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 남해의 막걸리, 남해생탁
남해는 보물섬이다. 가슴을 푸르게 적시는 코발트 바다 빛이 보물이다. 해풍이 감미한 자연스러운 단맛의 남해 마늘과 시금치는 보물이다. 멸치쌈밥의 구수한 맛이 보물이다. 바다를 곁에 두고 걸을 수 있는 길이 보물이다. 푸르르고 또 푸르러 나의 텁텁함을 날려주는 남해는 보물섬이다. 푸른 남해에서 구입한 남해생탁의 맛도 보물일까? 재료가 굉장히 많이 들어있는 막걸리다.
남해생탁[(주)시골할매, 남해군 남면]
알코올 : 6%
재료명 : 정제수, 쌀, 입국(쌀), 물엿, 아스파탐, 효모, 덱스트린, 유당, a-아밀라아제(비세균성), 글루코 아밀라아제, 황산칼슘, 탄산칼슘, 사카린나트륨(감미료)
첫 잔
시큼한 향이 올라온다. 시큼함에 업히어 기대감도 올라온다. 한 모금 마신다. 탄산은 좋다. 근데 막걸리 향과는 달리 신맛이 별로 없다. 단맛과 톡 쏘는 탄산의 질감이 앞에 나선다. 누룩향도 없다. 맑은 맛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을 맛이다. 단맛이 강하지 않아 자칫 밋밋할 수도 있지만, 쓴맛도 강한 편이라 나름의 중량감이 있다. 남해를 생각한다면 청량감 있는 맛은 아니지만, 투박한 맛도 아니다. 단맛이 들쩍이지는 않지만, 확실하다. 사카린의 단맛이 강하다.
둘째 잔
농도는 적당하다. 너무 맑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은 '적당한' 중량감이 있다. 술맛도 제법 세다. 시골 막걸리의 특징이다. 원주에 물을 섞을 때 정확한 개량이 힘든 경우, 표기 도수보다 높은 막걸리가 출하될 수가 있다. 이 녀석의 센 술맛도 그런 이유라고 짐작된다. 술이 빠르게 오른다. 술이 식으면서 사카린 특유의 쌉쌀한 뒷맛이 강하게 남는다. 아쉬움이 입 안을 적신다.
남해에 갈 때면 삼동면 우리식당에서 멸치쌈밥을 먹는다. 워낙 유명한 식당이어서 한창 때는 자리잡기도 힘든 집이다. 우리식당의 멸치쌈밥은 구수하다. 좋은 멸치를 잘 조리한 탓이다. 뒷맛에 깔리는 단맛이 은은하다. 좋은 양념인 남해마늘로 조미한 탓이다. 알싸하고 은은한 단맛을 품은 멸치 한 마리를 흰쌀밥에 곁들인다. 남해의 바다와 땅이 넉넉히 입안을 채운다. 남해의 보물이 내 혀를 자극한다. 행복하다. 남해생탁 막걸리도 이런 행복을 기대했다. 우리식당 멸치쌈밥처럼 달달한 구수함을 기대했고, 남해의 바다와 땅처럼 푸르른 산미를 기대했다. 남해는 그런 기대감을 품게 한다. 그래서 막걸리를 마시는 순간, 아쉬움도 커져간다.
셋째 잔
개성을 찾기가 힘들다. 남해 바다의 청량감도, 섬의 은밀함도 찾기 힘들다. 마실수록 강해지는 사카린의 뒷맛이 아쉬움만 더한다. 뒷맛의 달달함도, 산미의 경쾌함도 없다. 마실수록 강해지는 쓴맛이 술맛의 쌉싸름이 아니라, 사카린의 자국이어서 개운치가 않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귀국 후 조성한 독일마을은 남해의 명소이다. 독일마을 어귀에 빵집이 있는데, 담백한 빵맛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독일빵집. 꾸밈없이 솔직하게 구워진 빵의 향기가 가득하다. 어떤 빵을 골라야 최선의 선택일까 두리번거리던 차에 엉뚱한 녀석이 눈에 들어온다. 눈을 뗄 수 없다.
독일 맥주다. Ayinger, 아잉거. 한 병에 만 원. 기가 막히다. 값이 아니라 맛이.
아잉거 브로바이스와 아잉거 우르바이스. 에일 발효 방식의 밀 맥주다. 아잉거 브로바이스는 산미와 은은한 단맛, 탄산의 조화가 절묘하다. 독일 빵집의 담백한 빵과 함께 마셔본다. 아름답다. 근래에 마셔본 맥주 중 최고의 맛이다. 아껴 마시려던 아잉거 우르바이스도 참을 수가 없다. 같은 밀맥주인데 발효법의 차이인지 맛과 향이 아잉거 브로바이스와 차이가 있다(찾아보니 맥아 처리 차이로 맥주 색이 짙어지는 둥켈바이젠 스타일의 맥주라고 한다). 역시 맛있다. 브로바이스에 비해서 이 녀석은 맛이 깊다. 상큼한 산미와 달달함이 풍요롭게 혀를 적신다. 향기로움이 코를 채운다. 멋지다. 너무 차지 않게 마시면 더 깊은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다. 남해에서 발견한 진정한 보물이다. 달랑 6병만 사 온 것이 후회가 된다. 아잉거 맥주를 마시고 나니, 남해생탁이 더 초라해진다.
넷째 잔
시간이 지나니 남해생탁은 단맛이 강해진다. 탄산이 빠진 탓이다. 감칠맛 없는 화학적인 단맛이다. 묘한 것은 유통기한이 임박해서 마시는 막걸리인데도 산미가 없다. 이상하다. 멸균 막걸리가 아닌 생막걸리가 한 달이 지나도록 이토록 산미가 안 올라오다니. 묘할 뿐이다.
승발이의 맛 평가 : 첫맛은 달달하지만 세 모금 넘어가니 써진다. 어설픈 연예처럼. 3.0(5점 만점)
어울리는 맛과 멋 : 남해 마늘로 담근 마늘장아찌와 함께하면 안주의 강한 향과 맛 덕분에 막걸리의 단점이 상쇄될 수 있다. 혹시라도 남해에 간다면 막걸리도 좋지만, 독일빵집의 아잉거 맥주 한 병을 꼭 추천한다. 담백한 독일 빵과 함께 마시면 남해의 풍요로움을 맛으로도, 향으로도 만날 수 있다. Scorpions의 'Fly to the Rainbow'도 함께라면 완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