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깊은 곳의 차분함, 함안 중리 생막걸리

집에서 약 400 km 떨어진 곳. 경상남도 함안에는 아들이 있다. 군인이다. 아들이 아니었으면 나에겐 지명으로만 존재했을 곳이 함안이다. 지역의 맛이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멀고도 깊은 곳이었다. 그 곳에서 만난 막걸리가 중리 생막걸리(창원 중리주조장)다.  

아들 덕분에 만난 막걸리다

첫 잔

맛이  차분하다. 단맛이 적고 산미가 기분 좋게 입안을 적신다. 아주 맑지도 그렇다고 너무 진하지도 않은 농도의 막걸리가 차분하게 입안을 적신다. 제법이다. 탄산의 청량감도 좋지만, 입안을 툭툭 건드리는 정도의 과함은 아니다. 잘잘하게 입 천정을 간지롭히며 목젖을 타고 넘어간다. 과하지 않은 탄산이 맛을 차분하게 만드는 주역이다.

둘째 잔

산미가 지나간 자리에 인공 감미료의 맛이 남아 있다.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다. 대놓고 단맛을 강조하지는 않기에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정도다. 둘째잔에 오니 입술에 느껴지는 술의 질감이 살짝 텁텁하다. 막걸리 앙금이 슬쩍 입술과 혀에 남아보려 애쓰는 정도의 텁텁함이 있다.

아들의 부대 복귀 전 함께할 국밥 한 그릇을 위해 함안의 맛집을 찾아 보니 가장 먼저 대구식당이 눈에 띈다. 제법 유명세를 탄 식당이다. 맛이야 식당 이름 덕분에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대구식 뻘건 소고기 국밥을 내는 집이리라. 사이드 메뉴인 연탄 불고기도 제법 불맛이 들어 보인다.

읍내에 들어서니 대형 국밥집 간판이 보인다. 유명한 대구식당은 아니다. 그런데도 읍내의 규모에 비해 식당이 제법 크다. 대구식당을 찾아 모퉁이를 도니, 어구야! 국밥집 세 곳이 줄지어 서서 국밥촌을 이루고 있다. 함안의 반전이다.

경남 함안의 국밥촌

셋째 잔

중리 생막걸리에서 강한 개성은 보이지 않지만, 간이 센 안주(파채, 된장, 대패 삼겹살)과 함께 해도 맛의 지속성은 좋다. 무난하고 차분하게 자기의 맛을 계속 끌어가고 있다. 은은한 산미가 유지되면서 부드럽게 목을 넘어간다. 탄산이 잦아지면서 텁텁한 막걸리 앙금의 느낌이 높아졌다. 아직은 괜찮다. '제대로 섞질 않았나'라고 생각할 정도다.  

넷째잔

청량감이 확실히 줄어들고, 탁해진 정도가 강해졌다. 단맛보다 산미가 우위를 점한 막걸리여서 무난히 마실 수는 있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그래도 이 정도의 맛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단맛보다 산미를 우위에 두고 주조했기 때문일거다. 차분함이 무난함으로 바뀐다.

대구식당을 들어서니 재료소진이란다. 그 옆집을 가보니 영업종료다. 지금 시간이 오후 4시 반이다. 사람들이 식당 앞을 삼삼오오 서성이는 이유를 알겠다. 마지막 남은 한 집은 영업중이다. 국밥을 주문하고 빨간 국물에 파와 무가 잔뜩 들어간 대구식 소고기 국밥을 기다려 본다. 양은 그릇에 뜨끈한 국밥이 뽀얀 김을 뿜으며 나왔다. 또 반전. 콩나물이 가득 담겨있다. 맑고 빨간 국물을 후루룩. 달달하다. 콩나물 밑에 무와 소고기가 깔려있다. 매운맛보다 무의 달달함과 콩나물의 시원함이 빨갛게 담겨있다. 빨간색의 맛보다, 채소의 단맛이 국물에 가득하다. 함안에서 만난 달달한 소고기 국밥이다. 400km를 달려와 일부러 찾아올 정도의 맛은 아니지만, 곁에 있다면 든든한 맛이다. 주변 사람들과 막걸리 한 통 반주 삼아 먹으면 더 없이 좋을 맛. 그래서 오랜 세월 함께할 수 있는 맛. 맑고 달달하고 친근한 빨간 맛이 멀고도 깊은 함안에 있었다.

푸근한 맛이 인상적인 함안식 소고기 국밥

다섯째 잔

텁텁함에 산미마저 많이 가려지니 마지막 잔은 아쉽다. 발효되고 남은 전분 앙금을 조금만 더 세심히 걸러서 병입했어도 더 좋은 술이 됐으리라. 하지만, 그 전에 중리 생막걸리의 가장 큰 아쉬움은 개성이다. '앗 이 녀석 봐라!'하는 맛이 생각나질 않는다. 한 칼 개성보다 차분한 무난함이 이 녀석의 맛이다. 어쩌면 그래서 오래 갈 수 있는 막걸리다. 요즘  무난한 편안함이 도드라지는 개성보다도 귀한 세상이니 말이다. 함안 소고기 국밥처럼.

승발이의 맛 평가 : 텁텁한 앙금처리가 아쉬운 차분하고 무난한 맛. 3.5점

어울리는 맛과 멋 : 지역술은 지역 음식과 잘어울린다. 당연히 중리 생막걸리는 함안식 소고기 국밥과 어울림이 좋다. 연탄 직화 돼지불고기는 말할 필요도 없다. 척 맨지오니의 편안한 플루겔 혼과 함께라면 'Feel So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