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과 아쉬움 사이, 톡생 막걸리

새로움은 기대감을 준다. 내가 모르는 미지의 영역 어딘가에 있기에, 설렘이 있다. 지루한 일상 넘어 나를 두근거리게 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불안하다. 경험한 적이 없기에,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에 새로움은 불안하다. 익숙함은 편안하다. 익숙함을 버려야 산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말하다 지치면 익숙한 편안함을 찾는다. 그 속에 몸을 눕히고 쉼을 찾는다.

상수동은 멋스럽다. 레트로하다

어울리지 않는 새로움과 익숙함의 융합을 젊은 세대들이 완성했다. 레트로다. 익숙한 올드타운에 트렌디한 새로움을 입혀, 레트로 문화를 만들어 냈다. 레트로한 식당에 가면 왠지 내가 멋들어진 느낌을 갖게 된다. 상수동에 있는 국숫집이 그렇다. 양철 처마 밑에서 해지는 푸른 하늘을 배경 삼은 메밀국수 한 그릇은 참 ‘멋’스럽다. 한 그릇의 국수를 이렇게 세련되게 뽑아낼 수 있다니. 익숙한 한 그릇이 사뭇 새롭게 다가온다. 우선 냉면 육수부터 한 모금. 좋다. 면을 풀고 본격적으로 한 입 해보자. 어라? 뭐지?

참 세련된 국수 한그릇이다

마트에서 오랜만에 새로운 막걸리를 만났다. 톡생 막걸리. 경기도 가평에서 나온 녀석이다. 일종의 레트로 술이다. 익숙한 막걸리에 새로운 디자인과 이름을 더했다

알코올 : 5%

재료명 : 쌀, 밀, 국, 올리고당, 효모, 젖산, 수크랄로스, 정제수

젊은 층을 겨냥한 막걸리다. 알코올 함량 5%와 타이틀에서 알 수 있다. 단맛이 너무 강하지 않았으면 한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톡’이란다. 마개를 따는데 탄산이 상당하다.

새로움은 기대감을 준다

첫 잔

의외다. 단맛이 상당히 적다. 탄산이 입천정을 강하게 치면서, 누룩향이 스친다. 산미가 주류를 이루고, 단맛이 뒤를 따른다. 전체적으로 맛이 희미하다. 가벼움과 희미함의 경계에 서있는 듯. 하지만 강렬하다. 입안에서 터지는 탄산의 기운이 지나치게 세다.

둘째 잔

강한 탄산에 트림이 빨리 올라온다. 강한 안주인 파김치와 마시니 막걸리 맛이 더 희미해진다. 산미도 그리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농도는 맑아서, 편하게 마실 수는 있다. 도수도 약해서 부담은 없다. 하지만 술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럼 이건 뭐지? 막걸리를 마시면서 술 느낌을 갖지 못하다니.


상수동 국숫집의 물냉면은 참 보기가 좋다. 깔끔하다. 다른 메밀국수도 마찬가지다. 들기름 막국수, 비빔 막국수도 세련된 모습니다. 물냉면 육수도 괜찮다. 육향과 짠기가 조화롭다. 봉피양 육수 맛을 닮았다. 기대감을 가지고 면을 풀어 한 입 우물거린다. 싱겁다. 면의 물기를 꽉 제거하지 못한 탓이다. 면 타래가 품고 있던 물기가, 면이 풀어지면서 육수와 섞여 전체적인 맛이 확 싱거워졌다. 메밀면 맛의 핵심은 단맛이다. 한 입 가득 넣고 우물우물 씹으면 뒤에 남는 은은한 단맛이 기가 막히다. 그 단맛을 강조해 주는 것이, 육수의 적절한 짠맛이다. 육수가 싱거우면 메밀 면의 단맛을 그만큼 즐길 수 없다. 상수동 국숫집은 그래서 아쉽다. 잘 뽑은 육수를 면이 품고 있던 물이 싱겁게 만들고 있다.

정성이 담겨있기에 더 아쉬운 냉면 한 그릇

셋째 잔

마시는 속도를 높여본다. 약간의 술기운이 느껴지지만, 역시나 강하게 느껴지는 건 탄산뿐이다. 오히려 단맛이 첫 잔 보다 진하게 느껴진다. 근데 이 녀석을 과거 어디선가 만난 거 같다. 아! 단맛 줄이고, 산미를 높인 암바사다. 빛깔도 암바사를 진하게 한 듯 뽀얀 오프-화이트 빛깔이다. 사이다에 우유를 섞은 음료로 30여 년 전에 한창 인기를 끌었던 음료수다. 주윤발의 CF로도 화제가 됐던(밀키스, 암바사와 같은 음료수다) 음료지만, 지금의 존재감은 미비하다. 새롭게 섞긴 섞었지만, 사이다도 우유도 아닌 맛이 오래갈 수는 없다. 핵심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넷째 잔

이 녀석의 포인트는 탄산이다. 여전히 목젖을 치는 게 강하다. 단맛, 산미, 쓴맛 등은 모두 희미하다. 그래서 좋은 말로 맑게, 술꾼 말로는 희미하게 먹을 수 있다. 농도는 맑지만 맛이 맑다고 해야 하나? 헛갈린다. 이 녀석에게 확실한 건 탄산뿐이다. 전체적으로 맑게 술맛을 조율한 것은 새롭지만, 젊은 층에 취향에 맞추겠다고 탄산을 이렇게 많이 잡은 것은 과오다. 부담 없는 술맛을 과한 탄산이 싱겁게 만들고 있다.

탄산이 과하다

상수동 국숫집은 전체적으로 멋지다. 레트로한 가게 풍경도 멋지고, 한 그릇의 모양새도 멋지다. 하지만 그 모양새에 갇혀 메밀면 맛이 희미하다. 냉면은 면이 품고 있는 물기의 양이 육수 맛을 희미하게 했고, 들기름과 비빔 막국수는 멋진 양념이 면의 맛을 희미하게 한다. 넉넉히 올려진 고소하고, 빨간 양념들이 은은한 면의 맛을 느낄 여유를 주지 않는다. 양념 맛이 은은한 메밀면의 단맛을 살려줄 틈을 주지 않는다. 아쉽고 또 아쉽다. 레트로한 식당들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 당혹스러움이다. 새로움이 익숙함을 낯설게 만들고, 익숙함이 새로움을 어색하게 만드는 맛의 부조화. 멋이 가리는 맛의 핵심.

탄산의 청량감으로 승부하려는 톡생 막걸리. 막걸리 맛 암바사 같다. 탄산을 강조함으로 새로움을 더하려는 것이었을까. 하지만 탄산이 막걸리 맛의 본질은 아니다. 과한 탄산이 톡생 막걸리의 맑은 장점들을 희미하게 만들고 있다. 본질에서 한발 벗어나 있는 막걸리를 젊은 세대는 선호할까? 모를 일이다.

승발이 맛 평가 : 장점을 가리는 아쉬움 가득한 탄산의 맛. 3점 (5점 만점)

어울리는 맛과 멋 : 프라이드치킨과 함께라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맛의 조합이다. 음유시인계의 큰 형님 레오나드 코헨의 선구자적 레트로 넘버, ‘I’m Your Man’을 함께 해보자. 멋진 섞임의 진수를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