 곳이지만, 진주는 언제나 좋았다. 지방 여느 도시의 부산스러움도, 쇠락한 옛 도시의 탁한 회색빛 이미지도 아니었다. 새벽시장의 복작거림은 정겨웠고, 개와 늑대가 만나는 시간의 남강변 거리는 세련됐다. 아쉬움은 음식이었다. 맛이 없는 아쉬움이 아닌, 경험하지 못한 아쉬움이었다. 첫 인연에서 만났던 육회 비빔밥은 너무 멀어 기억의 영토에 흔적이 남지 않았고, 두 번째의 진주냉면은 실망이었다. 백반기행 촬영 때는 새벽시장의 김밥 한 줄이 전부였다. 공간의 인연과 달리, 음식과는 연이 닿지는 않는다라고 생각할 즈음에 아들이 군대를 갔다. 경남 함안으로. 하늘이 맺어준 혈연인 아들 면회를 위해 함안을 찾기 시작했고, 그 길에 있던 진주를 다시 만났다. 아들이 다시 이어준 인연이다. 50년 간 3번 스쳐간 진주를 일 년 동안 세 번 머물렀다. 그리고 이 녀석을 만났다. 젠틀한 막걸리, 진주 쇠미골 생막걸리다.

쇠미골 생막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