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구나, 금정산성 막걸리(부산, 금정산성 토산주)

전국구 3 대장 막걸리가 있다. 물론 내가 정한 3 대장이다. 해남의 해창막걸리, 정읍의 송명섭 막걸리, 그리고 부산의 금정산성 막걸리다. 종종 술자리에서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추천하는 막걸리다. 막걸리의 좌파를 마시고 싶으면 송명섭을, 우파를 마시고 싶으면 해창, 중도를 마시고 싶으면 금정산성을 선택하라고. 그만큼 막걸리의 맛을 고루 품고 있는 술이다. 직접 누룩을 만들어 술을 빚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민속주 1호 막걸리

알코올 : 8도

원재료 : 백미(국산), 밀누룩(국산), 정제수, 아스파탐


첫 잔

시큼하다. 아주 좋은 산미가 입 안을 가득 채운다. 막걸리는 이런 산미가 있어야 한다고 시위하는 것 같다. 요즘 막걸리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강한 산미에서 남성미가 물씬 풍긴다. 시큼함 뒤에 숨어있는 단맛이 선명하다. 숨어있는 단맛이 선명하긴 힘든데, 이 녀석은 갖고 있다. 거친 외모 뒤에 다정한 숨결을 품고 있는 사나이의 멋이 느껴진다. 향으로 넘어오는 시큼함도 좋다. 걸쭉하지만 맑은 맛에 녹아있는 산미는 저가 막걸리 중 단연 압권이다. 민속주 1호라는 마케팅이 어색하지 않다.

금정산성 막걸리를 처음 만난 곳은 부산의 노포 식당이다. 60여 년 전통의 해물 부침과 함께한 녀석은 참 좋았다. 맑은 산미가 기름진 안주가 만드는 맛의 앙상블이 멋졌다. 과하지 않은 산미가 단맛을 먼발치에서 앞서 혀를 적셨다. 개운했다. 명성에 비해서 개성이 좀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식당 가격 3,500 원으로 이 이 정도면 나무랄 데 없다고 생각했다. [금정산성 막걸리 순]이었다. 6도짜리.

지금까지 만난 금정산성 막걸리는 3종류가 있다. [금정산성 막걸리-8도], [금정산성 막걸리 순-6도], [금정산 누룩막걸리-6도]다. [금정산성 막걸리]에 물을 더 넣어 6도로 도수를 낮춘 것이 [금정산성 막걸리 순]이고, [금정산 누룩막걸리]는 금정산성 유가네 누룩으로 이천에 있는 종천 주조장에서 만드는 막걸리다. 당연히 세 개의 맛은 모두 다르다. [금정산선 막걸리 순]에서 가지고 있던 아쉬움을 오리지날 [금정산성 막걸리]는 채워주고 있다. 이천에서 나온 [금정산 누룩막걸리]는 부산의 것과는 다른 맛의 맥락이 있다. 부산의 것은 산미를 앞세우고, 이천의 것은 단맛이 우선한다.

술 빚기의 핵심은 누룩이다. 직접 띄운 누룩으로 인해 깊고 다양한 술맛이 나오게 된다. 빵을 반죽할 때 어떤 효모종을 넣으냐에 따라, 찌개를 끓일 때 어떤 소금을 넣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듯이 누룩이 그러하다. 그 누룩을 부산의 주조장에서 사와서 빚은 술이 이천에서 만든 [금정산 누룩막걸리]다. 제품명을 ‘금정산 누룩’이라 할 만큼 금정산성 막걸리의 누룩은 힘이 있다.

금정산성 유가네 누룩

둘째 잔

금정산성 막걸리는 누룩으로 유명한 술이다. 워낙 스토리가 유명한 술이기도 하다. 그래서 편견을 가지고 마실 수 있는 술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좋아했다는 사실이 맛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민속주 1호도 술맛의 필수조건은 아니다. 단지 하나. 나에게 관심을 끌고, 선입견을 만드는 스토리는 500여 년을 이어온 전통 누룩으로 술을 빚는다는 점이다. 이 녀석은 산미 안에 감칠맛을 품고 있다. 시큼한 맛 안에 단맛도 품고, 감칠맛도 품고, 쓴 맛도 품고 있다. 산미가 입 안에서 터지며 다채로운 끝 맛을 남겨 놓는다. 발효 기술이 좋아서인지 누룩향이 강하지는 않다. 맛의 균형감을 신맛으로 잡은 건 발효력에 대한 자신감이다. 물론 감미료가 들어가 있지만, 도드라지진 않다. 음미할수록 상큼한 요구르트의 뒷맛이 남는다. 좋은 산미와 단맛이 어우러질 때 느낄 수 있는 뒷맛이다. 걸쭉함에 비해 목 넘김이 좋다. 맑은 질감은 아니지만, 쉽게 넘어가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기특한 녀석이다.

