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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막걸리와 옛날 핫도그

승발이-백반기행 피디
- 6분 걸림 -

일 때문에 속초에 갔을 때다. 회국수 한그릇 하러 골목길을 어슬렁 거리다 동네 가맥집 한 곳과 마주쳤다. 가맥집답게 가게 안에는 할아버지 세 분이 얼큰해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빈 막걸리 통이 가득 했다. '여기 분들은 뭔 막걸리를 자시려나?'하고 들여다본 가맥집 테이블 위에는 웬걸, 서울 장수막걸리 빈통 뿐이었고, 냉장고에도 오직 서울 장수막걸리만 가득했다. 아하. 장수막걸리는 전국구였다.

첫잔

막걸리계의 독보적인 지배자, 장수막걸리는 첫잔이 좋다. 탄산의 신선함이 톡하고 입천장을 쏘며 단맛을 가려준다. 뒤이어 따라오는 옅은 산미와 누룩향은 지극히 정제되어 있어서 누구나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수준이다. 장수막걸리의 미덕이다. 늘 일정한 맛을 유지하는 능력은 막걸리계에서 독보적이다. 심지어 유통기한이 10일이라니, 병입 후 심화발효될 시간마져 봉쇄해 버렸다. 일정한 맛을 취하기 위해 숙성된 신맛을 포기한 것이다. 덕분에 장수막걸리는 늘 첫잔만 좋다.

막걸리는 밥 반찬과 궁합이 좋다. 결국 쌀이기 때문이다

둘째잔

안주는 동태전이다. 장수막걸리 한잔에 동태전을 걸쳐본다. 어라..? 의외로 동태전과의 합이 따로 논다. 동태전에 덧댄 양념간장의 묘한 쓴맛이 목젖 부근에서 툭하고 올라온다. 간장의 쓴맛인지 음식과 겉돌다 입에 남는 막걸리의 쓴맛인지 모를 일이다.

셋째잔

장수막걸리와 안주의 합이 겉돈다. 안주맛 따로 술맛 따로다. 막걸리의 맛도 심심해졌다. 그리고 달아졌다. 이유는 탄산의 유무다. 장수막걸리의 힘은 탄산에 있다. 탄산의 신선함이 단맛을 가려주고 있다가 시간이 흘러 힘이 빠지면 단맛이 훅하니 치고 올라온다. 그래서 장수막걸리는 차게 마시면 좋고, 첫잔이 좋다. 단맛을 탄산과 찬맛이 가려주기 때문이다. 탄산에 맛을 의지하는 힘이 큰 탓에 장수막걸리는 시간을 버티는 맛의 힘이 약하다. 그럼에도 장수막걸리가 전국구인 이유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의 맛이 크기 때문일 거다.

올 봄의 풍경이다. 마포 을밀대 주차장 건너편 오래된 구멍가게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환한 웃음을 띠며 나서는 모습을 봤다. 작달만한 할아버지의 한 손에는 빵가루 잔뜩 묻혀 튀긴 옛날 핫도그가, 다른 한 손에는 장수막걸리 한통이 쥐여 있었다. '옛날 핫도그와 장수막걸리? 저게 궁합이 맞어?'라는 나의 생각은 할아버지 표정 하나로 정리가 되었다. 구김살 없는 웃음 가득한 주름진 작은 눈. 모든 행복을 양손에 쥐었다는 듯 골목길을 버적버적 걸어가던 할아버지의 뒷모습. 양손에 덜렁대던 옛날 핫도그와 장수막걸리. '맛있겠다'.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고, 저녁에 나의 모방은 대성공이었다.

옛날 핫도그와 장수막걸리는 완벽했다. 기름지고 짭조름한 겉바속촉의 옛날 핫도그는 장수막걸리와 아주 좋았다. 물론 그 배경에는 한 손에 핫도그, 한 손에 장수막걸리를 쥐고 걸어가던 할아버지의 풍경이 있다. 부족한 맛을 보충해주는 좋은 풍경의 기억들. 오징어볶음에 장수막걸리를 얹는 청년의 풍경도, 삭힌 홍어에 장수막걸리를 품는 노년의 풍경도, 나에게는 맛을 더하는 풍경이다. 도시 변두리의 어느 곳에서도 삶의 풍경을 만들어 내는 노르스름한 한 잔의 장면들. 장수막걸리는 그렇게 도시 서민들이 만드는 맛있는 풍경의 일부가 되고 있다. 그게 장수막걸리의 가장 매력적인 맛이다.

넷째잔

아래 깔린 막걸리지만 텁텁함은 없다. 깍쟁이처럼 깔끔한 맛은 장수의 장점이다. 녹색 뚜껑의 막걸리보다 흰색 뚜껑의 장수막걸리가 덜 달고 보다 깔끔한 맛을 낸다. 녹색은 수입쌀, 흰색은 국내쌀로 만든단다.

술집에는 흰색뚜껑이 없다. 더 비싸서

맛 자체로는 아쉬움이 많지만, 도시 서민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의 힘으로 장수막걸리는 일상이 될듯하다. 사람이 만드는 맛의 변주는 힘이 좋다.

승발이 맛 평가(5점 만점) : 장수막걸리는 어쨌든 현 시대 막걸리 맛의 기준이다. 평점 3점.

어울리는 맛과 멋 : 잘 튀겨낸 핫도그 하나 들고, 소소한 도시 일상의 풍경을 그리며 한잔은 너무 좋다. 아하의 'Take on Me'와 함께라면 더욱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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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막걸리막걸리썰

승발이-백반기행 피디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CP(책임 피디)로 전국의 맛깔나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여행을 하던 중 막걸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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