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갈색의 옛날 막걸리 古(고)

육회는 최고의 안주다. 막걸리는 물론 맥주와도 좋고, 소주와도 좋다. 위스키, 와인과도 좋다. 빠알간 색의 날고기가  참기름 향을 풍기며 식욕을 자극한다. 반지르르한 육질에 조명이라도 받으면, 육회는 육감적이다. 안주로 육회는 본능적 매력을 지니고 있다.

광장시장 육회골목

고추장 양념에 생고기를 무쳐내는 함평의 화랑식당 육회도 좋고, 간장 양념을 하는 대구 장원식당의 육회도 좋다. 소금 간으로 양념하는 서울 우래옥도 좋고, 푸짐한 양에 마늘 양념이 특별한 백제식육식당도 맛있다. 지역별로 다른 육회 맛을 즐기는 것은 행복한 여행법 중 하나다. 특히 광장시장은 전국 유일의 육회촌을 이루고 있는 장소다. 자매집을 필두로 수많은 식당이 육회를 버무린다. 그리고 광장시장 스타일의 육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전국 어느 곳에서도 맛보지 못한 광장시장만의 육회. 국순당의 ‘옛날 막걸리 고’도 광장시장 육회 스타일을 닮아 있다.

옛날 막걸리 古


옛날 막걸리 고(국순당, 강원도 횡성)

알코올 : 7.8%

원재료 : 정제수 , 쌀(국산), 국(밀), 기타과당, 효모

전통주의 큰 형님 같은 국순당에서 만드는 막걸리다. 나름 정성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옛날 방식 그대로 막걸리 맛을 복원한 1960년대 전통 쌀막걸리임을 홍보한다. 無아스파탐에 전통 누룩 3배라고 한다. 색이 황톳빛의 짙은 갈색을 띠고 있다. 다른 막걸리와 룩이 확연히 다르다.

첫 잔

탄산기가 없다. 농도가 제법 짙을 듯한데 의외로 맑은 맛이다. 달리 표현하면 약간 밍밍하고 밋밋한 맛이다. 누룩향이 살짝 스치듯 지나간 뒤 강한 뒷맛이 남는다. 갸우뚱? 이게 뭔 맛이지? 짭짭 대며 입에 남아있는 막걸리 맛을 되새겨본다. 이런! 물엿 맛이 난다.

둘째 잔

목 넘김은 좋다. 그런데 속에서 받는 느낌이 별로다. 니길하다고 해야 하나? 약간 느끼하다고 해야 하나? 7.8도라는 막걸리에서는 높은 도수 때문인지, 둘째 잔에 오니 확연히 느껴지는 물엿 맛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매우 단 사탕을 여러 알 먹었을 때처럼 단맛의 느끼함이 올라오는 듯하다. 근데 왜 이 녀석은 짙은 갈색일까? 이 색 때문에도 물엿 맛을 더 강하게 생각하게 된다.

광장시장 육회는 유난히 반짝이는 선홍빛을 띠고 있다. 선명한 육색에 윤기가 좔좔 흐른다. 첫맛이 강렬하다. 살짝 간기가 느껴지면서 고소함이 입안을 가득 메운다. 광장시장 육회는 아주 가늘고 작게 채 썰어져 있어, 씹기에 부담이 없다. 의외의 뒷맛이 혀를 자극한다. 매운맛이다. 심하게 고소한가 싶은 생각을 매운맛이 지워준다. 여기까지 좋다. 젓가락질을 거듭할수록 광장시장 육회는 부담스러워진다.

광장시장 육회

우선 기름지다. 육회 고기 자체의 기름짐이 아닌, 양념의 기름짐이 과하다. 고소한 맛과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 고기에 덧칠을 너무 많이 했다. 그리고 문제의 매운맛이 있다. 기름 양념을 더할 때 고추기름이나 기타 매운맛을 내는 양념을 더했다. 그래서 첫맛은 강렬하지만 그 이후는 부담스럽다. 육회를 씹을수록 혀는 알싸해지고 속은 기름져 니글거린다. 생고기 특유의 은은한 감칠맛을 느낄 수 없다. 광장시장에서, 나는, 육회 본연의 맛을 찾기 어렵다.

