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핫한, 선호 생막걸리(김포금쌀탁주 영농조합)

막걸리는

아침에 한 병(한 되) 사면

한홉짜리 적은 잔으로

생각날 때만 마시니

거의 하루 종일이 간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준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천상병 시인의 ‘막걸리’ 중에서-

어르신들에게 막걸리는 배부른 곡주였다. 넉넉하지 않은 먹거리 살림에 별다른 안주 없이 허기도 달래고, 고단함도 달래주는 막걸리는 서민의 밥이자 술이었다. 힘든 논일 밭일 중간에 마시는 새참 막걸리는 술이 아닌 육신의 뻐근함을 살펴주는 진통제였다. 금주령이 잦았던 조선시대에도 농번기 막걸리는 종종 금주령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일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오죽했으면 막걸리의 다른 이름이 농주였을까. “김씨네 양조장에 가서 막걸리 한 주전자 받아 오니라”는 아버지의 심부름 길에 홀짝거려버린 막걸리 덕분에 되도 않는 술주정을 지껄였던 아이들이 중년이 되었다.

농사의 고됨을 막걸리 한 사발로 잊어가며 키운 아이들은 도시로, 도시로 향했다. 운 좋게 도시의 학생이 된 아이들은 싼 값에 천천히 취할 수 있는 막걸리를 마셨다. 찌그러진 누런 주전자에 찰랑찰랑 담겨온 탁한 술을 들이키며 세상에 대한 원망을 적시고 또 적셨다. 짭조름한 고갈비 한 점, 시큼한 김치와 제육볶음을 얹은 두부 한 점 입에 욱여넣으며 막걸리에 취해갔다.

“씨발, 나 하나 어찌한다고 세상이 변하겠냐고”

어찌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어라 마셔라 만취한 다음날 막걸리는 확실한 두통을 제공했다. 깨질듯한 머리를 들어 올리며 “빌어먹을 막걸리 다시는 마시나 바라”라는 헛된 다짐을 수백, 수천 반복하다 보니 세상은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듯 바뀌어 갔다.

“야, 막걸리 배부르고 머리 아프잖아. 발렌타인 17에다 깔끔하게 폭탄 한 잔 때리고 후딱 가자”. 변한 건 도시로 향한 아이들이었다. 멀디 먼 스코틀랜드 오크통 안에서 향기로운 갈색을 품은 멋진 술을, 씁쓰름한 맥주에 말아 정체불명의 액체로 역변시켜 처먹으며, 세상을 버티고 있는 자신을 뿌듯해했다. 참 많이도 말아먹었다. 술도 말아먹고, 돈도 말아먹고, 세월도 말아먹었다. 정신 차리고 나니 도시로 향한 아이들에게도 시절의 흔적, 변화의 자국이 깊게 새겨져 있다. “에이 빌어먹을 팔자 하고는”.

팔자타령하며 한 잔 걸치자니 말아먹는 폭탄은 맛이 없고, 맥주는 심심하다. 소주는 시간을 먹은 몸이 버거워하고, 와인은 편하지가 않으니, 결국은 막걸리다. 유난히 말아먹기 좋아하던 친구도 근자에는 막걸리를 찾는다. 심심하지도 않고, 독하지도 않고, 적당히 취할 수 있으면서 술에 담겨있는 감칠맛이 좋단다. 막걸리 전문점에 가면 골라 마시는 재미도 있단다. 역사는 반복된다던가. 돌고 돌아 막걸리다.

사당역 여정 막걸리에서 10여 종의 전국 막걸리가 쟁여진 냉장고를 털어 익숙한 이 놈, 저 놈 골라먹는 재미가 한 참이었다. 나이가 들면 경험에서 나오는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낯선 만남이 어색하고, 심지어 두렵다. 경험 팔이 잘난 체를 하려면 익숙한 것만 만나야 하고, 아는 것만 소비하기에도 남은 세월이 넉넉지 않음을 아는 까닭이다. 그래서 제정신에는 새로운 걸 고르지 못한다. 분위기에 취하던, 술에 취하던, 허세에 취하던. 뭔가에 취해야 새로움과 마주칠 용기가 생긴다. 막걸릿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얼굴이 불콰해지니, 주변에서 뭘 마시나 슬쩍 훔쳐보게 된다. 또래의 중년들은 허연 통의 이런저런 막걸리를 마시는데, 젊은 친구들은 죄다 푸른 통에 담긴 이 녀석을 마시고 있다. 식객 허영만 선생의 유튜브에서도 본 적이 있던 막걸리다. 선호 생막걸리. 김포 금쌀 100%라고 한다. 세련된 MZ세대가 막걸리를 마시는 것도 신기한데, 젊은 테이블마다 푸른 선호 생막걸리를 올려놓고 있다. 궁금증이 몰려온다.

