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묘한 맛, 초가철원 생막걸리

철원에서 바라본 한탄강. 건너편은 연천이다

평소에 접하기 힘들면, 왠지 모를 묘한 기대감을 품게 된다. 나에게 철원이 그렇다. 군대를 철원 지역에서 한 사람이면, 고립에서 오는 국방색 추위에 대한 추억 때문이라도 기대감을 접었을 것이다. 하지만 군대도, 여행도 다녀온 적이 없는 나에게 철원은 가깝고도 먼 미지의 땅이었다. 그 땅에서 만난 초가철원 생막걸리는 나에게는 '미지'의 맛을 상상하게 했다. 군인, 철조망, 거친 산과 너른 평야. 거친 투박함으로 숙성된 맛이 내 혀를 자극하길 바랬다.  

초가철원 생막걸리(철원, 주식회사 초가)

알코올 : 6도

원재료 : 정제수, 팽화미(외국산), 철원 오대미, 국, 입국(쌀), 입국(밀), 이소말토올리고당, 구연산, 정제효소, 효모, 수크랄로스(감미료), 아스파탐

첫 잔

이걸 뭐라고 해야하나? 탄산과 첫 마심의 단맛은 장수 막걸리의 그것인데, 코에 도는 향기와 쌉싸래한 산미는 새롭다. 특히 술향은 평소에 느끼던 누룩향과는 묘한 차이가 있다. 익숙한 탄산과 단맛이 새로운 향기와 산미를 품고 입안을 적신다. 생경한 맛이다. 매운 간장치킨과 먹으니 익숙한 맛은 사라지고, 어디선가 맡아봤던 약냄새를 닮은 향기가 가장 크게 남는다. 이 향기를 닮은 약냄새는 무얼까?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둘째잔

호불호가 갈릴 막걸리다. 약맛이 나는 강한 누룩향이 특유의 꾸릿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약맛이 초가철원 생막걸리의 특징이라면 특징일 것이다. 처음 느꼈던 단맛도 약맛에 가려져서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지역 막걸리의 일반적 모습인 약한 단맛이 이 녀석에게도 보인다. 그건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하지만 향을 넘어 맛으로 까지 느껴지는 약맛은 기호에 따라 치명적 불호가 될 수도 있다.

맛이 복잡할 수록 뒷택이 긴 경우가 많다. 이 녀석의 원재료 및 함량 표기도 제법 길게 쓰여져 있다. 우선 감미료의 종류가 많다. 아마도 완전 발효에 가까운 정도로 술을 익히기 때문에 단맛이 없어 이렇게 다양한 감미료를 넣을 것이다. 특히 이 막걸리에서 눈이 가는 원재료는 '팽화미'다. 팽화미는 쉽게 말해 뻥 튀긴 쌀이다. 쌀을 고압에 튀겨낸 튀밥이 팽화미라고 생각하면 된다. 팽화미는 고압에 익혀낸 쌀이기 때문에 당화가 되기 쉽다. 그만큼 빨리 술이 만들어 진다는 의미다. 철원 오대미는 덧술을 할 때 첨가가 될것이다.

셋째 잔

맑다. 걸쭉함은 없다. 고압에 튀겨낸 팽화미의 가벼움이 술맛에 들어있다. 가볍고 맑은 막걸리다. 특유의 맛에 적응하면 넉넉히 마실 수 있을듯 하다. 질리지 않을 단맛에 술은 목젖을 부드럽게 넘어간다. 그렇다고 단맛이 아예 약하지는 않다. 가려져 있을 뿐이다. 누룩향에. 근데 그 향이 약맛을 품고 있다. 하..이거 참.

철원은 유동인구가 많을 수 밖에 없다. 수시로 이동하는 군인과 그 가족, 면회객들이 스치는 존재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 뜨내기 손님들은 타 지역과 다르다. 춥고 배고팠던 옛 군인들의 엄마, 아버지가 보통의 뜨내기 손님과 같을 수는 없다. 짧게 짤린 머리의 아들과 함께 하는 밥 한술의 마음은 애틋하다. 한술이라도 더 따뜻하게, 더 배부르게, 먹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평소보다 더 깊어지는 고장이 철원이다. 백골부대 부근 포항식당의 해물찌개가 그렇다. 냉동해물에, 시판 된장을 넣고 끓이는 평범한 찌개가, 깊고 맛있다. 마음을 담아 끓이는 맛이다. 함께하는 구운 김 한장을 곁들여 보면 안다. 평범한 속에 깃든 깊고 따스한 맛을. 막걸리도 그러했으면 했다.

넷째 잔

어째거나 단맛이 전면에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요 녀석은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이 약맛같은 쌉싸레한 묘한 맛이 막걸리 본연의 특징인지, 첨가된 감미료 배합의 특징인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사람에 따라 이 맛은 거슬릴 수 있다. 상당히. 굉장히.

철원의 야생적인 이미지가 담겨 있기를 막걸리에서 바랬었다. 뚝뚝함 속에 따스하고 깊은 맛이 담겨 있기를 바랬었다. 바램은 그저 바램이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막걸리다

승발이의 맛평가 : 숙성이 더 되면 묘한 약맛이 사라질지 모르겠지만, 시음한 상태의 맛은 3점.

어울리는 맛과 멋 : 포항식당의 해물된장찌개 처럼 향과 맛이 강한 국물요리와 합을 맞추면 어울릴 듯. 스태판 울프의 'Born To Be Wild'도 함께 들으면 좋다. 이어폰 말고, 스피커로. 그것도 멀리 떨어트려서 들으면 더 좋다. 거친 철원 평야를 넘어 들려오는 음악에 막걸리 잔을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