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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맛과 술 1 - 녹두전과 가자미식해 그리고 밀주

조승연 PD
조승연 PD
- 15분 걸림 -

북한 음식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역시 평양냉면이죠. 특히나 여름이면 유명 냉면집은 인산인해를 이루죠. 얼마 전에 저도 우래옥에 평양냉면 한 그릇 먹으러 갔다 2시간 40분을 기다렸답니다. 대단하죠. 이렇게까지 평양냉면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미친 건지 이걸 기다리고 있는 내가 미친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어쨌건 간에 우래옥 냉면은 맛있더군요.

맛잘알들에게 평양냉면은 늘 논쟁의 중심이죠. 특히 한국의 유명 냉면집 맛이 정말 북한의 평양냉면의 맛인가라는 갑론을박은 말 그대로 답답한 다툼이었습니다. 정답은 북한에 있는데 가서 냉면 맛을 볼 수가 없으니까요. 근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의 맛이 동시대의 맛일까라는 생각 말입니다. 남쪽 땅에서 자리 내린 모든 북한 음식은 해방 이후 북녘에서 넘어온 이후 북한과는 어떤 교류도 없이 독자적인 생존을 해왔습니다. 즉, 남한의 북한 음식은 남북 분단 이전의 맛이라는 점이죠. 따라서 동시대 북한의 맛과 비교는 무의미합니다. 한국의 가락국수 맛을 굳이 일본의 우동과 비교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죠. 오히려 의미 있는 맛보기는 비교가 아닌 북한 맛의 특징과 맥락을 찾아보는 것에 있지 않을까요. 서론이 길었네요. 자, 북녘의 맛과 술을 찾아 떠나 볼까요. 첫 번째는 녹두전과 남한 모처에서 구해온 밀주입니다

“어? 녹두전 안에 돼지고기가 제법 많이 들어있네요?”

“야~ 고소하고 맛있네요”

“녹두전이 굉장히 부드럽네요. 뻑뻑하지 않고 고급져요”

한국인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정말 맛있는 음식이죠. 슴슴하고 포슬한 녹두전에 고소한 돼지고기가 맛을 더하니 어찌 싫어할 수가 있을까요. 하지만 녹두전이 ‘북한 음식인가’라는 질문에는 갸웃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워낙 남한에서 대중화된 음식이고 빈대떡과 같은 의미로 이해되기도 하니까요. 빈대떡의 어원에는 몇 가지 설이 있습니다. 빈자들의 떡이라는 의미에서 시작되어 빈대떡이 됐다는 말이 있고요. 해방 이후 서울 정동 부근에 빈대떡을 부쳐서 파는 거리의 상인들이 워낙 많았는데 이 동네에 실제로 빈대가 많아 빈대골이라고 불려서 빈대떡이 됐다는 설도 있네요. 가장 근거 있는 설은 조선시대에 중국의 전병을 ‘빈쟈’라고 불렀는데 이 단어가 어원이 돼서 빈자떡이라 불리다가 빈대떡이 됐다고 합니다. 빈대떡은 해방 이후 서민들의 단짝이었죠. 실제로 정동을 비롯해서 광교 청계천 일대에는 빈대떡을 부쳐서 파는 노점들로 가득했다고 하네요. 미군정의 밀가루가 시중에 풀리면서 밀가루와 녹두를 섞어서 싸게 부쳐내는 빈대떡 기름 냄새가 청계천 일대에 자욱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지’라는 빈대떡 신사가 탄생을 한 거죠. 어원과 달리 음식의 유래는 명확합니다.

“빈대떡은 황해도와 평안도 등의 서북 지방에서 많이 해 먹었다”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간 녹두에 김치, 돼지고기를 넣고 납작하게 부쳐 먹는 평안도의 전통음식” - 두산 대백과

실제로 녹두전은 평양 옥류관에서 평양냉면, 대동강숭어국, 온반 등과 함께 민족음식 중 하나로 판매가 되고 있습니다. 남한에서도 유수의 평양냉면 식당과 북한 음식점 메뉴에는 빠지지 않고 녹두전이 있지요. 지금 먹고 있는 녹두전도 유명 평냉집인 을밀대의 녹두전의 맛을 기본으로 준비했답니다. 녹두는 해독작용이 탁월한 식재료로 유명하죠. 그래서 김일성 만수무강연구소에서 김일성의 건강을 위한 주요 재료로 녹두를 많이 활용했다고 합니다. 술꾼들의 안주로 녹두전이 빠지지 않는 건 다 이유가 있었네요. 녹두전은 돼지기름으로 부쳐야 더 맛나다고들 하죠. 일본에서도 돼지기름인 라드로 돈가스를 튀겨야 진정한 맛을 즐길 수 있다고 할 정도니까 돼지기름은 부침, 튀김용 기름으로 으뜸인가 봅니다. 돼지기름으로 부치면 고소한 맛과 이른바 겉바속촉이 배가되니까요. 어때요? 겉바속촉에 고소한 녹두전 맞나요? 다들 만족스러운 표정에서 답을 알 수 있겠네요. 대신 살짝 느끼한 기운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더 맛나게 드시라고 밀주 한 병을 준비했습니다. 북한 막걸리와 유사한 맛을 찾아서 어렵게 구해온 술입니다. 노란 빛깔이 선명하죠.

