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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소태 생막걸리([주]충주막걸리)

승발이-백반기행 피디
- 9분 걸림 -

충주호

충주는 고향이다. 정확하게는, 고향이라고 말한다. 단지 태어나기만 한 곳이 충주 외갓집일 뿐인데. 30년을 서울에서 크고 자랐지만 서울을 고향이라 하면, 좀, 없어 보였다. 정서적으로 메말라 보인다고 생각했다. 싸구려 우거짓국에 듬성듬성 숨어있는 소고기처럼 몇 조각 안 되는 충주에 대한 기억을 곱씹으며 50년을 버텨왔다. 그래도 충주 구도심을 지나, 건대 캠퍼스를 넘어, 달천강에 다다르며 온갖 아는 척을 해댄다. 아는 곳이라야  그곳이 전부인데도. 무슨 이유로 나는 충주를 고향이라 우겨대는 걸까? 태어난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소태 생막걸리는 내가 고향이라 주장하는 지역의 막걸리다.

소태면에 주조장이 있어서 소태 막걸리. 전형적인 지역 막걸리 이미지다

알코올 : 6도

원재료 : 정제수, 쌀, 입국, 올리고당, 효모, 정제효소, 아스파탐, 아세설파칼륨, 사카린나트륨


재료만 보았을 때 맛이 어느 정도 예측이 된다. 뒷맛에 사카린의 잔 맛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태 먹은 마냥 쓰다’라는데 제목도 하필 ‘소태’ 막걸리다. 큰 기대 하지 않는다. 하나의 매력만, 하나의 추억만 만들어 주면 좋겠다.


첫 잔

시큼하고 쿰쿰한 향이다. 사카린으로 가미한 지역 막걸리에서 맡을 수 있는 그 향이다. 마셔보자. 맑고 상큼한 산미가 느껴진다. 의외로 달지 않고, 잔잔한 산미가 주 베이스를 이룬다. 탄산도 강하지 않고, 걸쭉하지도 않다. 맑게 넘어간다. 뒷맛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예상을 벗어난 맛이다. 깔끔한 뒷맛이 아주 좋다. 잘잘한 탄산이 깔끔한 맛을 뒷받침해준다.

둘째 잔

아주 옅은 단맛이 산미를 잘 보조하고 있다. 그 덕에 산미가 가볍게 입을 적시며, 상큼한 느낌을 남긴다. 이 녀석 정도면 웬만한 안주와 무난히 합을 맞출 수 있다. 물론 간이 너무 센 안주와 합을 맞추면 술맛을 느끼기 힘들 것이다. 잔잔한 산미와 옅은 단맛이 맛의 베이스이기 때문이다. 쌉싸래한 술맛은 눈치채기 어렵다.

충주 달천강변 풍경

엄밀히 말해 아버지도 고향이 충주는 아니다. 옆 고장 음성이다. 충주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인연을 맺어을 뿐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모교와 지역 사랑은 특별했다. 충주고등학교 동문 모임이면 열 일을 제치시고 내려가셨다. 충주고 출신이 국회의원이 되면, 동문이라는 이유만으로 축전을 보내셨다.

“아버지 아는 사람이에요?”

“아니”. “근데 축전을 왜 보내세요?”

“충주고 나왔잖아”. “네?”

이러니 반기문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자, 집안은 아버지 홀로 축제 분위기였다. 큰 도움은커녕 미세한 도움 한 톨 받은 적도 없으면서. 아버지는 열심히였다. 서른 즈음에 충주를 떠나, 줄 곧 서울에서 생활을 하셨으니 반 서울 사람일 터인데, 아버지는 서울에는 끝까지 정을 주지 않았다. 퇴직하시자마자 냉큼 서울 생활을 정리하셨다. 삶을 위한 터전이 서울이었음에도 정서적 터전이 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투박한데 은근 세련된 맛을 담고 있다

셋째 잔

단맛이 짙어진다. 강해진 단맛이지만, 산미와 어우러져 흔쾌히 입을 적신다. 쿰쿰한 누룩향도 없어, 잔이 넘어가도 맑은 맛이 유지된다. 특히 사카린 막걸리 특유의 씁쓸한 뒷 맛이 없다. 맑게 정리되는 맛은 첫 잔과 셋째 잔이 동일하다. 깔끔한 첫맛과 뒷맛은 섬세한 풍미의 안주와 함께해도 좋을 듯하다. 천천히 호흡하니 사카린의 씁쓸한 향이 스친다. 그렇다고 맛을 해치는 정도는 아니다. 첫 잔의 상큼함을 유지하려면 차게 마시는 게 좋은 막걸리다.

