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과 아쉬움 사이, 우곡 생주(화성, 배혜정 도가)

보통 사람의 꿈을 먹고 사는 명품

‘명품은 중산층의 꿈을 먹고 산다’. 신문 칼럼인지, 책인지, 정확히 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문장만큼은 너무도 선명히 기억에 새겨져 있다. 방귀 꽤나 뀌시는 상류층이야 명품을 사고 싶으면 아무 때나 사면되지만, 보통 사람들은 아끼고 또 아껴도 막상 명품 앞에 서면 움츠리고, 주저하게 된다. ‘아니야’라고 돌아서고 싶어도, 매혹적인 심벌과 로고의 유혹에 또 꿈을 꾼다. ‘사야 돼 사고 말 거야’라고. 원하고 또 원하는 보통 사람들의 꿈이 모이고 모여 명품은 신화가 된다. 우스개 말로 명품 브랜드 샵에서 가격 물어보지 않고 바로 고르면 상위 1%, 백화점에서 가격 태그 보지 않고 옷을 사면 100억 대 자산가, 마트에서 할인 태그 보지 않고 물건을 카트에 집어넣으면 10억 대 은행 잔고라고 한다. 난 오늘도 할인 딱지와 유통기한을 번갈아 체크하며 꼼꼼한 장보기를 한다. 우곡생주는 그렇게 만난 막걸리다. 롯데마트에서 유통기한 하루 남았다고 50% 할인이란다. 이런 기가 막힌 찬스가 있다니. 무조건 구입이다.

알코올 : 10도

원재료 : 쌀, 물, 국, 효모, 젖산(산도조절제)


전통주로 유명한 배상면 주가의 배상면 회장의 생애 마지막 역작인 ‘우곡주’를 바탕으로 딸인 배혜정 대표가 만든 프리미엄 생탁주라고 한다. 직접 개발한 개량 누룩으로 담고, 원주에 물을 아주 조금만 더했다고 한다. 나름 스토리가 있는 배혜정 도가의 프리미엄급 막걸리다. 디자인도 훌륭하다. 뚜껑을 열어본다. 시큼한 향이 물씬 난다. 유통기한이 임박해서 발효가 촉진된 탓인지, 원 막걸리의 향인지는 확실치 않다. 분명한 것은 코를 자극하는 시큼함은 대부분 맛있는 막걸리로 이어진다는 거다.

첫 잔

갸우뚱. 향에 비해 맛의 시큼함은 적다. 산미가 상당히 약한 녀석이다. 부족한 산미를 부드러운 쓴맛이 대신하고 있다. 보드라운 질감이 녹진하게 입을 적시며 쌉쌀하게 넘어간다. 쓴맛이 입천정을 툭하니 건든 여운이 제법 길다. 10도의 존재감이다.

둘째 잔

유산균 같은 기분 좋게 시큼한 향은 다 어디로 갔을까. 쓴맛 후에 남는 단맛, 그리고 감칠맛까지 좋게 달려오는 술맛이 산미에서 실종된다. 입안을 채우는 바디감은 좋지만, 전체적 인상이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산미의 부재 때문이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뒷맛은 감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좋은 단맛의 결과이다.

신맛 타령 좀 그만하라고 할 수도 있다. 맞다. 툭하면 나는 신맛이 없네, 신맛이 과하네, 신맛 타령을 한다. 어쩔 수 없다. 막걸리의 대한 나의 철학은 신맛, 즉 산미를 기본 축이다. 그것이 막걸리라는 술의 심벌이자, 캐릭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명품은 각자의 심벌과 로고가 있다. 아무리 가죽이 좋고, 디자인이 좋아도 심벌과 로고가 빠진 명품은 상상하기 어렵다. 꿈을 꾸는 보통 사람에게는. 상위 1%의 초부자들은 이제 심벌이 없는 명품을 추구한다고 한다. 누구나가 알고 있는 명품에서 한 발 더 스텝을 나아간 것이다. ‘난 너희들과 달라. 그러니 제발 따라오지 좀 마’라고. 그렇다고 그들이 초이스 하는 심벌과 로고가 생략된 신흥 명품 브랜드에 캐릭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보통사람이 모를 뿐이지, 자신만의 개성, 디자인, 캐릭터를 제품 안에 반드시 녹여 놓고 있다. 막걸리의 심벌은 산미다. 숨어있던 드러나 있던, 산미의 개성이 확실해야 막걸리의 캐릭터가 확실해지고 급이 올라간다. 산미야 말로 진정한 발효의 맛이기 때문이다.

