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양조장의, 덕산 생막걸리(진천 덕산양조)

만화 식객 100화 [할아버지의 금고] 편의 배경으로 덕산 양조장 건물이 소개되어 전국구의 명성을 얻은 막걸리다. 서울 막걸리 전문점에서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만화의 주요 소재였던 덕산 양조장은 대한민국 문화유산이자 문화재로 등록되어있다. 1929년 백두산에서 가져온 전나무로 만들었다는 멋진 양조장 건물의 역사는 덕산 막걸리의 기대감을 한껏 올려놓는다.

알코올 : 6도

원재료 : 정제수, 밀가루, 쌀, 물엿, 고과당, 조효소제, 조제종국, 배양효모, 아스파탐, 아세설파칼륨, 젖산, 국

첫 잔

빛깔이 누렇다. 맛은 달다. 달달한 맛이 별 무리 없이 목젖을 타고 논다. 확실히 단맛이 메인인데, 별 특징을 찾을 수가 없다. 부담 없는 목 넘김은 장점인데, 맛의 특징을 찾기가 힘들다. 한마디로, ‘맑고 달달한 막걸리가 매끈하게 넘어간다’. 참 좋은 막걸리의 표현인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애매함이 입에도 남고 머리에도 남는다.


둘째 잔

밀이 섞인 막걸리 특유의 단맛이 강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렇진 않다. 굉장히 많은 효모제와 첨가물이 들어간 막걸리 치고는 깔끔하게 맛을 뽑았다. 왜 이렇게 많은 첨가물이 들어가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른 주조장도 이렇게 많이 넣는데 표기를 안 하고, 이곳이 정직하게 표기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양주 학교에서 전통주를 배울 때 젊은 셰프를 만났었다. 베트남 음식점에 근무하면서 꾸준히 전통주를 익히고 있는, 우리 술에 진심인 멋진 친구였다. 막걸리를 배우려고 덕산 양조장에 취업한 적도 있다고 했다.

“집이 진천이에요?”

“아뇨. 양조장이 나무로 너무 멋지게 생겨서, 제대로 술을 배울 수 있을 거 같아서요”

“멋지네요. 많이 배웠어요?”

“네. 근데 덕산양조장은 술을 빚을 때 물엿을 넣더라고요. 그때 물엿 첨가하는 이유를 안 물어본 게 후회돼요”

나도 궁금하다. 흔하진 않지만 원재료에 엿이 들어간 막걸리를 적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감미를 위해서가 아닌, 발효 촉진을 위해 넣는 경우가 일반적일 것이다. 덕산 생막걸리에서 특히 눈길이 끄는 건 ‘고과당’이다. 옥수수 전분에서 얻어낸 과당으로 설탕보다 75% 정도 더 달다고 하는 고과당을 첨가하고, 조효소제도 첨가한다. 조효소제는 당화를 촉진시켜 발효력을 증진시키는 첨가제다. 물엿과 고과당이 막걸리 맛의 감미를 더하기 위해서 넣는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그 역할은 아스파탐과 아세설파칼륨이 맡고 있다. 결국 물엿과 고과당 그리고 조효소제는 발효력을 증진하기 위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쌀보다 당화력이 좋은 밀에 물엿, 고과당, 조효소제까지. 아마도 발효 시간을 단축시키면서 알코올 도수를 높이기 위한 덕산 양조장만의 방법일 터인데, 이 많은 첨가물을 넣고도 이처럼 무난한 맛을 뽑아내는 것은 마시는 사람의 호불호를 넘어 분명한 기술이다.

셋째 잔

달긴 달지만 세지 않고, 탄산이 있으나 강하지 않다. 산미와 쓴맛은 뒤에 깔려 작은 존재감을 비춘다. 누룩향도 거의 없다. 덤덤한 얼굴에 약한 미소를 짓고 있는 충청도 촌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막걸리가 일상의 친구였던 옛날에,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막걸리가 이런 맛이었을까. 달달하지만 모나지 않은 이 맛이 옛 진천의 정취를 떠오르게 한다.