금정산성 누룩은 족타로 모습을 잡는다

전통 누룩을 빚는 것은 정성이고, 띄우는 일은 도박이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밀누룩의 경우 좋은 밀을 통째로 빻아 끓여서 식힌 물에 반죽해야 한다. 끓이지 않으면 잡균이 빻은 밀에 섞여 누룩을 망칠 수 있다. 지역별로 성형 방법은 두껍고 좁게, 얇고 넓게 하는 등 차이가 있지만 잘 치대서 공기를 빼고 ‘적당한’ 수분량을 남겨 놓는 게 중요하다. 부산 산성 누룩의 경우 천을 놓고 발로 넓적하게 꾹꾹 밟는 수작업으로 누룩을 만든다. 제법 힘든 작업이다. 이 작업을 소홀히 하면 좋은 곰팡이가 자리잡지 못해 좋은 누룩이 나오지 않는다. 정성이 필요하다. 다 빚은 누룩을 완성시키는 일은 자연의 몫이다. 습도가 일정하고 환기가 가능한 공간에 빚은 누룩을 둔다. 그게 다다. 좋은 곰팡이가 누룩에 와서 뿌리내리도록 하는 일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대기 중의 야생 효모가 자리 잡을 수 있는 환경만 만들 뿐 나머지는 자연이 할 일이다. 전통 누룩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도박에서 좋은 패를 기다리듯 좋은 곰팡이와 야생 효모를 기다리는 것이 전통 누룩을 띄우는 일이다.

화투패가 늘 좋게만 들어올 수 없듯이, 공기 중 야생 효모 중 술 발효에 좋은 녀석들만 늘 누룩에 와서 정착할 수는 없다. 옛 주조인들은 좋은 화투패가 들어올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누룩 띄우는 공간을 함부로 옮기지 않고, 청소도 하지 않았다. 환기를 통해 습도 조절에만 신경 쓰면서, 좋은 패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전통 누룩으로 빚은 술은 그래서 깊고 복합적인 맛을 낸다.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은 다양한 종의 효모균이 공존하는 누룩이 술 발효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셋째 잔

신맛에 누룩향도 숨어있었다. 마실 때 깊은숨을 더하니 유명한 금정산성 누룩의 향이 느껴진다. 금정산성의 여러 미덕 중 하나는 8도라는 점이다. 농후한 질감은 일반 막걸리보다 높은 도수를 품었음을 의미한다. 좋은 산미가 워낙 개성이 강해, 쓴맛이 느껴지진 않지만 은근히 올라오는 술기운은 다른 막걸리보다 강렬하다. 물을 덜 섞어 도수를 높이고 걸쭉함을 얻었지만, 감미료의 잔 맛이 없기 때문에 맑게 넘어간다. 맑은 농밀함을 갖은 막걸리는 드물다. 이 녀석이 전국구의 명성을 얻은 건 이유가 있다.

서양인들에게 누룩은 미스터리한 기적과도 같은 존재였다. 대부분의 서양 술들은 나무 열매나 과일을 원재료로 한다. 이유는 열매나 과일 안에 이미 당이 존재하기 때문에 효모균만 있으면 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걸리의 주재료인 쌀에는 당이 없고 전분이 있다. 전분이 효소를 만나야 당이 생성되고, 술 발효가 가능해진다. 누룩은 전분을 당으로 만드는 효소와 당을 알코올로 만드는 효모를 모두 가지고 있다. 술 발효의 멀티플레이어다. 술이 될 수 있는 당을 찾아야 하고, 발효를 시키는 효모를 찾아야 했던 서구인의 눈에, 쌀과 물만 있으면 술을 만들어 내는 누룩은 신비한 존재였다.

신비한 누룩을 대중화시킨 건 일본의 개량 누룩, 국이었다. 고두밥에 단일균을 뿌려 배양한 일본식 개량누룩인 입국은, 만들기도 편하고 단일균으로 배양하기 때문에 술을 빚으면 맛이 일정하다는 장점이 있다. 당화력도 전통 누룩의 약 4배 정도 강하기 때문에, 조금만 넣어도 쉽게 전분을 당으로 만들 수 있다. 대량생산에 용이한 누룩을 만든 것이다. 대신 깊고 다양한 맛의 세계가 얇고 평이해진다. 금정산성 막걸리는 직접 띄운 전통 누룩을 사용한다.