좋은 술은 맞다. 근데 신맛은 어디로 간걸까

셋째 잔

천천히 마시면, 고소한 뒷맛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음미하면 입 안에서 아주 미세하게 산미가 돌면서 뒤에 슬며시 연한 고소함을 남긴다. 이 녀석은 정통 막걸리의 걸쭉함이 아니라, 앙금을 거르지 않은 걸쭉한 청주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술의 풍미가 걸쭉함과 우윳빛 탁도를 제외하면 청주와 닿아있다. 혀를 거치지 않고 목젖으로 바로 넘기니 더욱 청주의 풍미가 강하다. 농밀한 앙금을 질감을 느끼지 않고 바로 목으로 넘기기에 느낄 수 있는 풍미다. 막걸리로서는 아쉽지만, 술로써는 세련된 녀석이다. 혹시나, 호가 ‘우곡’인 돌아가신 배상면 회장이 생전에 개발했다는 개량 누룩과 우곡주는 청주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닐까?


넷째 잔

꿀떡 삼켰을 때 더 매력적인 막걸리다. 물론 입장 차이는 있겠지만. 아주 미세한 산미가 등장하는 재미를 맛보려면 입에서 천천히 음미하는 게 좋지만, 보드라운 질감이 텁텁함으로 변하는 단점이 있다. 대신 벌컥, 꿀떡하고 목젖으로 털어내는 마시면, 걸쭉한 청주의 풍미를 경험할 수 있다. 막걸리로. 고소한 감칠맛은 참 좋은 이 녀석의 덕목이다.

노력은 충분히 느껴지는 맛이지만, 아쉽다. 산미는 어디로 실종한 걸까. 버린 걸까 사라진 걸까. 유통기한 막바지면 산미가 올라오기 마련인데, 이렇게까지 산미가 없다는 건 의문이다. 성분표의 젖산은 산미 증진이 아니라, 잡균 억제를 위한 첨가제일 것이다.

청주가 기대되는 우곡 생주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녀석은 잘 걸러서 청주로 마시는 것이 술로써는 훨씬 매력적일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배혜정 도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우곡 소주가 출시됐다.  인터넷 판매로 화제가 된 원소주에 자극받은 점도 있겠지만, 상당히 좋은 선택이라 생각된다. 청주의 맛이 물씬 느껴지는 우곡 생주는 증류를 했을 때 더 멋진 가치를 뽐낼 가능성이 높다. 전통 증류방식으로 소주를 뽑았다고 한다. 우곡 소주 한 잔 마셔봐야겠다. 이런. 소주는 유통기한이 길어서 할인할 가능성이 없는데. 이런이런.

승발이의 맛 평가 : 좋은 술이지만 명품이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프리미엄이라고 하기엔 아쉽다. 오히려 청주나 소주가 기대되는 막걸리. 4.0(5점 만점)

어울리는 맛과 멋 : 보쌈이 있다면 곰삭은 신김치나 묵은지와 짝을 맞추고,  육전이 있다면 간장 대 식초의 비율을 1:2 정도로 시큼한 초간장을 만들어 함께 하는 것이 좋다. 10도의 좋은 쌉쌀함이 기름진 안주와 어우러지고 부족한 산미가 신김치나 좋은 식초 맛으로 보강이 된다. 부드러운 질감의 목소리에 톡 쏘는 산미를 숨겨 놓은 명품 가수 샤데이의 ‘Smooth Operater’는 탁월한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