덕산 생막걸리는 평안한 진천 들녘을 닮았다

시골 할머니의 밥상은 늘 정성을 들인 청정 자연밥상을 연상케 한다. 항아리에서 곰삭은 장, 밭에서 갓 따온 싱싱한 채소, 능숙한 솜씨로 버무리는 할머니의 손맛까지. 온기 가득한 밥상은 할머니의 애정이 듬뿍 담긴 감칠맛으로 충만하다.

“와. 할머니 어쩜 이렇게 찌개가 맛있어요. 기가 막히다. 비법 좀 알려줘요”

“잉. 많이 묵어라 우리 새끼. 먹고 싶을 때마다 낋여 줄터인께. 자주 온나”

“할머니 진짜 비법이 궁금하다니까요”

“그랴? 찌개가 팔팔 끓을 때 넣지 말고, 한 소뜸 숨을 죽이고 넣어”

“뭐를요”

“미원”

“아.. 네..”하며 환상이 깨지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지독히 이기적인 맛의 환상을 가진 사람이다. 감칠맛 가득 담은 찌개를 위해서는 좋은 재료로 긴 시간 정성 들여 끓이고, 졸여낸 육수가 있어야만 한다. 준비된 육수가 없다면, 지방 듬뿍 머금은 소고기 등심이나 차돌박이라도 한 칼 있어야 한다. 이도 저도 없어서 묵은 된장에 채소만 뚝뚝 썰어 놓고 찌개를 끓인다? 국물이 적당하면 짤 것이고, 국물이 많으면 싱거울 것이다. 논일에, 밭일에, 살림까지. 쉼 없는 일상의 주름살이 새겨진 할머니가 미원 한 꼬집을 넣는다고 맛의 환상이 깨진다는 건, 지독한 이상주의자의 환상 속 맛 추구다. 진짜 맛을 위해서는 ‘미원’이 아니라 ‘한 소뜸 숨을 죽이고 넣어’에 주목할 일이다.

시골 양조장도 마찬가지다. 세월이 멋이 각인된 양조장을 보면 왠지 모르게 전통을 고수하는 장인의 술도가를 떠올린다. 쌀, 물, 누룩으로만 빚어 커다란 옹기 술독에서 정성으로 발효한 막걸리. 그런 막걸리 물론 있다.

‘한 통에 얼마예요?’

‘12000원이요’

‘네? 막걸리가 뭐 그렇게 비싸요?’

그래서 감미료를 첨가하고, 국으로 발효하고, 물을 첨가해서 1500원에 출시한다. 만화 맛의 달인에서 자그마한 맛집을 하는 하루 아주머니는 너무도 쉽고 싼값에 훌륭한 맛을 원하는 사람들을 향해 멋진 대사를 던진다.

“어머나 세상에 그런 맛은 없죠. 돈을 들이거나 정성을 들이거나 둘 중에 하나예요”

그리고 내가 한 마디를 더한다. “그러면 비싸지죠”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옛 것에 대한 환상에 종종 빠진다. 커다란 술독에서 향기롭게 익어가는 아름다운 술맛은 좋은 꿈이다. 하지만 현실은 스테인리스 발효조다. 식약처에서 지정한 방식이니 어기면 불법이다. 진정한 술꾼들은 전통주는 항아리에서 익어야 한다며 한 숨을 크게 쉴 일이다. 그런데. 술이 익은 항아리를 청소할 생각을 해보았는가? 초등학생 키 정도의 거대한 술독을 주기적으로 청소하지 않으면, 독의 숨구멍에 앙금이 끼어 부패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술맛과 향이 탁해진다. 거대한 술독을 청소하려면 몸을 물구나무서기 하듯이 굽혀 독에 들어가 물로 일차 씻어내고, 물을 깔끔히 걷어내야 한다. 마른 천으로 독 안을 샅샅이 흝어 낸 후, 짚과 유황을 꺼내온다. 좋은 술을 빚는 과정은 미생물들의 파티 타임이다. 파티가 끝난 후 술 취한 미생물을 말끔히 정리해야 다음 파티를 준비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청소 과정이고, 이때 필요한 것이 짚과 유황이다. 유황 올린 짚에 불을 붙인 유황불로 독 안을 살균하여 잡균을 처리하는 것이 술독 청소의 마지막 단계다. 노란 유황불 연기가 독 안을 가득 채울 때 나는 냄새는 지독하다. 숨 쉬기도 힘들다. 죽을 것만 같다. 만약 옛스러운 양조장에 큰 술독이 20개가 있다면, 유황불 과정을 20번 반복해야 한다. 20번 죽을 것만 같다.