깊고 진한 맛

넷째 잔

걸쭉한 유막을 뚫고 기포가 올라온다. 아래 깔려있던 앙금이 잔으로 모두 나와, 마치 미숫가루를 마시는 것 같다. 그만큼 구수하다. 이 녀석은 천천히 숨을 쉬며 마시는 것이 좋다. 500년 역사를 이어온 누룩의 향을 함께해야 진정 금정산성을 마시는 것이다. 어라. 묘한 비린맛이 올라온다. 합이 안 맞는 안주가 있다. 콩나물이다. 막걸리를 마시며 이런 비린 맛을 느끼것은 처음이다. 막걸리의 미덕 중 하나는 안주 범용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런저런 안주와도 무난히 어울릴 수 있는 넉넉함이 있다. 반면 와인은 안주와의 페어링에 굉장히 예민한 녀석이다. 특히 간장, 식초 등 발효된 양념이나 어패류와의 조합이 상당히 어렵다. 회를 간장에 찍어서 와인과 마시면 비린맛이 강하게 올라온다. 마른오징어를 안주삼아 와인을 마시는 건 무모한 도전이다. 와인 특유의 유기산과 풍부한 아로마가 이들 안주의 특성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막걸리가 안주 범용성이 넓은 이유는 아미노산에 있다. 감칠맛의 주성분인 아미노산이 풍부한 막걸리는 개성 강한 안주의 특성을 감칠맛으로 ‘감추어’ 품어준다. 금정산성 막걸리가 콩나물과 삐걱되는 이유는 콩나물 특유의 비린맛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와인에서 가능하다고 알려진 것을 막걸리에서 경험한다. 강한 산미 덕분에 가능한 경험이다.

몇몇 술꾼들은 금정산성 막걸리의 신맛이 너무 강하다고 평가한다. 단맛이 먼저 치고 나오는 대부분의 막걸리와 달리 이 녀석은 산미로 강하게 입안을 점령한다. 당혹스러울 수 있다. 강한 산미가 이 녀석의 시그니처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 당혹스러움이 즐겁지만.

금정산성 막걸리의 산미가 강한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된다. 하나는 산성 막걸리의 전통 누룩이다. 전통 누룩의 야생 효모균 중에 젖산균이 많으면 발효과정에서 신맛이 높아질 수 있다. 산미를 높이는 젖산균은 막걸리의 잡균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이 녀석의 걸쭉하면서도 맑은 모순되는 맛은 젖산균이 잡맛을 제어한 결과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주조장의 철학이다. 맛의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각 주조장은 발효 숙성 기간을 조절한다. 금성산성 토산주 주조장은 산미에 맛의 기준을 두었을 것이다. 전통의 맛이 산미에 있다는 주조장 역사와 철학의 결과다. 술맛은 그 고장의 음식과 교류를 하며 자신을 만들어 간다. 부산은 양념이 센 음식이 많다. 강한 양념의 맛은 달고 순한 막걸리와 합을 맞추기엔 그 기세가 너무 강하다. 화끈하게 달아오른 입을 정리하는 데는 산미가 어울린다. 금정산성 막걸리의 산미는 기 센 부산의 음식과의 교류를 통해 발전할 결과일 수 있다.

진화하는 맛의 세계에서 전통이 절대선은 아니다. 하지만 맛이 유사해지는 평균율의 시대에, 자기만의 개성을 만들어내는 전통은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이다. 넓적한 전통 누룩에서 시작하는 이 녀석의 술맛은, 시큼한 그 맛은, 개성 가득한 맛이다.


승발이의 맛 평가 : 마시면 싫든 좋든 그 맛을 기억할 수 있는 자기 색을 가진 막걸리. 4.8점(5점 만점)

어울리는 맛과 멋 : 콩나물처럼 특유의 비린맛을 가진 안주와 합은 좋지 않다. 기름진 안주는 당연히 좋고, 수육 같은 담백한 안주와 함께 하기를 권한다. 담백한 속에 숨은 감칠맛은 막걸리의 산미가 끌어내 줄 것이다. 최백호-에코브릿지의 ‘부산에 가면’을 함께하자. ‘낭만적’인 새로운 맛을 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