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탁, 원탁, 그리고 진성 2막(포천, 이동주조1957)

트롯 가수 진성을 모델로 한 막걸리다. 포천 지역 주조장의 대표 격인 이동주조 1957 주식회사에서 출시했다. 무명가수에서 트롯 스타로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가수 진성이 마케팅 포인트다. 그럼 맛의 포인트는 무엇일까?

알코올 : 6도

원재료 : 정제수, 쌀, 입국, 아스파탐, 아세설팜칼륨, 정제효소제, 효모, 젖산

첫 잔

이런. 장수 막걸리다. 딱 그 맛이다. 단맛을 기본으로 산미가 약간 도는 규격화된 술맛. 딱히 개성을 찾을 수 없는 평탄한 맛. 장수 막걸리와 너무 맛이 비슷하다. 막걸리는 숙성에 따라 극적인 맛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 하루 냉장고에서 묵혀 보기로 한다.

둘째 잔

하루 냉장고에서 묵혔다. 극적인 변화는 없다. 막걸리가 얌전해진 느낌이다. 그래도 탄산이 세다. 탄산이 단맛을 가려주고 있다. 술 온도가 높아지고, 탄산이 적어지면 단맛이 더 전면에 드러날 것이다. 장수 막걸리의 특징이기도 하다. 포천은 유명 막걸리의 고장 중 하나로 술꾼들 사이에 회자되는 지역이다. 일설에 의하면 군부대가 많은 포천의 제대 군인들이 포천 막걸리 맛을 잊지 못하고 다시 찾기 시작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고 한다. 일종의 입소문 마케팅에 의해 전국구가 된 막걸리 지역이다.

생각해보면 포천 막걸리는 30년 전 나의 대학 생활 때도 막걸리의 대명사로 불리었다. 무명 막걸리라 800원이면 포천 막걸리는 1000원이었다. 1리터 얇은 플라스틱 병에 가득 들어있는 포천 막걸리는 자잘한 탄산의 깊은 질감이 좋은 술이었다. 물론 그 막걸리가 진짜 포천의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허연 반투명 플라스틱 병에 푸른색 비닐 캡이 씨워져 있을 뿐 상표도 재료 명도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주인아주머니가 포천 막걸리라면 포천 막걸리였다. 시큼하면서도 달달한 맛. 트림과 함께 올라오는 불콰한 술기운. 스스로도 이해 못 할 말을 끊임없이 내깔리며 울그락 불그락하는 술주정. “이모 한 통 더요. 깍두기도 좀 더 주고요”. 과음 후 여지없이 찾아오는 머리를 쪼갤듯한 숙취까지. 포천 막걸리는 좋든 싫든 기억 속에, 몸속에, 혈관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추억의 맛을 이기는 현실의 맛은 없다지만, 포천의 막걸리라는 기대감 때문일까. 이동 진성 2막은 실망감이 크다.

셋째 잔

탄산이 강해 목 넘김이 부드럽지 않다. 목을 툭하니 치고 지나간다. 술이 식어 단맛이 높아지는 만큼 산미도 상승했다. 연한 요구르트 맛이 난다. 식은 술맛을 비교하면 장수보다는 덜 달다. 그렇다고 큰 개성을 보여주는 녀석은 아니다. 평범하다. 그냥저냥 마실 수 있는 정도의 맛이다.

2020년 화제의 막걸리 

진성 2막을 마시면 경북 예천의 영탁 생막걸리가 연상된다. 영탁이라는 떠오르는 트롯 스타를 전면에 내세운 마케팅으로, 경북 예천의 막걸리가 2020년 단숨에 전국구 막걸리가 되었다. 당시에 필자도 영탁 생막걸리를 사기 위해 보름 정도 마트를 들락날락해야만 했다. 이후 벌어진 상표권 분쟁은 생략하고. 2020년 영탁 생막걸리의 마케팅 전략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막걸리 한잔’이라는 노래로 중장년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신흥 트롯 스타와 막걸리의 만남은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히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마케팅 조합이었다. 스타를 위한 과감한 소비를 두려워하지 않는 중장년 팬덤의 영탁 생막걸리 사재기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필자의 예상을 뛰어넘은 것은 영탁 생막걸리의 맛이었다. 맑고 산미가 강한 영탁 생막걸리는 의외로 달지가 않다. 단맛을 산미가 제어하면서, 적당한 쌉싸래함이 부담 없이 목을 타고 넘어온다. 당시 수도권에서 접한 새로운 막걸리 중에서 가장 단맛이 적은 녀석이었다. 영탁을 모델로 선정한 이유를 막걸리 맛으로도 잘 이어가고 있었다. 영탁이 모델이면 젊은 층보다 중장년 이상을 타깃으로 한 상품일 것이다. 그렇다면 막걸리 맛도 단맛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 영탁 생막걸리는 ‘영탁’이라는 모델과 술맛의 균형을 맞추는 데 성공했다. 맛에서 주조장의 뚝심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촌스러운 맛은 아니다. 스타 마케팅에만 의존하지 않은 괜찮은 막걸리다.