“우와~ 탄산이 엄청 난데요. 녹두전의 기름진 맛을 확 잡아주네요”

“신맛도 세고, 단맛도 센데요. 술맛이 강해요”

“어디서 먹어본 듯은 한데,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어디서 먹어봤더라”

“삼양주로 담근 술은 확실히 아니다. 맛이 투박한데 정감은 있네요. 녹두전하고 좋아요”

일제 강점기 통계에도 나와있듯이 북한은 막걸리보다 소주를 훨씬 많이 마셨다고 해요. 소주만 있고 막걸리를 구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함흥 지역에 간 남한 노무자들이 막걸리가 없어 일을 못하겠다는 기사가 실렸을 정도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소주를 내리려면 막걸리 같은 발효주가 필요하니 북한 막걸리가 있기는 있었겠지요. 그 유사한 맛을 유추해서 준비한 술이 지금 이 밀주입니다. 정체가 궁금하시죠? 잠시만요. 녹두전과 짝을 이룰 음식 한 가지 더 소개하고 밀주의 정체를 공개할게요. 녹두전의 짝꿍은 북한 동해안 지역, 즉 북한 관동지역의 소울 푸드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가자미식해입니다.

“야 이게 가자미식해구나. 명태식해는 먹어봤는데 가자미식해는 첨이에요”

가자미식해

명태식해는 막국수집에서 종종 만날 수가 있죠.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명태식해는 북어포무침에 가깝죠. 잘게 채쳐서 고춧가루와 설탕 등 갖은양념으로 무쳐 재워놓은 음식입니다. 반면 가자미식해는 북한식 발효식품입니다. 젓갈에 가깝죠.

우선 잘 씻은 가자미를 소금에 가볍게 절입니다. 고춧가루, 생강 등을 넣고 양념을 만든 후 무와 가자미를 함께 버무리죠. 여기에 반드시 들어가는 재료가 하나 있는데 바로 조밥입니다. 좁쌀밥을 가자미, 양념과 함께 버무려 4~5일 정도 삭히면 북한 관동지역의 소울푸드인 가자미식해가 완성이 되는 거죠. 진짜 북한식 명태식해도 유사하게 만듭니다. 달지 않은 삭힘 음식이죠.

“너무 맛있는데요. 새콤하고 감칠맛도 있고”

“매콤하고 많이 짜지 않아서 밥반찬으로 너무 좋겠어요”

“생선 같지 않고 고기 먹는 것처럼 살이 삭았어요”

남한의 동해안 지역에서도 가자미로 식해를 만듭니다. 가자미는 동해안의 대표 식재료니까요. 경북 영덕 지역에 가면 가자미식해를 만날 수 있는데 북한의 가자미식해와 가장 큰 차이는 영덕의 것은 밥식해라는 점입니다. 북한 지역은 조밥을 넣어서 만들지만 영덕은 쌀밥을 넣어서 가자미식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차이이죠. 북한에서는 조보다 쌀이 훨씬 귀하니까요. 새콤한 감칠맛은 비슷하지만 쌀밥을 넣은 가자미식해보다 좁쌀밥을 넣은 북한식 가자미식해가 더 보드라운 식감과 색을 갖습니다. 남한에서는 실향민 촌인 속초 아바이 마을에서 북한식 가자미식해를 쉽게 만날 수 있죠. 참, 저는 개인적으로 무가 들어가지 않은 가자미식해를 더 좋아합니다. 무가 들어간 식해보다 시어지는 속도가 느리고, 가자미가 더 많이 들어가거든요.

녹두전과 가자미식해

녹두전 한 점 크게 베어 물고 가자미식해도 한 점 넣어 꼬옥꼬옥 함께 씹은 후에 밀주 한 잔 쭈욱 들이켜 봅니다. 고소함과 매콤 새콤한 감칠맛이 더해질 무렵 밀주의 산미와 단맛이 강한 탄산을 타고 몰려드네요. 입 안에서 다양한 맛의 폭죽이 팡팡 터지네요. 북한 지역 음식 덕분에 행복합니다.

