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대추야자(고양, 양조위-we 브루어리)

대추야자를 처음 먹은 곳은 모로코다. 모나코 말고 모로코. 2022 월드컵 4강의 모로코. 카사블랑카의 모로코. 북아프리카의 누런 건조함과 지중해의 새파란 하늘,  사람 숲이 빽빽한 골목 천국 페스였는지, 붉은 건물과 붉은 거리, 붉은색 기운이 도시를 감싸는 사하라의 관문 마라케시의 시장이었는지, 험프리 보가트의 우수 짙은  레인코트를 입기에는 너무 더웠던 카사블랑카의 해변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추야자를 처음 먹고 놀랐던 곳은 18년 전 모로코가 확실하다. 달다달다 이렇게 단 과일이 있다니.

모로코 마라케시 제마 엘프나 광장 야시장

황지봉투에 대충 담긴 적갈색 주름 잡힌 건과일. 언뜻 대추인데 크기는 방울토마토보다 길쭉하다. 한 입 베어무니 껍질은 확실히 대추인데 과육은 곶감인 듯, 대추인 듯, 팥앙금인 듯, 푹신하니 씹히더니 입안에 단맛이 가득하다. 설탕에 절인 걸까? 의혹 가득한 눈으로 베어 물은 대추야자를 쏘아본다. 허 참. 달기도 무지 단데, 손이 자꾸 간다. 모로코의 바짝바짝 몸을 말려가는 더위와 찐득한 땀 범벅 이방인에게 대추야자는 달달한 자양강장제다. 많이는 못 먹겠다. 너무 달아서, 콜라가 무맛이다. 남은 대추야자를 쟁여간다. 에어컨 빵빵한 호텔방에 흐드러져 면세점 위스키에 안주 삼아 베어무니, 창 너머 먼 시선이 머무는 뾰족한 이슬람 첨탑 넘어 붉은 노을이 낭만으로 지중해 하늘을 적셔간다. 아주아주 달달하게.

대추야자. 따기도 쉽게 많이 열린다

달달함의 끝판왕 대추야자를 18년 만에 한국에서 재회했다. 막걸리에서. 젊은 양조장의 막걸리다. 6.8평에서 시작했다고 이름도 6.8 대추야자다.

왼쪽이 6.8 대추야자 막걸리다


알코올 : 9도

원재료 : 정제수, 찹쌀, 누룩, 대추야자

대추야자가 들어간 막걸리라니. 독특하다. 대추야자 이외에는 순수하게 만든 술이다. 심지어 단양주다. 날렵한 디자인에 비해 탄산의 기운이 아주 좋다. 막 흔들고 뚜껑을 따니 거품이 밀려온다. 기운 센 탄산은 단양주의 특징이다.

첫 잔

은은하게 올라오는 단향에 비해 단맛이 절제되어 있다. 곱지만 야무진 탄산과 강렬하지만 친화력 좋은 산미가 잘 어우러진다. 특히 산미가 좋다. 쿰쿰하기 쉬운 단양주의 신맛을 잘 다스려, 야성은 살아있지만 투박하지 않은 직선적인 술맛이 주조됐다.

둘째 잔

산미 뒤에 고운 단맛이 숨어 있다. 대추야자의 역할인 듯하다. 단양주에 이 정도의 단맛을 뽑아 숨겨놓은 건 좋은 선택이자, 멋진 주조 기술이다.

“기존 6.8CS는 산미가 특징이라 다음 제품은 산미랑 단맛 밸런스를 맞춘 제품을 출시하고 싶었고, 그러다가 특이하고 단맛도 강하며 곶감 맛 나는 아랍 대추야자를 부재료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발효력을 위해서 대추야자를 선택하진 않았습니다” - we_brewery의 DM 답장

대추야자를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 전통주라는 명분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방식을 찾아낸 젊은 생각이 흐뭇하다. 젊은 노력이 술맛에 배어있다

단양주에 대추야자. 멋진 막걸리

셋째 잔

단맛이 보다 선명해진다. 향에서 먼저 느껴진다. 화학 감미료나, 짙은 쌀의 단맛이 아니다. 새로운 막걸리의 단맛을 대추야자로 더해 놓았다. 이 녀석은 맑다. 직선적이다. 강렬한 산미와 탄산의 협공이 입안을 적시고, 목젖을 친다. 9도의 도수도 직선적인 술맛에 일조를 한다. 기름진 등심보다 육향 좋은 안심이나 제비추리와 마시면 아주 좋을 듯하다.