푸른 막걸리 병이 독특하다

알코올 : 6도

원재료 : 정제수, 백미, 올리고당, 국, 정제효소, 효모, 천연감미료

첫 잔

시큼하다. 시큼한 산미와 옅은 누룩향이 조화를 이루는 술맛이 수도권 막걸리로는 꽤 새로운 풍미를 준다. 단맛이 강하지 않다. 단맛을 주력으로 삼지 않고, 산미와 누룩향을 제법 센 탄산으로 실어 나른다. 단맛이 상당히 절제되어 있어, 오히려 상쾌하고 상큼한 맛을 준다. 좋다. 탄산의 기운이 세다. 탄산 덕분에 안주의 뒷맛이 빠르게 정리된다. 트림 꽤나 할 기운이다. 젊은 친구들이 이 녀석을 선택한 이유를 아직은 모르겠다.

둘째 잔

단맛이 살짝 느껴진다. 첫 잔을 생각하면 단맛이 빨리 느껴진 셈이다. 탄산은 여전히 세다. 산미와 누룩의 향이 강하게 느껴졌던 건 단맛이 워낙 약하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맛이 강한 막걸리는 아니다. 가장 강하게 두드러지는 건 탄산이다. 강한 탄산에 산미가 실려있기에 단맛을 저어하는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기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시골 중국집 풍경. 짜장면은 시골이 맛있다

시골 장날에 가면 빠지지 않는 삼총사가 있다. 설탕 팍팍 무친 꽈배기, 단팥 가득한 고소한 도넛, 기름기 좔좔 흐르는 짜장면이다. 기름지고 달달한 삼총사다. 기름진 맛과 단맛이 귀했던 시절을 살아온 어르신들을 유혹하기 위한 메뉴다. 생활이 풍족해진 7080 세대는 단맛과 기름진 맛을 일상으로 끌어들였다. 기름지고 달달해진 음식이 널려 나기 시작한다. 쉽고 빠르게 맛 내기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설탕 때려 붓기다. 너무 달아지면 소금을 넣어 짜게 만들고, 캅사이신을 넣어 맵게 만든다. 결국은 단짠단짠한 자극적 음식으로 마무리된다.

새로운 세대는 평균율을 거부하며, 나만의 개성을 추구한다. 달아야 할 음식과 아닐 음식을 구분한다. 달면 젊은 친구들이 무난히 좋아하리라는 생각은 과거에 갇힌 생각이다. 모든 섞어서 말아버리는 세대가 아니다. 하나하나의 개성을 찾아가는 세대다. 희미한 단맛에 탄산과 산미로 개성을 살린 선호 생막걸리. 술맛이 들쩍이지 않고 선명하다. 젊은 취향이다.

셋째 잔

깔끔한다. 천천히 호흡하고 마셔도 깨끗한 목 넘김이다. 잡스러운 맛이 없는 건 좋지만, 입을 유혹하는 감칠맛도 없는 건 아쉬움이다. 혀를 감싸는 깊은 맛까지는 아니더라도, 오호 요놈 봐라 하는 감칠맛 하나는 숨겨놓아도 좋으려만, 심플하게 직진이다. 산미를 주력으로 들쩍한 단맛을 제어하고, 탄산에 실린 깔끔함이 직진으로 목젖을 적신다. 의미 없는 복잡함보다 훨씬 좋은 장점이다.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또 다른 포인트일 수 있다.

감칠맛이 부족함은 막걸리를 사랑하는 중장년에게는 큰 아쉬움이다. 여타 술들과는 달리 막걸리를 끼니 삼아 마실 수 있었던 이유가 감칠맛에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허기 저도 시고 쓰고 독하기만 한 술을 어찌 밥처럼 마실 수 있었겠는가. 입을 싸고도는 형용하기 힘든 ‘맛’이 있었기에 묵은지 한 조각에도 벌컥댈 수 있는 것이다.