이쯤에서 밀주의 정체를 밝혀야겠네요. 참고로 강원도 원주 지역에서 구해온 술입니다. 전통주 공부를 함께한 미식 모임에서도 이 술을 가지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딱 한 분이 정답을 맞히시더군요.

"혹시.. 옥수수술 아닌가요?". 빙고!! 강원도 원주에서 가져온 황골엿술입니다. 북녘의 맛과 술을 준비하면서 탈북 새터민에게 물어봤습니다. "북한에서는 막걸리 먹어? 먹으면 뭘로 만들어? ". "먹을 것도 없는데 뭔 술을 만듭니까. 여름에 옥수수밥 만들어 놓은 게 쉬면 그걸로나 술을 만들까. 쌀로 술 만들 생각은 하지도 못합니다"

'아하. 옥수수구나. 좁쌀로 가자미식해를 담듯이 북한에서 흔한 작물로 술을 만들었겠구나'

그래서 찾아간 곳이 원주 황골 지역입니다. 치악산 기슭에 위치한 황골은 예로부터 엿을 잘 만드는 고장으로 유명했습니다. 옥수수가 많이 났거든요. 옥수수를 주식처럼 먹다가 조청도 만들고 엿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거죠. 그리고 술도 만들었습니다. 바로 옥수수엿술이죠.

황골엿술

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엿술은 발효법으로 유명한 술입니다. 발효법에는 단행복발효와 병행복발효가 있습니다. 막걸리가 병행복발효로 만들어진 술인데요. 누룩효모가 탄수화물을 당화 시킴과 동시에 알코올 발효도동시에 일어나는 발효법이 병행복발효입니다. 쉽게 말해 당화와 알코올 발효가 일타쌍피로 일어나는 거죠. 반면 단행복발효는 탄수화물이 당화가 된 이후에 알코올 발효가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방식을 말합니다. 맥주가 단행복발효로 만들어진 술이죠. 계통적으로 보면 엿술은 맥주와 사촌지간인 셈입니다. 예전에는 엿술을 옥수수로만 빚었지만 요즘은 쌀을 섞어서 빚습니다. 옥수수는 술색을 내기 위해서 넣죠. 옥수수가루와 쌀가루를 엿기름(맥아)과 물에 잘 섞어 놓으면 당화가 되어 단물이 되죠. 찜질방 가서 마시는 그거 말입니다. 맞아요. 식혜. 그 단물을 한번 바르르 끓여서 살균을 한 다음에 누룩을 넣어 알코올 발효를 시키면 엿술이 됩니다. 한국 전통주로는 유일하게 단행복발효를 하는 술이죠. 일종의 단양주고요. 그래서 탄산도 강하고 산미와 감미가 직선적입니다. 왠지 술맛이 북한을 닮은 듯도 하네요. 구하기는 아마 북한 술보다 더 힘들지도 모릅니다. 시중에 유통되는 옥수수 엿술을 아예 없어서 강원도 원주 황골까지 직접 가야 구할 수 있습니다. 황골에서도 엿술을 파는 집이 몇 집 없고 표식도 잘 보이지 않아 일일이 찾아다니며 ”엿술 있나요? "라고 물어봐야 합니다. 산 넘고 물 건너야 마실 수 있는 술이랍니다. 엿술을 밀주라고 표현한 이유가 공식 유통도 되지 않고 구하기 너무 힘들어서입니다. 맛도 좋은 한국의 전통주인데 이토록 희귀한 술이 되어가는 게 안타깝네요.

녹두, 좁쌀, 가자미, 옥수수. 모든 재료가 척박한 땅과 물에서도 너끈히 살아가는 생명력 강한 식재료들입니다. 해독력 좋은 녹두를 곱게 갈아 고소한 녹두전을 부치고, 푸른 동해의 가자미를 오래 먹기 위해 좁쌀로 발효를 돕는 삭힘 식해를 담그고, 옥수수로 조청도 조리고 엿도 만들고 술도 빚는 다재다능함은 남과 북이 따로 없습니다. 고소한 녹두전, 매콤 새콤 감칠맛 가득 가자미식해, 탄산 기운 넘치는 시큼 달큼 옥수수엿술을 한 입 가득 넣고 호쾌하게 먹고 마셔 봅니다. 맛있는 통일이 지금 입 안에서 시작되네요. ”야~ 임자. 이거 맛이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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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연 PD

맛&막걸리 콘텐츠 PD. TV조선에서 제작부장으로 [살림9단의 만물상], [애정통일 남남북녀], [모란봉 클럽], [시골빵집]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제작.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CP(책임 피디)로 전국의 맛난 음식 & 막걸리와 사랑에 빠져버림. 현재는 맛과 막걸리와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프로듀서로 열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