탁재훈이 모델인 원탁막걸리

비슷한 시기에 탁재훈을 모델로 쓴 청주 고려주조의 원탁 생막걸리도 출시가 됐다. 영탁 생막걸리를 벤치마킹한 제품이다. 현재 홈페이지에 탁재훈이 나오는 홍보 동영상과 제품 이미지는 있지만, 수도권 내 마트에서 찾아볼 수는 없다(영탁 생막걸리는 모델을 교체해서 출시되고 있다). 원탁 생막걸리는 표지모델과 술맛에서 어떤 연관성을 찾기가 힘들다. 술맛은 일단 달다. 상당히 달다. 청주 고려주조에서 나온 대표 제품 중 하나인 속리산 찹쌀 동동주는 그리 달지 않았다. 원탁은 도수를 낮추고 단맛을 강화한 지평 생막걸리의 맛을 기준으로 잡은 듯하다. 브랜드는 영탁을, 맛은 지평을 참고했지만, 결과는 모델과 술맛이 전혀 시너지를 내고 있지 않다. 탁재훈 특유의 톡톡 튀는 재치가 술맛에 반영되어 있지 않다. 그저 달달하기만 하다. 다시 찾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주변에서 찾을 수 없는 막걸리가 되었다. 이동 진성 2막은? 알 수 없다.


넷째 잔

탄산의 유지력이 상당히 좋다. 탄산을 술맛의 포인트로 잡은 듯하다. ‘청량감 있게 한잔 마시고 인생의 2막을 시원하게 써보자’라는 콘셉트를 담으려 하지 않았을까. 마케팅 포인트야 어떻게 잡았던 술맛은 평범하다. 규격화되고 개성 없는 맛이다. 지평처럼 도수를 5도로 낮추던, 표문처럼 고급화된 레트로를 표방하던, 차별화된 한 칼이 있어야 하는데 진성이라는 모델만 보인다. 모델에 묻혀서 ‘포천 이동’이라는 지역의 스토리도 보이지 않는다.

시골빵집 촬영장소

‘시골 빵집’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속히 말하는 ‘안된’ 프로그램이다. 당시로는 기획도 트렌디하고, 섭외도 잘 되었다고 평가받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한날한시에 같이 첫방을 시작했던 타 채널의 ‘도시어부’를 TV에서 보고 있자면, 아직도 마음이 쓰리다. ‘안된’ 이유는 명확하다. 빵은 실종되고, 출연자는 안 보이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시골의 낭만이 어쩌고, 지역 사람들과의 관계가 저쩌고 하면서 뭘 하는지 모르겠는 프로그램이 되어 버렸다. 여유로운 시골의 정취를 억지로 쥐어짜는데 빠져서 ‘빵집’이 빵 만드는 흉내만 내고 있었다. 하루는 마을 할머니 한 분이 비닐봉지에 먹다 남은 빵을 싸오셨다. 전날 사가신 빵이었다.

“이거 한번 맛봐바”

“네?”

“어젠 맛이 제법 있더구먼, 하루 지나니까 빵맛이 시큼해”

갓 구운 빵은 무조건 맛있다. 따끈따끈한 기운에 묻혀있던 빵맛이 식으니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과발효된 반죽의 시큼한 맛이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연예인들이 빵을 만들어 판다고 하니, 지역 주민들의 관심이 얼마나 많았을까. 몇 개 만들지도 못하는 빵은 내놓자마자 완판이었다. 오로지 관심 값이었다. 정 많은 마을 분들은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보냈지만, 시청자는 냉정했다. 본질을 잊은, 흉내만 내는 프로그램은 ‘아웃’이었다.

영세한 막걸리 주조장의 과감한 스타 마케팅은 환영할 일이다. 다만 본질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스타로 인해 촉발된 관심이 소비자의 일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맛이 있어야 한다. 개성 있는 맛. 요즘 소주 업계의 화제인 박재범의 ‘원소주’의 성공은 많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인터넷 구입이 가능한 전통주 주조장을 선택한 영리한 방식 이전에 소주는 ‘증류주’라는 본질에 원소주는 충실했다. 이동 진성 2막은 ‘발효주’라는 본질에 충실하고 있을까?


승발이의 맛 평가 : 가수 진성과 포천이 갖고 있는 스토리가 맛과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평범하다. 3.5점(5점 만점)

어울리는 맛과 멋 : 기름진 안주와 합을 맞추는 게 좋다. 파전도 좋고, 치킨도 좋다. 평범한 만큼 어울리는 안주의 폭이 크다. 진성의 ‘보릿고개’ 들으며 흥을 맞추면 더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