단맛은 본능적이다. 자극적이고 흔치 않기 때문이다. 매운맛, 신맛, 짠맛, 고소한 맛 등 혀에 쾌감을 주는 맛들은 일정 농도가 넘으면 쾌감이 불쾌감으로 바뀌지만 단맛은 다르다. 농도가 진해져도 쾌감을 주는 맛은 단맛이 유일하다. 시골 할머니들이 장날이면 단팥도넛과 짜장면을 찾는 것은 본능적 갈망인 것이다. 이토록 인류가 사랑하는 단맛이 가장 왜곡되어 있는 음식이 소주다. 희석식 소주. 소주는 왜 차게 마셔야 할까? 상온의 소주를 마시면 맛이 없어서다. 미지근한 소주의 들쩍함과 씁쓸함은 도저히 삼킬 수 없는 맛이다. 제주도 토박이들은 희석식 소주를 미지근하게 마신다지만, 알코올에 쩔은 사람들 아니고서는 ‘시야시’ 안된 소주는 불가능의 영역이다. 희석식 소주는 물에 주정, 즉 알코올을 섞어서 만든 술이다. 물에 알코올을 섞었으니 맛이 어떨까? 쓰다. 그러니 감미료를 섞었다. 막걸리에만 인공 감미료가 들어가는 게 아니다. 희석식 소주에도 엄청 들어간다. 쓴맛에 들쩍한 감미료로 단맛을 섞어 놓으니 맛도 향도 별로다. 가장 큰 경쟁력은 싼 가격이다. 도수도 높으니 빨리 취한다. 그러니 마실 수밖에. 어떻게? 맛과 향을 차갑게 해 죽인 다음에 마신다. 찬 기운에 기분 나쁜 맛과 향은 죽고, 시원함에 톡 쏘는 술맛만 남았다. 눈 가리고 아웅이 극적인 결과를 낳았다. 새로운 한국식 술 문화의 탄생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증류주는 차갑게.

한국인이 사랑하는 양주. 요즘은 군대 피엑스에서도 판매한다

위스키에는 실과 바늘처럼 얼음이 함께 한다. 의심의 여지없이 ‘온 더록’이다. 영롱한 짙은 황금빛 스피릿에 얼음을 퐁당 띄워 크리스털 잔을 두세 바퀴 돌려준다. 음미한다. 향기로운 씁쓸함이 촉촉하다. 역시 증류주다. 더 차가워진 녀석을 마신다. 영롱한 빛깔도 얼음이 녹아 희미해져 버렸다. 맛도. 향도. 차가움에 얼어 죽어 버렸다. 어두운 오크통 안에서 십수 년을 버텨온 위스키에게 이 무슨 몹쓸 짓인가 죄책감이 술기운처럼 밀려온다. 위스키는 매우 스위티 한 술이다. 실온에 보관한 위스키를 가급적 큰 잔에 마셔보라. 와인잔도 괜찮다. 위스키는 조금만 따라도 충분하다. 오크통에서 숙성된, 비천한 표현력으로는 묘사가 안 되는 수많은 아로마가 코를 자극한다. 서서히 마셔보라. 선명한 단맛이 비단 천이 살결을 스치든, 아주 보드랍게 혀를 감싼다. 뒤따라 오는 오크의 숨결과 농후한 쓴맛이 아리따운 향을 입고 있다. 멋지다. 맛과 향의 스피릿이 황금빛에 젖어 있다. 그런데. 한국식 술 문화. 얼음 한 조각이 이 모든 장면을 얼려버렸다. 단언한다. 위스키를 가장 맛없게 마시는 방법은 온 더락이다.

스카치위스키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싱글 몰트와 블렌디드. 싱글 몰트는 단일종이고 블렌디드 혼혈종이다. 싱글몰트 여러 종을 혼합하여 숙성한 위스키가 블렌디드 위스키다. 로열 샬루트, 조니 워커, 밸런타인 등 유독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위스키들 중에는 블렌디드가 많다. 아마도 위스키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블렌디드 위스키를 주조하는 위스키 마스터들일 거다. 십 수종의 싱글 몰트를 배합하여 새로운 위스키를 창조하는 마스터는 어떻게 위스키를 마실까? 따뜻한 온수에 마신다. 위스키가 품은 향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란다. 위스키를 온수에? 말이 돼?라고 반문하시는 분들께 강력 추천한다. 위스키를 가장 맛있게 마시는 방법은 온수에 타서다. 술맛이 본능을 자극하는 그 맛이다. 달콤하다.

넷째 잔

시큼함이 강해졌다. 입을 적시듯 마셔도 충분히 술맛을 느낄 수 있다. 노련함에서 오는 깊은 감칠맛은 약하다. 직선적 산미로 다가오는 순수하고 솔직한, 어쩌면 설 익은 듯한 술맛이다. 그래서 신선한 맛이다. 단양주의 원초적인 맛을 살리려는 막걸리를 만나긴 매우 어렵다. 그것만으로 6.8 대추야자는 가치를 갖는다. 그 맛은 위스키에는 없다. 막걸리는 차갑게 마셔도 맛있다.

승발이의 맛 평가 : 기본기가 튼튼한 막걸리에 아이디어를 더했다. 새로운 막걸리가 기대되는 양조장의 술이다. 너무 많은 걸 담으려는 욕심을 경계하기 바란다. 우선 양조장 이름부터 정리하기를. 양조위인지 we_brewery인지. 막걸리 이름이 6.8 DATE인지 6.8 대추야자인지 헛갈린다. 술맛처럼 심플하고 직선적인 브렌딩은 어떨까. 4.4점(5점 만점)

어울리는 맛과 멋 : 육향과 육즙 좋은 제비추리 강추한다. 지금 함께하고 있다. 훌륭하다. 기름기 많은 고기와는 비추다. 직선적인 막걸리의 장점을 흐려 놓기 쉽다. 굽기 정도는 미디엄-레어로. 핏기가 있어야, 육즙도 충만하다. 곁들임 음악은 ‘Whisky in the Jar’. 씬리지 버전도, 메탈리카 버전도 모두 옳다.


https://youtu.be/6WDSY8Kaf6o

참고자료

  • 네이버 백과사전
  • 맛의 달인