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양조장과 운산 생막걸리

“운산 막걸리가 참 맛있었는데. 지금은 좀 그랴”.

양조장 건너 작은 칼국수집 아주머니가 아쉬움에 말꼬리를 흐린다. 동네 어귀의 슈퍼 아주머니도 한 마디 보탠다. “요즘은 면천 막걸리를 더 찾더라고. 예전에는 운산이었는데”. 한 세대가 물러남은 한 세대가 밀고 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500원이면 해결되는 저가 막걸리 생태계에서 살아남는 힘은 버텨온 시간에서 나오지 않는다. 서산군의 작은 마을 운산면 100년 양조장은 지금 문이 닫혀있다.

2018년, 촬영 차 찾았던 운산 양조장은 신비로웠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먼지 속에 쿰쿰하고 시큼한 냄새가 술 취한 유령처럼 사방을 떠돌고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 우물은 말라버린 입을 가리고 있고, 종국실엔 짙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발효실엔 반 백이 족히 된 키 큰 항아리들이 입을 벌리고 도열해 있었고, 고두밥을 식히던 너른 평상엔  듬성듬성 놓인 햇살만이 술밥을 대신 식고 있었다. 그레타 가르보의 구겨진 흑백사진처럼 근대 양조장의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그 무엇 하나 제대로 남아있지 못한 오래된 양조장. 이곳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것은 술 빚는 어르신 뿐이었다.

“여기가 첫 직장이유. 여서 53년 동안 술을 배우고, 빚고 있네. 한 때는 꽤 괜찮았는데 지금은 나 혼자네 그려”

“사장님이시네요”

“아녀. 양조장 주인집은 서울에 있슈. 죄다 서울로 가고, 난 그냥 양조장 관리도 할 겸 술도 빚어 팔고 있는겨”


술이 약해 막걸리 한 잔만 드셔도 금방 취한다는 어르신은 한 때 이 양조장에서 소주도 제법 내려서 팔고, 막걸리는 없어서 못 팔았다며 쓸쓸히 웃는다. 뭔 일인지 모르겠지만 마당 우물이 마르면서 막걸리가 예전만큼 나가지 않는다며, 요즘에 맥주 먹지 누가 막걸리를 마시냐며 반문하는 어르신의 표정이 덤덤하다. 팽화미 자루를 뜯어 항아리에 담고 입국과 주모를 섞어 물을 맞추는 걸로 원주를 후딱 담그신다.

“요즘엔 술 담그기가 참 편해졌슈. 개량이 잘 되어 나와서, 그냥 양 맞춰 넣어주고, 직접 맹근 주모를 넣어주면 술이 잘 되어 “

“아… 그럼 이게 끝인가요”

“거진 끝났다고 봐야쥬. 이제 술 다 익으면 여기에 물 타고, 사카린 조금 넣어서 병에 담으면 그게 막걸리쥬”

실망스러웠다. 100년 된 양조장에 걸맞은 전통의 주조법을 펼치는 장인의 모습을 기대했었다. 누룩과 고두밥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섞어 독에 담는 노인의 모습을 그렸었다. 너무나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술 빚는 모습에 허탈했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이 양조장을 잘 관리해서, 전통 방식으로 술을 빚으면 괜찮을 텐데. 왜 여길 잘 활용할 생각을 안 하지’라고. 그리고 이 생각은 하루 만에 바뀌었다.


어르신은 막걸리 배달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날 유통할 막걸리 병수를 대충 가늠한 후 독에 담긴 원주를 스테인리스 수조로 옮겨 정제수를 섞는다. 도수는 낮아지고 양은 많아진 막걸리에 흰 가루를 조금 넣는다.

“어르신 그건 뭐예요?”.

“사카린. 요걸 살짝 넣어야 맛이 나쥬”.

감미료로 단맛을 더한 막걸리를 병입 하고, 유통기한을 막걸리 병에 찍으면 배달 준비가 다 된다. 운산 전역은 물론 해미 지역까지 단골 식당과 슈퍼, 마트, 심지어 오지의 개인 농가까지 포터로 누비며 막걸리를 나른다. 운산 생막걸리가 업소의 냉장고를 새 막걸리로 꾹꾹 채우면 좋으련만, 현실은 예전과 다르다. 몇 통 빠져나가지 않은 냉장고에 유통기한이 지난 운산 생막걸리들이 제법 눈에 띈다.  업소 냉장고는 이웃 당진에서 건너온 면천 생막걸리가 가득하고, 운산 생막걸리는 구석진 자리에서 초라하다. 씁쓸한 마음으로 철 지난 녀석들을 수거해 가는 어르신의 뒷모습이 시큼하다.

“어째 좀 나갔슈?” 양조장을 지키던 사모님이 답을 알면서도 말을 건넨다.

“뭐 그렀지. 그래도 저기 뭐냐 담뱃잎 하는 오영감님이 두 말 샀슈”. 단골이 아니면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음을 어르신은 안다.