환상과 이상 사이에는 현실이 있다. 옛스럽고 낭만적인 술빚기의 환상이 이상적인 막걸리의 맛으로 환원되는 과정에는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현실이 있다. 그 현실의 값은 반드시 지불되어야 한다. 현실의 값은 생각지 않고, 이상적인 맛만 찾는 행위는 불공정하다. 할머니의 밥상에서도 그렇고, 오래된 양조장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넷째 잔

막걸리가 식으니 구수한 뒷맛이 살짝 올라오고 속도 따땃해진다. 혀 위에서 잔탄산이 느껴진다. 산미가 거의 느껴지지 않음에도, 단맛이 크게 거슬리지 않게 느껴진다. 덕산 생막걸리가 갖는 장점이다. 이 많은 첨가물을 무난하게 버무린 주조 방식도 일종의 기술이라면 기술이다. 양조장 건물만큼이나 오래된 막걸리의 맛을 유지하려고 한 노력이 느껴진다. 찬찬히 호흡하고 잔술을 혀 안쪽으로 음미하니 산미가 느껴진다. 아마도 추가된 젖산은 산미를 증진하기 위해서가 아닌, 잡균 제거를 위해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맑고 달달하고, 매끄럽게 넘어가는’ 무난한 막걸리. 쉽게 질리지 않겠지만, 쉽게 기억되지도 않을 덕산 생막걸리이다. 오랜 전통의 양조장 건물이 갖는 부담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럼에도 아쉽고 또 아쉬운 맛이다. 덕산 생막걸리가 빚어지는 진천 덕산양조장의 아쉬움은 인기에 대한 책임감 없음이다. 할머니 밥상이 전국구가 되지 않은 이유는 일반인들이 인지하고 공감하는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중에 대한 책임감도 없다. 타의에 의해서던 자의에 의해서던 덕산 생막걸리는 전국구 막걸리다. 만화 식객에 소개된 양조장 건물의 스토리 덕분에 얻은 인기 때문이지, 맛 때문에 갖게 된 전국구 명성이 아니다. 우연히 얻어진 인기, 혹은 인지도를 유지하려면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건 책임감이다. 술독에 안 빚어도 괜찮고, 수많은 첨가물을 넣어도 상관없다. 양조장 건물에 공감했던 대중 술꾼들에게, 술맛으로도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이 녀석은 너무 무난하다. 양조장이라는 이미지는 구축이 되었으나, 맛이라는 콘텐츠가 밋밋하다. 번듯한 헛헛함이다.

승발이의 맛 평가 : 특별한, 덕산 양조장만의 개성 한 수저가 첨가되면 어떨까. 아니 필요하다. 4.0점(5점 만점)

어울리는 맛과 멋 : 충청북도의 고등어 요리는 타 지역과 다르다. 삶듯이 쪄낸 자반 고등어에 양념장을 얹어서 먹으면, 고등어 특유이 비린맛은 사라지고 고소한 짠맛이 극대화된다. 아주 맛있다. 특히 뱃살의 기름진 고소함을 최고로 느낄 수 있다. 덕산 생막걸리의 무난한 달달함을 더하면 더욱 좋아질 지역의 맛이다. 마크 너플러의 ‘Local Hero’도 함께하자. 모든 요소를 품어줄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