감칠맛은 단백질의 영역이다. 단백질의 글루탐산과 이노신산은 풍미를 책임지는 감칠맛의 핵심이다. 하지만 술에서 단백질은 핵심이 아니다. 단백질, 쉽게 말해 고기나 두부, 다시마를 백날 발효시켜봤자, 썩기만 하지 술이 되지는 않는다. 술은 탄수화물의 선물이다. 탄수화물을 당으로 변화시켰을 때 진정한 술 발효가 시작된다. 일본술 사케의 경우 얼마나 순수한 전분층(탄수화물)으로 술을 빚는가에 따라 등급이 나누어진다. 쌀의 겉면(미강)에 있는 단백질을 얼마나 깎아내는가(도정)에 따라 값이 하늘과 땅의 차이로 벌어지는 것이다. 쌀 도정률 70%(30%만 깎은) 이하는 순미주, 60% 이하는 음양주, 50% 이하는 대음양주라 하여 정확히 구분을 하고 있다. 단백질과 기타 성분을 최소화하고 탄수화물로만 빚어야 잡미 없는 순수한 술이 나온다는 것이 일본술의 주장이다. 혹시라도 사케를 고를 때 아는 브랜드가 없다면 ‘순미대음양’이라고 적혀있는 놈을 고르면 실패는 없다. 주머니가 훅 가벼워지는 실패는 있지만.

쌀에 술맛이 담겨있다

한국 술은 반대다. 한산 지역의 명주인 소곡주로 실험을 한 결과, 도정률이 높을수록(많이 깎을수록) 소곡주에 대한 소비자의 기호도가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정률이 높아 단백질의 함량이 감소할수록, 술의 풍미가 현저히 떨어진다고 느낀 것이다. 그렇다고 도정률을 너무 낮추면, 잡미가 강한 복잡한 맛의 술이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막걸리 빚기가 힘들다고 한다. 일본술처럼 도정률에 따른 분류 기준이 있지도 않다. 많이 도정할수록 좋아지는 일본술과 달리, 쌀을 어느 정도 도정하고, 가공하느냐에 따라 맛의 풍만함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쌀의 약 7~8% 정도밖에 되지 않는 단백질의 양에 따라 달라지는 감칠맛의 깊이를 막걸리는 알고 있다. 막걸리가 그런 술이다.

넷째 잔

속이 싸하다. 탄산 때문이다. 단맛 제어도 좋고, 옅은 산미와 누룩향도 좋은데 탄산이 너무 강하다. 스파클링 막걸리를 마시는 느낌. 그 덕에 심플한 깔끔함을 얻었지만, 왠지 덤덤하게 느껴지는 막걸리다.

선호 생막걸리를 함께 한 친구는,  이 녀석이 오래 만나도 질리지 않을 담백한 친구 같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은 무료하고, 심심할 수도 있겠지만, 이 녀석이 가진 깔끔함 덕분에 오래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될 것이다. 눈이 취하고 몸도 달아오른다. 달지 않고 덤덤하니, 질리지 않고 꾸준히 들어간다. 위험한 녀석이다. 딸꾹. 그래서 선호하게 되는 선호 생막걸리.

승발이의 맛 평가 : 선명하고 깔끔한 맛의 저가 막걸리를 만나기 의외로 어렵다. 스스로의 캐릭터를 잘 주조한 막걸리. 4.2점(5점 만점)

어울리는 맛과 멋 : 단맛이 적고 심플한 막걸리는 맛이 옅은 해산물과 함께 하면 좋다. 단, 선호 생막걸리는 탄산이 강해서 회 종류의 미세한 맛을 살려주긴 어렵다. 직화로 구운 해산물과 함께하면 윈-윈할 수 있는 조합이다. 인도네시아 대사관 골목의 ‘여의도숯불구이쭈꾸미’의 관자-주꾸미 구이가 좋은 안주거리의 예이다. 담백한데 감칠맛 나는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Sultans of Swing’도 훌륭한 안주다. 발표한 지 48년이 지나도 이 노래는 여전히 싱싱하다.

참고 자료

  • 도정도에 따른 소곡주의 품질 및 기호도 변이 – 천아름
  • 막걸리, 거친 일상의 벗 – 국립민속박물관
  • 쌀의 도정원리에 대한 이해 – 에코타운
  • 고기의 맛과 식감을 결정하는 요인은 – 뉴턴 하이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