셋째 잔

밑에 깔려 있던 앙금이 섞여 농도가 짙어지니 누룩향도 짙어진다. 막걸리 색이 딱 커피 우유다. 농도가 짙어진 만큼 물엿 단맛도 강해졌다. 이제는 궁금해진다. 막걸리에서 물엿 단맛은 첫 경험이다. 無아스파탐에 전통 누룩 3배라고 했는데, 그럼 누룩 3배가 물엿 맛의 이유일까?

누룩은 발효제다. 누룩 안의 효소가 전분을 당화 시키면, 역시 누룩 안 효모가 당을 먹고 알코올을 생성한다. 즉, 누룩은 단맛을 먹이로 먹기 때문에 전통 누룩을 3배 넣었다고 단맛이 증가할 수는 없다. 물엿 맛은 더욱 아니다. 그럼 뭘까? 전통 누룩을 3배나 넣었는데도 발효를 촉진시키기 위해 물엿을 첨가했다? 잠깐 성분표를 다시 본다.

‘원료명 : 정제수, 쌀, 국, 기타과당, 효모’…기타과당이라…그렇구나!! 無아스파탐이니 아스파탐은 넣지 않았지만, 기타과당을 넣었구나. 즉, 단맛을 위해 기타과당을 첨가한 것이다. 결국 이 녀석은 단맛을 위해 ‘물엿’ 혹은 ‘물엿 유사 성분’을 넣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無아스파탐은 맞지만 천연 단맛은 아니다. 더욱이 실망스러운 건 단맛을 위한 첨가물이 막걸리와 어우러지지 못하고, 맛을 가리고 있다. 엿 맛으로.

넷째 잔

입천장을 덮는 물엿 단맛이 여전하다. 병 바닥에 깔렸던 앙금 때문에 농도는 더욱 짙어져 알코올 기가 있는 미숫가루를 먹는 것 같다. 옛날 막걸리 고는 심플한 성분표를 가진 장점이 있는 막걸리다. 최대한 기본에 충실히 만들려 노력한 흔적이 있다. 하지만, 무아스파탐으로 차별화를 시도하려다, 본질을 흐려버렸다. 막걸리 발효 본연의 맛을 담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기타과당의 첨가로 물엿 맛이 막걸리 맛을 지배하고 있다.

광장시장 육회도 바쁜 사람들의 입맛을 빠르게 사로잡으려 과한 양념을 덧대 버렸다. 질 좋은 한우를 재료로 쓰고도 과한 기름장과 매운맛을 숨겨 놓았다. 겉보기에는 아무 양념도 없는 양 육회를 맑게 포장했지만, 맛은 숨길 수 없다. 아니, 육회 본연의 맛을 숨겨 버리고, 기름지고 매콤한 양념 맛이 육회를 지배하고 있다.

광장시장 육회도, 옛날 막걸리 古(고)도 괜찮은 친구들이다. 단지, 튀어 보이고 싶은 선택이 본래 가지고 있던 장점을 가려버린 것이다. 솔직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단순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옛날 막걸리 고에 쓰인 또 하나의 문구도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전통 누룩 3배’. 누룩은 물과 쌀의 비율에 맞추어 넣는 것이 정석이다. 많이 넣으면 발효 촉진이 빠를 수는 있지만, 그것이 맛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한 통 넣어도 될 불스 원샷을 세 통 넣는다고 차 성능이 대폭 개선되지는 않는 것처럼.


승발이의 맛 평가 : 아쉬움이 많이 남는 막걸리. 3점

어울리는 멋과 맛 : 옛날 막걸리 고와는 산미나 매운맛이 강한 안주가 좋다. 열무김치도 좋고, 고추지도 좋다. 대구식 회무침처럼 단맛이 적고 산미가 강한 회무침과 먹어도 좋다. 혹시 집에 많이 시어져 처치 곤란한 갓김치나 총각김치가 있다면, 들기름에 지져서 안주로 삼으면 끝내준다.  반주 음악으로는 Dire Strates ‘Sultans of Swing’처럼 깔끔 담백한 곡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