넷째 잔

좋은 산미다. 천천히 느끼면 아주 옅은 레몬의 신맛이 스쳐간다. 부드러운 목 넘김은 이 녀석의 미덕이다. 깊이 호흡하며 마시면 사카린의 향이 묻어나지만, 맛에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깔끔하고 부드러운 녀석이다. 도드라진 매력은 없지만, 깔끔하고 잔잔한 산미와 목 넘김, 맛이 아주 좋은 막걸리다. 충남 당진의 백련 막걸리가 스노우가 점차 전국구 막걸리가 되고 있다. 웬만한 막걸리 전문점에는 빠짐없이 유통되고 있다. 이 녀석은 당진의 백련 막걸리 스노우와 많이 닮아있다. 부드럽게 감싸는 산미의 매력은 백련 막걸리보다 한발 더 앞서 있다.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점잖고 부드러운 술이다.


아버지가 평생 투덜거렸던 한 가지가 있다.

“네 할머니는 왜 아들 책을 못 보게 했는지 모르겠다. 공부하지 말라고 책을 죄다 아궁이에다 태워버리니 나 원”

이 말을 들으시는 할머니는 늘 같은 중얼거림이셨다. “돈이 없으니까 그렇지”

가족을 두고 북으로 향한 할아버지 덕분에 지지리도 가난했던 아버지였다. 공부 대신 일찍 돈을 벌라는 지독한 현실주의자 할머니의 매몰찬 분서갱유에도 아버지는 버텨냈다. 음성 생골 깡촌에서 충주시로 유학에 성공한 아버지는, 가난에서 탈출은 못했지만 찌들었던 집구석에서는 해방되었다. 없이 사는 궁핍함이야 충주나 생골이나 매한가지였겠지만, 충주고에는 친구가 있었고, 본인이 꿈꾸는 미래가 있었다. 우울한 일상의 축적이 아닌, 할 꺼리가 확실히 보이는 하루의 자발적 향유가 있었다. 아버지의 첫 해방일지가 쓰여진 충주고등학교에서 조각된 기억들은 추억이 되었고, 그리고, 고향이 되었다. 마음속 깊이 스며든 그립고 정든 곳, 고향.

만약. 아버지와 지금 소태 생막걸리를 마신다면 아버지는 무슨 말씀을 하실까? 충주고 친구들과의 뻔하디 뻔한 무용담과 고생담을 길게 섞어 당신만이 재밌는 이야기를 껄껄대며 하시겠지. 취하셨다고 그만 드시라고 하면 버럭 하며 한 통 더 따라고 하시겠지. 취하시면 가난했던 학창 시절의 계몽주의 설교를 시작하시겠지. 총제적으로 지루한 이야기가 늘어지겠지. 소태 생막걸리를 마실 때면 충주보다 아버지가 생각나겠지.

승발이의 맛 평가 : 의외의 산미가 부드러운 목 넘김이 수준급이다. 전국구 막걸리의 가능성이 충분하다. 사카린 가미 막걸리에서 레몬의 상큼함이 살며시 스쳐가는 건 주조 기술의 승리다. 4.3점(5점 만점)

어울리는 맛과 멋 : 충주에서 찾은 가장 충격적인 맛집은 삼정면옥이다. 내륙 중 내륙인 충주의 구도심 시장 뒷골목에서 찾은 평양냉면 맛집이다. 평양냉면도 좋지만 삼정면옥에서는 비빔냉면을 먹어보기를 추천한다. 물고추를 믹스한 양념이 아주 독특하다. 겨자를 더해 냉채처럼 나오는 수육 역시 강추하는 메뉴다. 여기에 소태 막걸리 한 잔은 금상첨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My Hometown’까지 들려오면 화룡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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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발이-백반기행 피디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CP(책임 피디)로 전국의 맛깔나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여행을 하던 중 막걸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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