팔리지 않는다고 만들지 않으면 막걸리가 아니다. 보존 기간에 한계가 있는 생막걸리는 일정한 주기로 꾸준히 만들어 주여야 한다. 나무 궤짝에 정성스럽게 보관하고 있던 주모를 꺼내, 팽화미와 입국 섞은 항아리에 덧술을 친다. 정성스레 잘 저어 섞어주면 효모가 알아서 술을 만들어 주리라 생각하지만 이는 오산이다. 보글보글 끓어대기 시작하는 항아리 속 발효의 합창이 열기를 더해가면, 식혀줘야 된다. 열정이 과하면 술맛이 시고 쓰고 떨떠름해진다. 항이리 표면이 뜨끈해질 정도로 발효가 진행되면, 독 안에 스테인리스 물통을 넣고 술을 식힌다. 상당한 무게의 물통을 독이 깨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넣고 빼는 과정은 70대 노인에게 꽤나 버거운 일이다. 식힘의 타이밍이 술맛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도 없다. 발효의 합창이 잦아들 무렵 독에서 무거운 물통을 힘겹게 꺼낸다.  반백 년을 함께 늙어 온 항아리 아가리가 깨질까 낡은 근육을 쥐어짜 스테인리스 물통을 꺼낸다. 이마가 땀에 축축이 젖어든다. 밖이 까매진다. 술독의 탁주는 밤새 자글자글 익어갈 것이다. 마른 우물 돌귀틀에 걸터앉아 담배 한 까치 입에 물며 숨을 돌린다. 밤이 가득 찬 100년 양조장에 둥실둥실 효모가 떠다닌다. 보이지 않는 것을 홀로 바라보는 어르신의 눈이 어둡다.


“어르신 항아리에 숙성시키는 게 더 맛이 좋죠"

“아무래도 독이 숨을 쉬니께 그렇긴 한디, 뼈 빠지쥬“

날이 밝자 어르신이 항아리 소독을 한다. 어르신 표현 그대로 뼈 빠지는 일이다. 숨을 쉰다는 건 항아리에 아주 미세한 숨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숨 쉬는 독에서 술이 익어 맛이 깊어지는 동안, 숨구멍에는 이물질이 차기 시작한다. 때문에 항아리를 정기적으로 세척 후 소독하지 않으면 독 숨구멍의 이물질로 인해 술맛을 버려버린단다. 물로 항아리를 세척하는 모습이 위태위태하다. 키 작은 어르신이 독 안에 빠질 것만 같다. 겨우 세척을 끝내면 독을 조심스레 눕혀 물기를 말끔히 닦아줘야 한다. 끝이 아니다. 항아리 안의 잡균을 잡아야 한다. 마른 짚에 유황을 얹어 불을 붙인다. 노란 유황 연기가 고약한 향을 품기며 피어오른다. 유황연기 뿜는 짚불로 항아리 안을 저어 준다. 숨이 막혀 온다. 유황불을 왜 지옥불에 비유하는지 알 수 있다. 지옥에서 뿜어 나오는 듯한 연기는 잡균을 압살 할 수 있으리라. 그 유황불을 움켜잡고 휘두르고 있는 어르신의 모습이 처연하다. 매주 이 소독을 반복하는 것은, 매주 지옥불과 마주하는 것과 다름없다. ‘전통’이라 불리는 ‘숨 쉬는 항아리‘에 술 빚기는, 맛의 깊이만큼 감당해야 할 노역의 골도 깊다. 어르신 홀로 감당하기에는.

잘 나가던 시기에 사용했던 소주독


“어르신 또 배달 나가세요?”

“잉. 저짝 해미의 백숙집에서 회식 있다고 한 짝 달라고 하네유”

모처럼 밝은 기운으로 포터에 막걸리 한 짝을 실지만, 포터 짐칸의 빈 공간이 너무 넓다. 한 짝이면 막걸리 20통. 돈으로 2 만원. 누군가가 취하기에는 충분한 값일지언정, 홀로 감당하고 있는 막걸리의 값으로는 너무 헐하다. 어르신이 배달 나가고 빈 양조장을 둘러본다. 백 년 된 양조장 건물, 50년 넘게 한 길을 걸어온 막걸리 장인, 숨 쉬는 반백살의 항아리까지. 맛을 보장하는 스토리가 넘쳐나는 운산 생막걸리가 힘겹게 숨을 쉬고 있다.

“어르신, 포장 팽화미 말고 고두밥으로 술을 빚으면 어떨까요?”

“아 좋쥬. 맛도 더 나고 좋은데, 혼자는 힘들쥬. 힘들어유”

더 할 말이 없었다. 존경만 받아도 충분할 분에게,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제대로 만들면 다시 맛이 찾아올 거라고, 끝내기엔 백 년 양조장이 너무 아쉽다고 말하는 건 입 발린 소리. 지껄임이다. 보태줄 젊은 힘이, 제대로 만들 돈이 필요한 거지, 뻔한 응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백 년 양조장이 멈출 수 있는 유일한 권한도 어르신에게만 있다. 그러니 아쉬움이 있다면 목으로 꿀꺽 삼킬 일이다. 가장 아쉬울 사람도 막걸리 한 짝 20통에 2만 원에 배달까지 하는 어르신일 테니. 지금 운산 양조장의 문은 닫혀있다. 당연하게도, 운산 생막걸리는 마실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