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난한, 느린마을 막걸리 한번더(포천, 배상면주가)

‘느린마을 막걸리는 감미료 없이 오직 쌀, 누룩, 물만으로 빚습니다’

감미료 없이 달달한 막걸리를 뽑아내던 ‘느린마을 막걸리’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출시됐다. ‘느린마을 막걸리 한번더’.

빨간색 병 이미지로 기존 느린마을 막걸리와 차별화를 시도했고, 12도라는 높은 도수로 프리미엄 급 막걸리를 구현했다. ‘느린마을 막걸리에 한번 더 덧술해 빚은 진한 막걸리’라는 홍보 문구를 병에 새기고 있다. 주모(밑술)에 세 번 덧술을 한 사양주다. 삼양주보다 쌀을 한번 더 투입했으니 가격이 상승했다. 9,500 원(이마트 가격)이다.

느린마을 막걸리의 업그레이드 버전

알코올 : 12도

원재료 : 정제수, 쌀, 국, 조효소제, 활성건조효모

첫 잔

해창막걸리다. 해창 막걸리가 떠오른다. 농후한 단맛에 실린 12도의 쌉싸래한 술맛이 기분 좋게 목을 타 넘는다. 산미가 약하지만 유려한 단맛이 아주 좋게 입을 적신다. 12도의 강한 술맛이 단맛을 받쳐주기 때문에 가능한 맛이다. 해창의 맛에서 산미가 조금 줄은 정도의 맛을 담고 있다.

이 녀석 입장에서 기분 나쁠 일이지만, 해창과 비교를 당할 수밖에 없다. 우선 12도라는 막걸리 기준, 높은 도수가 그렇다. 6도에 맞춰져 있던 막걸리 도수를 6도, 9도, 12도로 세분화하여 출시한 선도자가 해창 막걸리다. 특히 12도라는 높은 도수는 술꾼들에겐 유쾌한 쿠데타였다. 도수를 높이기 위해 투여된 많은 쌀이 단맛도 상승시켜 달콤 쌉싸름한 술맛은 12도 막걸리의 상징이 되었다. 느린마을 막걸리 한번더는 해창 막걸리 특유의 달콤 쌉싸름한 술맛을 많이 닮아있다. 혀에 닿는 질감도 유사하여 해창의 그늘에서 이 녀석이 온전히 벗어날 수 있을지 첫 잔에서는 의문이다.

해남 해창 막걸리. 앙금의 양이 압도적이다

둘째 잔

잔탄산이 제법 강하게 혀를 놀린다. 타다닥 튀기고 지나간 자리에 좋은 단맛과 쌉싸래한 맛이 찾아온다. 사양주 막걸리로는 걸쭉하지 않아 비교적 맑게 마실 수 있는 녀석이다. 해창과의 가장 큰 차이중 하나다. 12도의 위력이 서서히 찾아온다. 속을 타고 넘어와 얼굴을 붉게 물들인다. 술을 식히니 단맛과 어깨동무를 한 쓴맛이 느껴진다. 전면에 등장한 히든카드 같은 맛이다.

해창막걸리를 지우고 생각하면 상당히 좋은 질감의 맛을 만들어 낸 술이다. 막걸리 입문자가 마시면 매우 특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웬만한 막걸리에서 이 정도의 농후한 질감과 질 좋은 단맛을 뽑아낸 녀석을 찾긴 힘들다. 특히 저가 막걸리 라인에서는. 괜찮은 막걸리임에는 분명하지만, 막걸리 좀 마셨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해창의 맛을 지울 수 있을까. 난 아니다. 분명 해창과의 차별점도 존재한다. 산미다. 이 녀석의 단점이다.

셋째 잔

산미가 약하다. 아니, 산미가 거의 없다. 12도의 막걸리는 도수가 높기 때문에 쓴맛이 우선될 수 있다. 하지만 마실수록 쓴맛이 강해지는 건 산미의 부족함 때문이다. 단맛에 적응해가는 혀를 산미가 자극하면서 미각의 균형을 유지시켜줘야 하는데, 산미가 부족하다 보니 맛의 쏠림 현상이 나온다. 물론 좋은 맛에서의 미세한 차이다. 그리고 특별한 개성은 미세한 차이에서 나온다. 느리마을 막걸리 한번더는 산미가 빠진 단맛으로 인해 입체적인 술맛의 구성이 약해졌다. 섬세하지만 예리하고, 작지만 특출 난 무엇. ‘Something New’를 술에 녹여내지 못했다. 차이를 만들어내는 개성을 빚어내지 못했다. 산미가 차이를 만들어내는 개성은 아니지만, 달고 부드러운 질감만으로는 나만의 캐릭터를 구축할 수 없다. 그래서 계속 해창막걸리를 떠올리게 한다. 산미와 단맛의 조화로운 구성력과 맛깔난 쓴맛을 가진 해창의 개성 있는 캐릭터의 범주안으로, 느린마을 막걸리가 흡수되어 버린 탓이다.

넷째 잔

앙금이 섞여 첫 잔 보다 걸쭉해진다. 그래도 좋은 맛이다. 단맛과 함께 걷고 있는 쓴맛도 여전하고, 탄산은 더 차분해졌다. 목을 타고 넘어가며 속을 달구는 스피드가 늘었다. 입에서는 빨리 사라진다. 단선적이다. 깊게 느껴지는 여운은 없다. 유려한 단맛과 쓴맛이 혀를 적시고, 빠르게 사라진다. 걸쭉하지 않은 비교적 맑은 질감 때문일지 모르겠지만, 뭔가 아쉽다. 도시 정서로는 깔끔하게 정리되는 세련된 맛, 시골 정서로는 정을 주지 않는 깍쟁이 같은 맛이랄까.

‘잘 익은 과일향을 듬뿍 머금은 묵직하지만 부드러운 질감의 감칠맛이 입안 가득 펼쳐집니다’ 라는 이 녀석의 홍보 문안에 특별한 이견은 없지만, 적극적인 동의도 갖기는 힘들다. 깔끔함, 좋은 단맛과 12도의 중량감 모두 ‘무난하게’ 담겨있다. 괜찮은 술임은 확실하다. 다만. 배상면 주가라는 이름값과 9500원이라는 돈값을 생각한다면 ‘무난함’으로 정리되는 괜찮음은 아쉬움과 같은 값일 것이다.

승발이의 맛 평가 : 잘생겼지만 멋지진 않은 녀석. 꽤 괜찮은 막걸리기에 아쉬움이 더 크다. 해창 막걸리의 그늘이 너무 크다. 4.2점(5점 만점)

어울리는 맛과 멋 : 부드럽고 고운 질감을 극대화하려면 고소한 육전이 좋다. 편안한 맛이 될 것이다. 단점을 보완한 안주로는 산미가 좋은 회무침을 추천한다. 가능하다면 달달한 기성 초고추장 범벅인 회무침 말고, 산미와 매운맛이 예리하게 살아있는 대구식 회무침을 강추한다. 입안에서 탄탄한 맛의 구성을 조합할 수 있다. 늦가을이고 하니 Dan Hill의 ‘Sometimes When We Touch’를 더해보자. 무르익은 한 잔의 완성이다.


그리고..

더 이상은, 더 이상은 아픈 상처가 세상 어디에서도 생기지 않기를, 하룻밤의 악몽 속에 사그라진 당신들의 아름다운 영혼이 저 너머에서는 언제나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천국의 새가 되어 못다 한 꿈을 마음껏 노래할 수 있기를 정성을 다하며 바라고 또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